한나라당의 또 다른 적, DJ
  • 소종섭 기자 ()
  • 승인 2007.08.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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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대권 전선에서 막후 조정자 역할…‘백제 벨트’ 형성에도 영향 미칠 듯

 

‘핵문제가 정상회담 부담이 되어선 안된다는 DJ 인식 유감’ ‘혼자만 도로 열린우리당 아니라고 억지부리는 DJ’ ‘행동하는 양심에서 행동하는 앙심으로 변해버린 DJ’
한나라당이 지난 1주일 사이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관련해 낸 세 건의 논평 제목이다. 두 건은 나경원 대변인이, 한 건은 권기균 부대변인이 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단 한 건의 논평도 내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주된 공격 대상이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이 된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DJ는 최근 웬만한 현역 정치인보다 말을 많이 쏟아냈다. ‘범여권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아니다’…. 범여권 정치인들에 대한 훈수이자 하나같이 한나라당이 반기지 않는 말들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정국에서 DJ가 현실 정치에 복귀했다”라는 말이 일반적이다. 일각에서는 여권의 판도 변화를 그가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줄줄이 동교동을 찾는 것은 이런 분석이 소설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여권 경선전이 본격화하면서 DJ는 더욱 주목되고 있다. 향후 예상되는 민주당을 포함한 여권 대통합과 관련해 그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8월28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펼쳐질 이른바 ‘평화 무드’ 또한 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래저래 DJ는 이번 대선 정국에서 단순한 관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판에 뛰어들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전쟁’이라고 불리는 대선판에 장수로 출전할 경우 만약 패배하면 그만한 피해를 입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DJ는 왜 결전장에 나선 것일까.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우선 남북 관계 등 자신이 재임 중 이룬 업적이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훼손당할 것이라는 위기 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김홍업 게이트’로 상징되는 아들 문제로 한껏 위축되어 힘을 쓸 수 없었던 2002년과 달리 이번 대선판에서 DJ가 나름으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전수전 다 겪어 ‘정치 10단’인 그는 한나라당 후보가 누가 되든 1 대 1로 판을 짜면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 관계자는 또 DJ로서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북 송금 문제와 관련해 현 정권에서 특검 등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한나라당이 집권해 ‘DJ 집권 이후’를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하면 말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와 관련해 구체적인 발언을 계속하면서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한 핵심 인사는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이후 DJ가 민주당에 우호적인 행보를 한 적이 없다는 인식이 당내에 팽배해 있다. 한때 동교동으로 몰려가 항의하자, 당사에 걸려 있는 DJ 사진을 떼어내자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당원들은 DJ가 민주당을 향해 범여권 통합에 동참하라고 압박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 김대중 연합 구도’ 형성
김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김홍업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첫째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은 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다. 연청 중앙회장을 맡고 있는 윤철상 전 의원도 민주당 소속이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동반 탈당하기로 했던 시·도 의원들도 그대로 민주당에 남았다. 조순형 의원이 뜨면서 “우리끼리 해보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7월 말 민주당에서 자체 여론조사를  한 결과 “DJ 뜻대로 대통합을 해야 한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30%에 머물렀다. 70%가 “민주당 독자적으로 가자”라고 답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계속 유지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를수록 양당 구도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면서 범여권 내에서 ‘반한나라당 연합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의 지지도가 높지 않는 한 “민주당 홀로” 목소리는 커지기 힘들다.
정치권에서는 일단 DJ가 1차적으로 대선판의 기본 구도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본다. ‘손학규’라는 한나라당의 한 축이 붕괴되면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계기를 통해 ‘노무현+김대중 연합 구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윤여준 전 의원은 “최근에는 발을 빼는 듯한 흐름이지만 손 전 지사가 여권에 합류한 초기에는 동교동 그룹에서 그를 전폭 지원했다”라고 분석했다. 호남에서 20%를 넘나들던 손 전 지사 지지도는 최근 한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
이어질 다음 수순은 전통적인 지지층 복원 작업인 ‘집토끼 잡기’이다. 영남을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에 맞서 호남과 충청을 아우르는 이른바 ‘백제 벨트’를 복원하는 것이다. 민주당을 압박해 통합 흐름을 강제하는 것은 이를 위한 정지 작업이다. 이런 다음에는 노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정책·평화 공세를 펼쳐 영남을 허무는 수순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DJ와 노무현 대통령의 공통 접점에 이해찬·정동영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DJ와 달리 노대통령은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해 여러 차례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바 있다. ‘손학규’에 방점을 찍었던 호남 여론 또한 최근 부쩍 정동영 후보 쪽으로 쏠리는 분위기이다. 이해찬 후보가 ‘친노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 하는데 성공한다면 충청권을 중심으로 그 또한 힘을 키울 것이다. 지금 구도로 볼 때 두 사람은 협력해 ‘백제 벨트’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있고 DJ는 이런 흐름을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동교동에는 ‘3실장’이라고 불리는 권노갑·한화갑·박지원이 움직이고 있다.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여권과 조율 작업 등을 하며 동교동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권노갑 전 의원은 최근 몇 차례 호남 나들이를 하는 등 집안 단속에 열심이고, 한화갑 전 대표는 대통합 흐름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동교동의 최경환 비서관은 “박 전 실장만 가끔 동교동에 모습을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이 당분간 정치인을 만날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최비서관은 한나라당의 비판에 대해서는 “늘 그렇지 않았느냐”라며 신경 쓰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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