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죽이기’ 멍석 마는 범여권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8.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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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주자들, 비판 한목소리…“패잔병” 등 독설도 난무

 

‘패잔병’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이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불리해지자 뛰쳐나온 것에 대한 비난이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은 모두 손 전 지사를 ‘패잔병’이라고 부른다. 그들을 ‘노무현의 푸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경쟁자들의 비난을 견디다 못한 손 전 지사측의 반격이다. 노대통령이 키워온 이해찬·한명숙·유시민·정동영·신기남·천정배 등에 대한 ‘꼬리표 달기’이다. 친노 주자들이 ‘패잔병 물어뜯기’에 총동원되었다.
범여권은 노대통령만 빼고,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오자 박수를 쳤다. “한나라당에는 이제 군사 독재의 잔재들만 남았다”라는 준비된 비난이 그들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손학규 죽이기’로 돌아서기까지는 잠깐. 손 전 지사가 범여권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부동의 선두 자리를 고수하자, 그리고 ‘손학규 대세론’이 측근들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패잔병” “탈영병”이라는 악담이 쏟아졌다. 일단 손학규부터 죽이겠다는 것이다.
손 전 지사측도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측근들은 “박수칠 때는 언제고…”라며 “속았다” “한나라당을 괜히 탈당했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것 아니냐”라며 흥분한다. 지지율도 제자리. 도통 뜨지 않는다. 사조빌딩(손 전 지사 캠프)에서 만난 김재목 공보특보는 “10%만 넘으면 대권을 잡을 수 있는데”라며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솔직히 더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몰려올 듯하던 386들도 ‘손학규 이지메’가 심해지면서 주춤하는 분위기이다. 그래도 “동교동을 믿는다”라는 희망은 여전하다.
‘손학규 대세론’에는 근거가 없지 않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래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범여권 지지율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비록 여야 전체 후보를 놓고 실시한 조사에서 ‘마의 10%’를 돌파하지는 못했어도, 범여권 지지율에서는 20~30%대의 높은 지지율을 고수해왔다. 2위 그룹인 정동영·이해찬은 10%대, 또는 그 이하이다. 지지율이 대세론의 기초이다.

 
‘노무현 벽’ 넘기도 최대 숙제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 인물이 몰려들었다. 현 정권의 청와대에 근무한 386 출신 행정관 2명이 전격적으로 캠프에 합류했다. 8월9일 출마 선언식에는 현직 의원 42명이 참석했다. 참석자 중에는 오충일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김효석 민주신당 원내대표,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의 얼굴도 보였다. 모두 열린우리당과 민주신당 소속이다. 이해찬·한명숙·유시민·신기남…. 누가 출마를 선언해도 이 정도 현역 의원을 줄세우기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손 전 지사의 지난 7월 선진평화연대 출범식에는 60명이 넘는 범여권 의원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래도 ‘대세론’을 말하지 않는다면 게으른 참모들이다.
손 전 지사가 가장 고무된 것은 386들의 가세이다. 범여권의 운동권 대부 격인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손 전 지사의 최대 원군이다. 386의 맏형 격인 신계륜 전 의원이 손 전 지사에 우호적이고, 386 대표 주자인 우상호 의원은 아예 손학규 캠프 ‘대변인’으로 합류했다. 우의원 역시 “우리는 지금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민주개혁 세력의 대통합을 이뤄내고 있다”라며 ‘대세론’을 내세운다.
경쟁자들의 일사불란한 견제로 386들의 손학규 캠프 가세가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우의원을 시작으로 임종석·송영길 등 대표적 386 운동권 출신 10여 명이 머지않아 합류할 것이라고 손 전 지사측은 주장한다. 다만 그 시기가 범여권 후보 예비 경선이 열리는 8월 말로 미루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동교동 ‘폭로 전문가’ 설훈 전 의원의 손학규 캠프 ‘상황실장’ 취임은 앞으로 동교동계의 집단 합세를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동교동 직계 배기운 의원이 손 전 지사를 적극 감싸온 지는 이미 오래이다. 동교동은 손 전 지사에게 “한나라당을 탈당하면 지원하겠다”라고 한 설 전 의원의 다짐을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리얼미터가 8월 초 실시한 조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22%가 손학규라고 답했다. 정동영 19.5%, 이해찬 12.3%이다. 민초들이 더 예민할 때가 있는 법이다. 손 전 지사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新창조’를 대선 구호로 내세우고 대세론을 이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손학규 대세론’은 어디까지나 찻잔 속이다. 범여권이라는 울타리만 벗어나면 대세는커녕 미풍도 없다. 2~3%, 또는 그 이하에서 헤매는 여타 범여권 주자들보다는 낫지만 고작 5~7%로 한나라당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범여권 후보 지지율에서도 하락세이다. 8월 초 CBS 조사에서 손 전 지사는 25.9%를 얻었다. 2위는 민주당 조순형 의원 18.9%이다. 일주일 전 조사에서 손 전 지사는 35.2%였다. 7일 사이에 9%포인트가 하락했다. 같은 주, 조의원은 10.2%였으니 8%포인트 가까이 오른 것이다. 우위를 보였던 호남에서 는 정동영 전 의장에 밀리고 있다. 친노 후보 단일화나 여권 후보 컷오프가 이루어지면 손 전 지사 지지율이 급속히 빠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손 전 지사에게 최대 난관은 ‘노무현’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차라리 정치를 그만두라”라고 힐난했던 노대통령은 누그러질 태세가 아니다. 대선 출마 선언식에도 이해찬·한명숙·김혁규·김두관 등 친노 주자들은 불참했다. 20~30명 정도가 합류할 기색이던 386 의원들도 우상호 의원 한 사람으로 끝이다. 천정배 의원이 “운동권 패거리 정치”라고 일갈하자 나타난 현상이다. 그는 누구보다 노대통령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용케 잘 버텨왔지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스테로이드’를 맞은 노대통령이 그를 또 어떻게 ‘요리’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대세론에 감춰진 아킬레스건이다.
 
릴레이 연타로 시간차 공격
범여권의 ‘손학규 죽이기’는 매우 조직적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앞장서고, 그 뒤를 이어 여타 후보들이 시간차 공격을 퍼부으면 유시민 의원이 뚜껑을 닫는 식이다. 손 전 지사가 남북정상회담에 편승하려 하자 이 전 총리는 “손 전 지사가 북한을 조폭에 비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입에도 올리지 말라”라고 일갈했고, 잠시 뒤 약속이나 한 듯 유시민 의원이 “나 혼자서도 손학규는 이긴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민주신당에 합류한 천정배 의원은 손 전 지사를 ‘트로이의 목마’로 지칭했다. 늘 한나라당 ‘짝퉁 후보’라고 부른다. 손 전 지사와 범여권 지지 세력을 확실하게 분리하겠다는 뜻이다. 한명숙 전 총리까지 나서 손 전 지사를 ‘한나라당 패잔병’이라고 부르며 ‘필패론’을 제기하자, 이해찬 전 총리가 ‘손학규 필패론’으로 거들었다. “본선에서는 아예 게임도 안 되죠”가 그의 방송 코멘트이다. 정동영 전 의장은 “뿌리 없이 어떻게 열매가 맺겠는가”라며 근본 없이 굴러온 돌로 취급했다.
손 전 지사가 광주 민주 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을 때이다. 그는 “광주를 털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광주 정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라며 광주 극복 의지를 천명했다. ‘광주’는 이미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으니 광주의 세계화와 한국의 글로벌화로 눈을 돌리자는 뜻일 것이다. 이런 손 전 지사를 두고 이부영 전 의장은 “역시 화합형 지도자감”이라고 추켜세웠다. 말 조심하는 이 전 의장으로부터 이런 직접적인 언사를 들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손 전 지사를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처럼 대한민국에서 여야를 아우르는 크로스오버 정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덧붙였다. 지나친 평가가 아니냐하고 되물었더니 “대학 후배잖아요”라며 한 발짝 물러나기는 했으나 ‘광주 극복’ 발언에 대단한 기대를 갖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잘못 걸렸다. 범여권 대선 주자치고 ‘광주’를 휘장처럼 걸치지 않은 후보가 누가 있는가. 경쟁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신기남 의원은 “손 전 지사는 <화려한 휴가>를 볼 자격도 없고, 영화를 봤다면 반성해야 한다”라고 쏘아붙였다. 손 전 지사가 광주 항쟁 당시 영국으로 ‘피신 유학’ 갔음을 꼬집는 말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광주 정신도 모르는 소리”라고 폄하했다. 정동영 전 의장측에서는 ‘짝퉁을 경계한다’라는 글을 통해 “손 전 지사는 자신의 운동권 경력이 필요했던 민자당에 몸을 팔고 변절하며 수구 냉전 세력에 기대어 온갖 단물을 쏙 빼먹은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퍼부었다. 광주 학살에 책임 있는 민정당 후신 민자당 출신임을 아프게 추궁한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와 ‘오비 정치론’ 뜨거운 공방
손 전 지사로서는 범여권 주자들의 이런 변심이 야속할 것이다. “오라고 할 때는 언제이고, 나오니까 홀대하는 것은 뭐냐”라고 씩씩대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손 전 지사에게 우리당에 오라고 한 적 없다. 그 당에서 경선하라고 했다”라고 외면했다. 손 전 지사의 독보적인 범여권 지지율도 “옛날 한나라당 탈당 전 이명박·박근혜·손학규 대립 구도 때의 지지율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범여권 주자, 특히 이 전 총리의 악담이 이어지자 손 전 지사 진영의 우상호 대변인이 이 전 총리 공격에 나섰다. 논평 제목은 ‘이해찬 전 총리의 반복되는 ‘오비’ 정치’. ‘오비’란 정확하게는 ‘아웃 오브 바운스(out of bounds)’, 즉 골프에서 경기 구역 바깥으로 공이 나가는 상황을 말한다. 그는 이 전 총리에게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하려다 실패하고 다시 독설 정치·비호감 정치인으로 복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라고 포문을 열고 “3·1절 골프 사건으로 대형 ‘오비’를 내고 중도 하차하신 이 전 총리께 열린우리당이 멀리건(첫 샷을 잘못 쳤을 때 벌타 없이 다시 치게 해주는 것)을 주어 대선 후보로 참여하게 했다. 다시 독설 정치로 ‘오비’를 낸다면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멀리건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 논평에 이 전 총리는 “실망스럽다. 이른바 386이라면 우리 사회의 개혁성을 대변하는 세대인데 그런 세대를 대표하는 의원이 그런다는 것이 실망스럽다”라고 즉각 반응했다. 모두들 잠시도 손 전 지사를 가만두지 않는다.
이율배반적인 것은 범여권이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의 합당이 ‘도로 열린우리당’이라고 조롱받자 손 전 지사의 합류를 들이대며 “도로 열린당·짝퉁 열린당이 아니다”라고 강변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너도나도 손학규 죽이기에 매달리고 있다. 결국 범여권이 생각하는 손 전 지사의 용도란 세탁할 때 쓰는 ‘락스 한 방울’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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