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죽어서 크게 사는가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8.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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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경선 승자는 분명 이명박 후보이다. 한데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대권 고지 8부 능선에 오른 유력 대권 주자이다. 박근혜 후보는 아예 대선 출마 기회가 봉쇄된 패자이다. 이제부터는 ‘박후보’가 아니라 ‘박 전 대표’이다. 이후보 진영이 집권의 꿈에 부풀어 있다면, 박후보 캠프는 한숨과 눈물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승자가 패자의 눈치를 살피고 패자는 “아직 최종 승리를 주장하긴 이르다”라고 벼르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가. 이번 경선에서 두 후보 간 득표율 차는 고작 1.5%였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끝난 직후 이명박 후보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56%에서 59%까지 오르내린다. 70%를 넘은 수치도 있다. 경선 전에 비해 무려 20%+α’이다. 이후보와 범여권 유력 후보와의 가상 맞대결에서도 압승 구도이다. 수치를 소개할 것도 없다. 70% 대 20%로 압도적 차이이다. 사진마다 이후보의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이명박 당선은 박근혜 손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분위기는 “만세” 일색이 아니다. 지지율 상승이 이후보 자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의 ‘깨끗한 승복’과 ‘백의종군’ 선언으로 박후보 지지 표가 이후보 쪽으로 옮겨간 덕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박후보 지지자의 약 60%가 이후보 지지로 선회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의 당선은 박근혜의 손에 달려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깊은 함정이 있다. 박후보가 없는 이후보는, 경선 직전 가장 높은 지지율이 39.5% (코리아리서치)였다. 경선 직후에는 같은 조사에서 56.6%가 나왔다. 대통령 선거를 굳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는 말이 나돌 만큼 높은 수치이다. ‘박근혜 없는 이명박’은 생각하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이후보에게 ‘박근혜’는 어느 범여권 후보보다 더 무서운 ‘호랑이’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박 전 대표는 ‘대선 후보’ 자리를 놓쳤지만 ‘여론’을 얻었다. ‘패자 박근혜’를 향한 민심이 따뜻해졌다. 동시에 그녀는 “한나라당도 얻었다.” 대의원과 당원 등 선거인단 직접 투표, 즉 이른바 ‘당심’에서 이후보를 눌렀다. 막강한 자금력이 뒷받침된 이후보 조직을 일거에 무력화시켰다. 바꿔 말하면, 이후보는 한나라당 공식 대선 후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당원들로부터 ‘거부당한’ 후보로 초라한 형색이다. 반면 박후보는 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데 ‘비당원’을 참여시킨 경선 방식 때문에 승리 직전에서 미끄러진 희생자로 비춰진다. 현경대 전 의원의 말마따나 “이명박 후보는 일반 국민의 역선택에 의해 뽑힌 후보”인 것이다. 이른바 ‘국민경선’으로 포장된 여론조사만 없었다면, 박 전 대표는 지금 당당한 한나라당 후보이다. 이렇게 보면 이후보에게 박 전 대표는 꽤나 ‘치명적인’ 존재이다.
외신들은 이후보의 당선을 전하면서 본선 경쟁력에 회의를 표시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명박, 유리한 고지… 승리 예단은 일러’라는 제목을 타전했다. ‘땅 의혹이 폭탄이 될 수도’라는 부제도 뽑았다. “이후보의 불법 땅 거래 의혹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이후보의 대중적 지지도가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는 것이 뉴욕 타임스의 전망이다. 덧붙여서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북풍’도 지적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도 “이후보의 부동산 거래와 주가 조작을 둘러싼 의혹들이 본선에서 폭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라고 전했다. 마이니치 신문 역시 ‘부동산을 둘러싼 의혹이 본선 끝까지 따라다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권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외신 보도는 국내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후보의 ‘완주‘ 여부를 두고 이런 저런 시나리오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정치꾼들의 입담 수준이다.  
한나라당 지지자 44% “이후보 낙마할 것”
이후보에게는 진작부터 ‘불안한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일부 의혹은 진행형이다. 도곡동 땅 차명 의혹 등 재산 공방, 주가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BBK의 김경준씨 귀국설 등이 여전히 이후보를 안심하지 못하게 한다. 경선 막판에 불거진 ‘휴대전화 촬영 매표 의혹’도 검찰 조사로 넘겨졌다. 혹 한나라당이 모르는, 현 정권만이 움켜쥐고 있는 ‘X파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후보 낙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도 만연해 있다. 경선 직후 실시된 국민일보 여론조사가 그 증거이다.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무려 43.8%가 ‘이후보가 (중도에) 낙마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응답도 39.1%나 나왔다. 현재 이후보의 높은 지지율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이다. 이것이 당원과 대의원 등 선거인단 선거에서 ‘박근혜 승리’로 나타난 배경이기도 하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도 매우 흥미롭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한 박근혜 전 대표의 차기 대선 재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56%가 찬성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72.8%가 “도전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패한 순간부터, ‘깨끗한 승복’과 ‘백의종군’을 천명한 순간부터, 막강한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정치사에 이런 일이 없었다. 반발과 변절, 몽니로 기억되는 이종찬·이인제·정몽준 씨 등과는 다른 지도자로 각인된 것이다.
여하튼 여론을 등에 업은 박 전 대표의 대선 출마가 ‘차기’인 5년 후가 될지, 아니면 뉴욕 타임스와 요미우리가 내다본, 즉 이후보의 대중 지지율이 ‘급락’하는 비상한 상황이 될지는 지금 상황에서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래서 경선이 끝났음에도 박근혜 전 대표를 ‘이명박의 보완재’로만 보기 어려운 것이다. ‘대체재’로서의 가능성이 살아 있어서이다. 실제로 경선이 끝난 직후, 박후보 캠프 쪽에서는 “두 달만 기다리면 다시 기회가 온다. 그 때까지 체력 보강하자”라는 말들이 이심전심으로 흘러나왔다. “그때까지 박후보 캠프를 회비를 걷어 동호회로 운영하자”라는 말까지 캠프 해단식에서 나왔다. 
박 전 대표는 경선을 통해 ‘독한 면’도 보였지만, ‘결단력’도 공인받았다. 전당대회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경선 승복을 천명할 때, 강재섭 대표도 눈물을 보였고 원희룡 의원은 “존경을 보낸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던 박후보 캠프 쪽 사람들은 박후보를 그토록 비난하던 원희룡 후보가 눈물을 글썽거렸을 때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고 고백했다. ‘이명박 승리’를 환호해야 할 이후보 지지자까지 숙연해졌다고 한다. 박후보 캠프의 한선교 의원은 “경선을 하루만 늦게 했어도, 지구당 위원장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라며 위로하는 이후보 지지자들의 격려에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당초 1~2만 표 이상의 압승을 예상했던 이후보측으로서는 직접 선거에서 패하고 전화여론조사에 의해 간신히 이겨 후보가 된 것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박 전 대표는 경선 기간 내내 “극악스럽다”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이후보를 몰아세웠다. 네거티브 검증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그녀의 입에서 ‘범죄자’ ‘땅떼기’라는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이런 그녀를 두고 당 원로들이 고개를 저었다. 보수 언론들이 박 전 대표의 ‘자해극’을 사설로, 칼럼으로 비판했다. “본선을 망치려 한다”라는 것이다.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까지 박 전 대표의 드라이브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독하고’ ‘극악스럽고’ ‘앙칼진’ 박 전 대표는 전당대회장에서 일순간 “이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박후보 선대본부 김재원 대변인)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패자’ ‘진정한 승리자’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위기일수록 강한 후보라는 평가도 받았다. 총선 패배 후 한나라당의 천막당사 시절, 2006년 지방선거 유세 과정 중의 테러 사건에 이어 경선 패배에 대한 깨끗한 승복과 의연한 대처는 그녀를 여성 정치인 그 이상으로 격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그녀를 두고 “여자라서 대통령하기 어렵다”라고 더 이상 말할 수 있을까? 박 전 대표는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후보는 경선 직후 “박후보에게 정권을 되찾아오는 중심적 역할을 해주실 것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선대위원장 직을 맡아줄 것을 제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전 대표의 답은 “경선 결과 승복”과 “백의종군”이다. 그리고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가 칩거 중이다. 그 후로는 이후보로부터 더 이상 어떠한 메시지도 없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명분을 달아서이다.
이제 박 전 대표는 어떤 행보를 할까? 박 전 대표는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런 그녀를 두고 박후보 쪽의 이혜훈 대변인은 “본인이 손해 볼 것이 뻔한데도 한 번 정한 원칙은 절대 바꾸지 않는 분이다. 처음엔 이런 박후보가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젠 존경한다”라고 했다. 실제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두고 ‘본선 필패 후보’라고 공격한 것도 “단순한 ‘정치 공세’가 아니라 ‘믿음과 확신’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원칙이냐, 변심이냐' 고민 깊은 박근혜
이런 박 전 대표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후보를 찍어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후보와 관련한 의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누구보다 정권 교체를 염원하는, 그리고 그것만이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박 전 대표는 애당심·애국심과 ‘이명박=본선 필패 후보’라는 확신 사이에서 고민스러울 것
 
이다. 게다가 이후보가 분명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완주 불가론’이 파다한 상황이니, 어떻게 쉽게 움직이겠는가. 더구나 이후보 지지층을 이루는 40대-수도권-화이트칼라 계층은 변덕이 심하고, 이슈에 민감하다. 이후보가 강한 내구력을 키웠다고 하지만, 도곡동 땅 의혹이 구체화되고 또 다른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면 가장 먼저 등을 돌릴 계층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답답할 것이다.
게다가 박 전 대표의 심기가 불편해질 일이 경선 다음날부터 벌어졌다. 당선자인 이명박 후보의 당 입성 첫마디는 ‘당 화합’이 아니라 ‘당 개혁’이었다. 그것도 ‘대혁신’이다. 영남·수구·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을 수도권 중심의 중도 실용 노선으로 ‘확’ 바꾸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중심의 초·재선 의원을 앞세워서 말이다. 즉, ‘박근혜당’을 ‘이명박당’으로 만들겠다는 얘기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곧 이어 이후보의 오른팔인 이재오 최고위원이 중앙 당사의 대선 후보 집무실 맞은편 비서실장 근무 공간을 “내가 쓰겠다”라고 했다는 해프닝까지 불거졌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점령군 행세냐”라는 반발이 일어났다. 박 전 대표로서는 ‘깨끗한 승복’으로 ‘여론’은 얻었다지만, ‘권력’은 잃었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제로섬(zero-sum) 게임’인 권력 싸움에서 후보자와 선대위원장의 자리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박 전 대표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칩거 기간이 좀더 길어질지 모른다. 경선 다음날 안병훈 선대위원장은 “박 전 대표가 약 한 달쯤 쉬실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박 전 대표의 백의종군은 말 그대로 ‘백의’ 종군일 수 있다. 평당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정도의 말이다. 
그런데 일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선대위원장 수락 여부가 마치 박 전 대표의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후보의 선택이다. 권력의 속성상 후보가 되면 단 1%의 권력도 나눠줄 수가 없다.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못하는 것이 권력이다. 더구나 지금의 여론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박근혜 지지표가 더해졌다지만, 박후보가 없는 한 이제부터 이후보 지지 표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이다. 이번 경선에서 확인되었다. 이제 명실공히 ‘이명박당’으로 바꿔야 한다. 아무리 탕평책을 쓴다 해도 “박후보 사람을 건넌방이 아닌 안방까지 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당 개혁에 성공하면 박 전 대표는 무력해진다. 안방에서 호랑이를 키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후보 쪽도 생각할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 상황이라면 솔직히 ‘필요 없다’는 쪽에 더 쏠릴 것이다. 척이 지지 않은 정도이면 충분하다고 볼 가능성이 크다. ‘명예직’ 정도를 제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이후 정몽준 후보가 명예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것처럼.
그렇다면 혹여 이후보가 여당이 휘두르는 검증의 칼날에 휘청거려 위기 상황이라도 맞게 되면 박 전 대표의 도움이 필요해질까. 이 경우 “더 더군다나 아니다”. 그러기에는 박 전 대표가  너무 거물급이다. 박 전 대표는 살려두면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가 될 가능성이 큰 인물이라는 것이다. 1997년 15대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는 같은 당의 이인제 의원에게 지지율에서 밀리자 곧바로 후보 교체론에 시달렸다. 결국 이인제 의원의 탈당으로 마무리지어졌지만 김대중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지난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가 지지율 폭락으로 후보교체론에 시달렸다. 그때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이 결성되고 대안으로 정몽준 후보가 거론되었다. 후단협에 대한 노후보의 좋지 않은 감정은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으로까지 이어졌다. 노후보는 반대 세력에 대해 철저한 정치적 응징을 가한 것이다.
‘9월 위기설’도 고개들어
이제 ‘한나라당판 후단협’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더구나 이후보는 아직 ‘검증 미완성’인물이다. 벌써부터 ‘면책 특권’으로 무장한 범여권 의원들이 9월 정기국회에서 무차별로 ‘이명박 죽이기’에 나서겠다고 선전
 
포고하고 있다. 이른바 9월 위기설이다. 이때 이후보쪽으로서는 ‘대안 인물’이 살아 있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 않아도 당 개혁을 명분으로 박 전 대표의 지지 세력인 영남권 정치 세력의 입을 틀어막은 터이다. 지금은 ‘한나라당 공식 후보’라는 힘으로 제압이 가능하지만, 지지율이 떨어지면 어디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른다. 측근들이 언론에 ‘외부 명망가 출신 선대위원장’을 흘리는 속셈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따져보면 이후보에게 박 전 대표는 결국 골치 아픈 존재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된 직후부터 노후보에게 정몽준 의원이 골치 아픈 존재였듯이. 노후보 쪽에서 보면 다행스럽게도 단일화 이후 단 한 번도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진 적이 없다. 그래서 선거 이틀 전 노후보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공동 정권을 약속한 적이 없다”라며 정몽준 명예선대위원장을 돌려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후보의 입장은 다르다. 설사 어떤 자리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내버려둔다고 해도 ‘박근혜의 진가’는 여전히 살아 있다. 단순 ‘보완재’가 아닌 힘 있는 ‘대체재’로. 이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주느냐 마느냐, 총리직을 제안하느냐 마느냐’하는 정도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칫 후보 자리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진짜 골치 아프게 된 쪽은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이다. 박근혜를 단순 ‘보완재’로 머무르게 할지 위험한 ‘대체재’로 키울지는 순전히 이후보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박 전 대표는 종속 변수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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