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맞춤 후보’, 친노냐 반노냐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8.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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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대선 주자들 ‘컷오프’ 통과 경쟁 돌입…‘노무현-김대중’ 후견자 대결에도 관심 집중

 

범여권이 본격적으로 ‘이명박 죽이기’에 나섰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어제의 전과자” “내일의 범법자”라고 퍼부었다. 한명숙 전 총리는 “한나라당은 12월 세 번째 패배를 맞볼 것”이라고 소금을 뿌렸다. “이명박의 7가지 결격 사유”는 신기남 의원 주장이다. 범여권 주자들이 지지율이 너나할 것 없이 바닥이다 보니 ‘이명박 죽이기’를 통해서라도 “이명박 맞춤 후보”로 등극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이다. 이들 범여권 후보의 지지율은 모두 합쳐 보아야 20% 남짓. 이후보의 지지율 55%~60%와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과연 이들의 이명박 죽이기는 성과를 볼 것인가. 누가 ‘이명박 맞춤 후보’일까.
손학규·정동영·이해찬·유시민·한명숙·신기남·천정배·김두관·추미애·최병례 씨 등 10명이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일반에게 생소한 최병례씨는 전 열린우리당 국정자문위원이다. 김혁규·김원웅·강운태 씨까지 등록했다면 13명이 될 뻔했을 정도로 난립이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컷오프를 거치지 않고 본선에 합류하는 특전을 부여받았다. 이해찬·유시민·한명숙·신기남·김두관 씨 등이 친 노무현 대통령 계열이고, 손학규·정동영·천정배 씨 등은 ‘반노’ 또는 ‘비노’다. 비노 3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깝다. 특히 손 전 지사는 친 DJ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얼핏 보아도 마이너리그이다.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경선이 메이저리그에 비견된다면 민주신당의 그것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의 왕관 쟁탈전 같은 인상을 준다. 우선 너무 많다. 지지율도 바닥이다. 그러니 흥미가 반감된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컷오프’ 제도이다. 송사리를 걸러내자는 것이다. 방법은 선거인단 1만명(일반국민 7천명+열린우리당 통합에 따른 승계당원 3천명)과 일반인 2천4백명 등 1만2천4백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하는 방식이다. 응답자 1명당 2명의 후보를 선택한다. 선거인단과 일반인 여론조사 반영 비율은 각각 50%씩이다.
그러나 컷오프에서 몇 명을 뽑을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하위 주자들은 “많이”를 주장하고 상위 주자들은 “적게”를 요구한다. 대략 5명 선이 예상된다. 컷오프를 통과한 후보들의 본선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계획이 없다. 2백50만명의 국민을 참여시켜 흥행을 도모한다는 구상뿐이다. 후보 선출 시기는, 컷오프 9월3~5일, 최종 후보 선출은 9월14일이다. 남북정상회담 특수를 노린 절묘한 시기 선택이다. 누가 되건 ‘평화’를 너울처럼 두르고 나타날 것이다.
현재 지지율은 손학규·정동영·유시민·이해찬·한명숙 씨 순이다. 나머지는 여론조사 수치에 잡히거나 안 잡히거나 한다. 8월20일 동아일보 조사는 손학규 7%, 정동영 3.4%, 유시민 2.1%, 이해찬 1.8%, 한명숙 1.8% 순이다. 다른 조사도 대동소이하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직후 박근혜 후보 지지표 일부가 손 전 지사 쪽으로 이동해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9%까지 나온 것이 다소 새롭다면 새롭다.
결국 이들 5명이 컷오프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에 별다른 이론이 없다. 말이 컷오프라고 하지만 예선에서 후보들의 질량이 결정된다. 따라서 컷오프 경쟁은 바로 본선의 축소판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손학규-정동영 경쟁은 누가 1위를 하느냐에 따라 본선 가닥도 잡힐 수 있다. 손 전 지사 쪽이 여론조사 반영률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정 전 의장 쪽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여론 우세와 조직 우세의 차이 때문이다.
이해찬-유시민, 손학규-정동영의 충돌
흥미로운 것은 지지율 1~2위인 손학규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이 ‘반-비노’인 반면, ‘친노’인 유시민 의원,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가 3, 4, 5위라는 사실이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민주신당의 컷오프와 본선은 친노-반노 간 대결로 굴러갈 것이다. 범여권 후보들이 ‘이명박 죽이기’라는 공통점을 빼고 흥밋거리를 찾자면 친노-반노 대결이 아닐까? 또 반노에 속하는 손학규·정동영 특히 손 전 지사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심이 각별해, 상황에 따라서는 노무현-김대중 후견자간 대결로 굴러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다른 흥행요소이다.

 
정치적 사제 지간인 이해찬-유시민 대결은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감이 높아간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괴팍한’ 인상의 두 사람이 ‘붕어빵’이지만 양 진영에서는 “함께 따로”의 구호가 들려온다. 특히 이 전 총리측은 유의원 출마를 ‘이해찬 만들기’ 일환으로 폄훼하려 한다. ‘페이스 메이커’로 뛰다 막판에 이 전 총리 손을 들어주는 역할이 주어졌다는 주장이다. 반면 유의원측은 ‘끝까지 간다’이다. “우리가 오히려 이 전 총리 측을 흡수할 수 있다”고도 장담했다. 이 전 총리 측의 ‘페이스메이커’론에 대해서 “우승의 야망을 가진 페이스메이커”라고 매몰차게 응수했다.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유의원이 이 전 총리를 누르고 3위로 올라선 수치를 들고 나왔다. 유의원 자신은 “1주일 안에도 얼마든지 1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이를 두고 김민석 전 의원은 “이해찬-유시민 싸움에서 결국 유시민이 이길 것”이란 이색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유시민은 ‘노빠’와 견줄 만한 ‘유빠’가 있고, 보다 선명한 후보여서”가 그가 드는 근거이다. 두고 보자.
이 전 총리로서는 컷오프에서 자신의 보좌관 출신인 유의원에게 밀리면 곤란하다. 체면이 구겨진다. 컷오프를 간신히 통과해도 유의원이 버티는 한 본선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칫 5선 국회의원의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컷 오프에서 미끄러지거나, 혹여 꼴찌라도 하는 날엔 상상하기 싫은 그림이다. “유의원과 나의 지지 세력이 다르다”라고 항변해 보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다. 한명숙 전 총리가 제의한 ‘이해찬·한명숙·유시민 3자 단일화’에 이 전 총리가 매달리는 이유이다. 유 의원이 뜨기 전에 단일화해 유 의원의 싹을 자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유의원은 단일화 제의가 있을 당시 “아직 출마 선언도 안했다”라고 피해갔다. 정치적 사제지간에서 누가 승자가 될까.
정동영 전 의장은 누가 뭐래도 범여권의 대주주이다. 노대통령과 결별했지만 그는 한때 참여정부 2인자이기
도 했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민 지지율 1위, 범여권 후보 선호도 1위였다. 그러나 손 전 지사가 합류하고부터 모양이 말이 아니다. 컷오프에서 손 전 지사에게 밀리면 범여권 전체의 사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컷오프 1등이 목표이다. 손 전 지사가 선호하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낮추자는 주장을 굽힐 수 없는 처지이다. 정 전 의장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 즉 ‘김심’의 균열이다. ‘호남 적자’로 ‘김심’에 전폭 의지해도 부족한데, 그 ‘김심’이 손 전 지사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불길함이 그를 억누른다. 그는 민주당 정풍운동을 주도하면서 ‘김심’밖에 난 적이 있다. 호남 지지율에서 손 전 지사를 압도적으로 누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는다. 반면 손 전 지사는 ‘몸조심’이다. 컷오프 선두는 본선 승리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 상황이라면 선두를
내줄 이유가 없다고 낙관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의 22% 정도가 “‘김심’은 손학규”라고 답했다. 호남 표의 ‘정동영 쏠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캠프 분위기. 일찌감치 선대위도 구성했다. 대표적 ‘노빠’인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과 ‘연대’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노 대통령과의 긴장해소용이다. 시간이 갈수록 손-정 두 사람의 ‘김심’ 쟁탈전이 흥미를 더할 것이다.
‘이명박, 죽이기’는 한목소리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민주신당 컷오프든, 본 경선이든 흥미를 유발할 만한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책으로 승부하자니 “참여정부 실책의 책임자”라는 손가락질에 고개를 숙여야할 판이다. ‘경제’는 입도 벙 긋하기 힘들다. 유일한 돌파구가 바로 ‘이명박 죽이기’이다. ‘검증’을 통해서이다. 그 이유가 있다. 2007년 선거는 2002년까지 여권에서 써먹은 ‘민주’ 대 ‘반민주’, ‘영남’ 대 ‘비영남’ 대립 구도가 더 이상 작동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이명박 후보를 ‘수구 꼴통’이라고 비난해 보아야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그를 ‘개혁’ 쪽에 좌정시킨다. ‘경북’이라고 몰아 붙여 보아야 그의 지지 기반은
서울 등 수도권이다. 호남에도 상당한 지지세가 있다. 이른바 ‘경제전문가’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어영부영 ‘경제 살리기’ 의제를 선점당했다. 심지어 호남에서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24.6%까지 높아졌다. 이 지역에서도 한나라당이 정당 지지율 1위이다. 한나라당의 전국 지지율은 58.2%이다. 국민의 76.5%는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길 것”이라고 답했고, “범여권이 정권을 연장할 것”이란 응답은 14%에 그쳤다. 이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 는 응답은 무려 70.4%에 달했다. 막강 후보이다(이상 글로벌 리서치. 8월 20일 조사).
탈출구란 오직 무자비한 ‘이명박 검증’뿐이다. 네거티브 전략 외엔 방법이 안 보인다.
이렇게 보면 범여권의 이명박 맞춤 후보 간택은 “누가 더 이명박을 확실히 죽이느냐”의 경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후보를 ‘박살’내야만 무너진 범여권 지지층이 결집하고, 그 결집은 ‘반 이명박’의 깃발 아래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네거티브가 통할 것인가’이다. 주관적 해석을 피하자면 한나라당 경선을 참고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는 경선 초반부터 막판까지 이명박 후보에게 당원과 대의원들의 여론조사에서 밀렸다. 일반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박후보는 결국 당원과 대의원 등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겼다. 여론조사에서만 졌을 뿐이다. 그것도 한때 두 배 이상 차이나던 지지율 차이를 8% 정도로 많이 좁혔다. 이는 박후보 쪽의 네거티브가 먹혔다는 증거이다. ‘10년 야당’의 설움에 절어 있는 한나라당 당원과 대의원들에게 ‘이명박=대선필패 후보’로 각인시키고자 한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이 다. 실제로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경선 막판에 도곡동 땅 차명의혹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하루만 더 있었어도 역전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박후보 쪽의 치열한 공세도 일반 여론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네거티브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의 학습효과이기도 하다.
이후보는 박후보와 싸우는 과정에서 내구력을 키웠다. 당내 경선에서 “인신구속감” “범죄자” “땅떼기” 등 온갖 험악한 소리를 다 들었다. “후보를 사퇴하라”라는 극단적 요구에 몰리기까지 했다. 물론 범여권의 정보력은 한나라당과 박근혜 진영에 비해 월등할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장담한 ‘한방거리’가 비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검찰이 도곡동 땅은 “이후보 친형 상은 씨 소유가 아니다”라고 애매하게 발표한 것도 이후보 입장에서 보면 꺼림칙하다. ‘이후보 죽이기’로 범여권 맞춤 후보가 되고자 하는 민주신당 후보가 10명이나 있는 한, 이후보의 대선 가도는 평탄치 않을 것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후보들을 빼고서도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남긴 교훈 중 중요한 것은 네거티브만으론 후보가 되기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네거티브 전략은 필요 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 조건은 아니다. 범여권 후보 중 누가 충분 조건까지 갖출 것인가.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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