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브랜드’ 복제품 제조하나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9.1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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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포럼 등 친노 그룹, 정치 세력화 ‘착착’…‘이해찬 후보 만들기’ 주력

 
청와대가 뜬금없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범여권 예비후보 경선일인 지난 9월5일의 일이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선을 ‘노무현 -이명박 구도’로 만들겠다는 의도인가? 이렇게 되면 ‘범여권 필패’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여론을 종합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먼저 손학규 후보가 발끈했다. “청와대가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키기로 작정했냐?”라고 받아쳤다. 정동영 후보는 “참평포럼 등 측근·참모들의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이 일로 참여정부평가포럼이 오랫만에 언론에 재등장했다. 이들이 물밑의 오리발처럼 ‘노무현 브랜드’로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물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후보의 지적대로 지난 9월5일은 5명의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가 확정된 날이다. 이변 없이 손학규-정동영-이해찬-유시민-한명숙 후보 순으로 컷오프를 통과했다. 이를테면 ‘손학규 축제의 날’이다. 여기에 재를 뿌린 것이다. 노대통령은 시도 때도 없이 “손학규는 안 된다”라고 분명하게 밝혀왔다. 그러니 작심하고 날을 잡은 것이다. 돌 하나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도로. 한 마리는 손학규 후보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이명박 후보이다. 일단 이후보 쪽도 ‘명예훼손 혐의’로라도 걸어 검찰 조사로 발목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후보에 대한 청와대발 검증의 예고편이라는 분석이다. 이같은 청와대의 행보에 오히려 ‘바짝’ 긴장한 쪽은 한나라당이 아닌 범여권 쪽이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에 사망 선고를 내리고 어렵게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시켰지만, 범여권의 후보 구도는 여전히 노대통령의 손에 있다”라는 얘기를 범여권 쪽 사람들은 솔직하게 토로한다. 결국 “1,2위인 손학규·정동영 후보가 날아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관측하기도 한다.
왜 이런 얘기들이 나올까? 노무현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5개월뿐이다. 내년 2월이면 ‘전직’이라는 호칭만 남는다. 그 이후에는 ‘보통 사람’으로 고향 봉하마을을 지켜야 한다. 참여정부에 스캔들은 없다고 큰소리쳤으나, 집권 말기에 정윤재 비서관과 신정아 사건 등 ‘권력형’ 의혹이 터졌다. 게다가 친노 후보인 이해찬·유시민·한명숙 세 후보는 경선에서 3,4,5등을 했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인 상황만 보자면 레임덕에 빠져 손을 놓고 있을 상황이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참평포럼, 준 정당 조직으로 ‘진화’…경선에서도 큰 역할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씨는 참여정부평가포럼(이하 참평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이다. 참평포럼은 노대통령 퇴임 후 그 추종자들이 노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계승하기 위해 만든 정치 전위 조직이다. 노사모와 성격이 같다. 최근 안희정씨는 이해찬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이같은 안씨의 행보는 친노 세력들의 정향성(定向性)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노심(盧心)의 방향도.
그런 안희정씨가 절규했다. 최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 ‘사라져버린 우리당, 잊지 말아야 할 새 정치 실험’에서 손학규·정동영 두 후보의 컷오프 1, 2등 경쟁, 친노 후보들의 열세와  관련해 “분하고 분하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가슴 저 밑에서 분노와 서글픔이 밀려온다”라고 했다. 그는 “(친노 후보들이) 나머지 3장
 
을 향해 뛰어야 하는 그 처지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에게 손학규 후보는 “10여 년 동안 몸담아오던 자신의 당을 경선에 불리하다고 뛰쳐나온 분”이고, 정동영 후보는 “100년 정당을 약속했다가 여론 지지율을 핑계로 스스로 당을 부숴야 한다고 주장했던 분”일 뿐이다. 노대통령 생각과 한 치 오차가 없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배신자’라는 얘기이다. 예비 경선 결과에서 그의 절규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제 친노 후보인 이해찬·유시민·한명숙 3인의 후보 단일화가 유일한 돌파구이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상당히 열려 있다. 세 후보 모두 암묵적으로 후보 단일화에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경선 총 득표수를 보면 1위인 손학규 후보(4천6백67표), 2위인 정동영 후보(4천6백13표)보다 3위인 이해찬 후보(2천7백9표), 4위인 유시민 후보(1천9백13표), 5위인 한명숙 후보(1천7백76표) 표를 합치면 총 6천3백98표로 1위 후보를 압도한다. 3자 구도가 되면 해볼 만한 것이다. 1백표 차로 6위로 밀려 ‘컷오프’된 추미애 후보나 천정배 후보, 신기남 후보, 김두관 후보등의 표의 성향도 손학규·정동영 후보 지지 세력과는 색깔이 다르다. 정통 민주개혁 세력을 자임하는 친노 쪽에 오히려 더 가깝다. 9월6일부터 시작된 MBC의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 토론회를 보면, 그 방향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애써 서로 웃고 있지만, 공격의 방향은 이해찬·유시민·한명숙 후보의 ‘손학규·정동영 죽이기 게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참평포럼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DJ의 연청 조직이 움직였듯이. 
이제 노대통령과 범여권 2007년 대선 전략의 윤곽이 잡힌다. 정당 중심 의회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대통령의 정치적 근거는 사라졌다. 집권당이던 열린우리당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대체 세력을 만들었다. 2002년 ‘노무현 신화’를 탄생시킨 ‘노사모’의 재건과 ‘참평포럼’ 구성이다. 노대통령은 이들을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라고 불렀다. 두 조직의 통합 구상도 흘렸다. 이른바 ‘배아줄기세포’이다. 참평포럼이 ‘12·19 대선 이후 포럼의 비전’을 연구 과제로 삼고, 노사모가 ‘미래준비위원회’를 구성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2007년 대선은 물론 그 이후까지를 준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즉, 노대통령은 이 조직을 통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은 이번 경선에서도 이해찬·유시민·한명숙 세 후보가 여론조사의 불리함을 뛰어넘고 3,4,5위로 안착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참평포럼은 서울·경기 등 전국 15개 시·도에 지역포럼을 만들었다. 정당의 시·도당을 그대로 원용했다. 사실상 준(準)정당 조직이다. 참평포럼 쪽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에  따르면, 선거구에 해당되는 지역 관리자도 내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 또한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예비단계라고 할 수 있다. 참평포럼 대표인 이병완 전 청와대비서실장은 당 총재 격이다. 안희정 상임집행위원장은 사무총장인 셈이다. 그는 오래 전 “여당 사무총장을 했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불법 정치 자금으로 구속되기 전에 한 말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그는 이제 이해찬 전 총리를 지지한다고 ‘커밍아웃’한 상태이다. 또한 열린우리당이 공중 분해되었다지만 그 잔재는 남아 있다. 열린우리당 사수를 외친 김혁규 전 의원과 김원웅 의원 등이다. 그들과 ‘코드’가 같다.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년 총선 겨냥한 행보도 활발
참평포럼은 인적 자원 또한 풍부하다. 회원이 2천여 명이고, 지금도 하루하루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이해찬·유시민·한명숙 캠프에 합류한 청와대 출신들의 최종 목적지도 내년 총선이다. 이정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지난 7월 참평포럼 부산 지부 일을 도맡기 위해 사퇴했다. 참평포럼의 무게가 느껴진다. 허성무 청와대 민원제도혁신비서관도 이해찬 캠프에 합류했다. 정윤재 전 의원수석비서관 역시 이해찬 캠프에 가세할 계획이었으나, 건설 업자와 전 부산국세청장 사이의 뇌물 고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 진퇴양난이다. 그는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무실도 운영했다고 한다. 부산 출신 김은경 전 행사기획비서관도 청와대에서 빠졌다. 이렇게 청와대를 떠난 참모가 30여 명에 가깝다. 이들의 1차적 목표는 ‘친노 대선 후보 만들기’이다. 구체적으로는 이해찬 후보의 당선이고, 실패할 경우 참평포럼 멤버로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종착점이다.
정윤재 전 비서관과 관련한 의혹도 부산 쪽 친노 그룹이 정치 세력화를 무리하게 꾀하면서 터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는 2004년 총선에 출마했었고, 이때도 적지 않은 선거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규모의 선거 사무실과 일부 지방자치 선거 출마자에 대한 지원도 포함된다. 그에게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은 건곤일척의 전쟁터일 수밖에 없다. 그가 현금 ‘1억원’을 든 건설 업자를 국세청 국장과 만나게 한 배경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건설 업자 김상진씨는 수시로 “청와대 비서관이 뒤를 봐주고 있다”라고 큰소리쳐왔다고 한다. 특히 정윤재씨와 가까운 건설 업자 김효진·김상진 형제가 가입해 활동해온 ‘비전과 연대 21’도 주목 대상이다. 여기에는 정윤재 전 비서관과 이정호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윤경태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 출신들이 청와대로 진출하거나 부산시 고위 간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인질 사태 해결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맹활약한 김만복 국정원장 역시 부산 기장 지역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그 또한 노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당연직 참평포럼 회원으로 가입할 대상이다. 그는 “출마하지 않겠다”라고 일단 부인했지만. 이를 두고 범여권에서조차 “까치 배 바닥 같은 소리”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직 참평포럼 조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노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일찌감치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대비해 대체 조직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준비된 그들’이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조직에 밝은 정동영 후보 진영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이해찬 후보 대선 후보 만들기이고, 2차 목표는 이해찬-문국현-민주당 후보 간 2차 단일화이다. 문국현 후보도 “손학규 후보만 아니면 후보 단일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조순형 후보도 범여권 후보 단일화라는 원칙론엔 찬성하는 입장이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대통합 민주 세력의 단일 후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전략은 한쪽에서는 ‘범여권 단일 후보 탄생’으로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명박 후보 검증으로 한나라당을 옥죄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과 추종 세력들이 ‘노무현 브랜드’로 살아남겠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목표를 향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들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심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전략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민심을 얻기 위해 피아를 분명하게 가를 것이다. 어차피 선거란 51대 49 싸움이므로. 그 전쟁의 중간에 남북정상회담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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