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층에게 한가위는 ‘겨울’이다
  •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서울복지재단 대표이사) ()
  • 승인 2007.09.15 16: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세계장애인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8백명이 넘는 외국의 장애인 대표단이 참가하면서 한국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서울에 모인 장애인 대표들은 장애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로부터의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외쳤다. 이런 합의를 종합해 ‘서울선언문’까지 채택했다.
 그런데 회의장에서 만난 한 외국 장애인 대표의 호소가 마음에 걸린다. 서울의 일류 호텔에 묵고 있는데 샤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하체가 불편한 중증 장애인인 그가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욕조에 작은 목욕용 의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호텔에는 그런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다음날이 되어서야 용도에 맞지 않는 의자를 준비해 개운치 않은 목욕을 했다고 한다.
다른 한 사람은 호텔에서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주변이라도 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휠체어를 타고 10분 이상 다니기가 힘들어 아름다운 서울 거리를 돌아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용 차량에 올랐는데 휠체어를 고정도 하지 않은 채 출발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외국인도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대표가 상임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한국 복지의 겉모습이 여지없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계단 100개 중에 99개를 없앴으니 할 만큼 했다고 자위하는 식의 2% 부족한 정책으로는 장애인의 마음속에 있는 서글픔의 100개 계단을 하나도 치유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장애인 분야뿐이겠는가. 통계에 의하면 1990년에서 2005년 사이 국제 결혼 건수가 24만 건이 넘는다. 이 사이에서 출생한 다문화 자녀들이 취학하면서 초등학교의 풍속도는 그야말로 ‘다문화적’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섬세한 한국 사회 통합 프로그램은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다. 결혼 이민자를 위한 언어와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거의 없고 자녀의 양육이나 교육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약하다. 98%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그들도 우리 국민이 아닌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문제도 이제 사회적으로 인식이 확산되기는 했으나 뚜렷한 대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통합’ 이끄는 섬세한 정책이 아쉽다
추석 명절을 맞아 각 자치단체나 복지재단 등에서는 소외 계층을 위해 나름의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처들이 단발성으로 끝나면 이 나라의 소외된 이들은 긴 한숨 내쉬며 또다시 찾아온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러한 고리를 끊는 조용하고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다. 각 당 대선 후보나 예비후보들은 추석 민심을 잡기 위해 다양하게 행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행보가 이 땅의 소수자와 소외된 분들을 진정으로 품어안을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허망한 ‘소리의 민족주의’가 아니고 이제는 ‘내용 있는 신 국민 통합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올 겨울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이에 대한 방안을 내놓고 실천할 수 있을지를 소수인들과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확신하건대 소수인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후보가 다수의 국민을 움직일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