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골 키운, 더러운 욕망의 ‘노인과 바다’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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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젊은 여인이 매일 발을 디디고 서 있던 땅의 끝자락을 만나러 길을 떠났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확 트인 세상을 보고 싶었다.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철썩철썩 바위를 치는 파도 소리와 비릿하면서도 상쾌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시야는 어느 것도 앞을 가로막지 않고 수평선이 그대로 보이는 바다를 향했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고 자연이 주는 날 것의 아름다움을 맘껏 즐겼다.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고 나서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은 평화로운 어촌에서 인심 좋은 어민들의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마침 푸근한 웃음으로 배 여행을 권하는 70대 노인의 모습이 반가웠다. 드디어 육지에서 발을 떼고 바다로 나가 황혼기를 맞은 인생 선배의 구수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아마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리라.
아마도 지난 9월25일 전남 보성에서 발생한 70대 노인의 살인 사건 피해자들은 위에서 묘사한 여행의 모습을 꿈꿨을 것이다. 이전에 살해되었던 두 남녀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욕정으로 가득한 70대 노인은 네 명의 젊은이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고 창창한 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겉으로는 왜소하고 나약해 보이는 노인이지만 고립무원의 바다에서 고기잡이용 어구를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젊은이도 당하지 못하는 잔악한 살인마일 뿐이다. 살인마는 자신의 나이가 70을 넘은 사실도 잊고, 아름다운 젊은 여인에게 욕정을 품었다. 그에게 바다는 자신의 계획을 펼치기에 좋은 장소에 불과했다.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로움을 즐기고 싶어하던 젊은이들은 아름답게만 생각했던 바다에서 아쉽게 생을 마감했다.
살인자는 2남5녀의 자녀와 10명의 손자를 두고 얼핏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던 주변 사람들도 이 노인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이웃과 더불어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연달아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이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을 주는 조폭보다 더 큰 공포감을 주는 것이 우리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악당이다. 자꾸만 흉폭 해지는 범죄 소식이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친절한 노인이 악한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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