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 ‘별’은 오래 뜨지 않았다
  •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07.10.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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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관련 주식, 대부분 반짝 상승 후 내리막길…일부는 ‘작전’에 휘말려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 간에 설전이 오갔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영화배우 하지원씨의 검찰 고발 의뢰 건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엇갈린 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간 것. 결국 국감장에서 하씨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딱딱하기로 소문난 국회에서 영화배우의 이름이 오르내린 이유는 ‘주가 조작’ 때문이다. 하씨는 지난 2005년 5월 스텍트럼DVD 주식 66만여 주를 인수하고 3개월 후 20만 주를 매각해 15억원 대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
금감원은 주가 조작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씨는 자신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무혐의’로 결론내며 하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씨가 검찰 조사까지 받아가며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은 ‘연예인’이라는 세 글자가 주식시장에 주는 파괴력 때문이다.
증시의 연예인 붐의 기원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0년 11월 섬유회사이던 신안화섬이 IHIC에 인수된 뒤 인터넷 사업과 연예 산업을 기업화시킨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어 2002년 10월 코스닥 등록 기업이던 영화직물이 쌍용그룹 2세였던 김석동씨의 지분 참여 이후 이름을 모션헤즈로 바꾸고 연예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른바 연예 기획사·제작사들의 우회 상장 시대가 열린 셈이다.
허위 공시로 일반 투자자 농락하기도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IHIC는 애초 이 사업의 기획자였던 이성주씨가 손을 떼면서 가오닉스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2년 5월 비디오 DVD 제작 유통사인 스타맥스에 합병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나마 스타맥스는 행복한 경우이다. 모션헤즈는 김석동씨 등 애초에 이 사업에 뜻을 모았던 수뇌부들이 주가 조작설에 휘말리면서 경영권이 넘어가 지니웍스로 이름이 바뀌는 등 짧은 기간 동안 다섯 번이나 최대 주주가 바뀌다가 급기야는 2005년 상반기에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제조 업체에서 인수·합병의 바람을 타면서 연예 관련 기업으로 변신한 그 순간부터 작전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해 이용만 당한 셈이다.
그럼에도 코스닥 기업들은 연예인 영입을 통한 대박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무리수가 지난해 문제가 되었던 ‘뉴보텍’이다.
뉴보텍은 지난해 2월 <대장금>을 통해 한류 스타로 떠오른 이영애씨가 설립하는 ‘주식회사 이영애’에 지분을 투자해 공동 경영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씨는 가족과 함께 ‘주식회사 이영애’를 설립하고 최대 지분과 공동 경영권을 뉴보텍이 확보해 계열화한다는 것이 뉴보텍의 설명이었다. 5천원 대에 머무르던 주가는 이미 2만3천원 대를 넘어선 상태였다. 주가는 이영애 영입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허위 공시로 판명났다.
허위 공시로 판명난 후 뉴보텍의 주가는 곧바로 급락하며 반 토막이 났다. 공시가 발표되던 당일 4백20만주나 거래되던 뉴보텍은 이영애씨측이 검찰에 고소하는 등 공식적인 대응에 나서자 이후 4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주식을 내다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공시를 믿고 산 투자자들의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컸다.
만약 성공적으로 유명 연예인을 영입했더라도 주가가 이처럼 곤두박질 쳤을까? 실망스럽게도 답은 ‘그렇다’이다. 급전 직하까지는 아니더라도 주가는 ‘영입’ 발표가 난 뒤 길게는 1주일 정도 반짝 상승한 뒤 끝없는 하락세를 기록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팬텀이다. 팬텀은 사실상 코스닥에 등록된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주 중 하나이다.
지난 2005년 당시 골프공 제조 업체였던 팬텀은 음반 기획사인 이가엔터테인먼트와 DVD 유통사인 우성엔터테인먼트가 우회 상장 회사로 낙점받으면서 엔터테인먼트 주로 변신했다. 이후 드라마 제작 업체인 사과나무픽쳐스, 국내 2위 연예 기획사인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 탤런트 김희선의 소속사인 내추럴포스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음반·매니지먼트·드라마 제작·DVD 유통 구색을 갖춘 종합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되었다.
증권사의 호평도 이어졌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콘텐츠 제작 업체로서 정부의 저작권법 보호 강화에 따른 온라인 음원의 본격적인 유료화와 DMB·IPTV 등 신규 디지털 채널 확대에 따른 콘텐츠 수요 확대 등 제도적·산업적 변화의 수혜가 기대된다”라며 매수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점이었다. 그해 2월부터 10월까지 3백원 대이던 주가가 2만원까지 쉬지도 않고 올랐다가 10월 말부터 속절없이 하락하기 시작해 2천원 대까지 급락했다. ‘10분의 1’ 토막이 난 것이다. 그러는 사이 팬텀 자회사인 팝콘필름이 신동엽·유재석·김용만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인 DY엔터를 인수하고 김성주 전 MBC 아나운서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며 호재를 던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도형 회장이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대주주들이 조세 포탈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주가는 더욱 떨어졌다.
 
이런 현상은 팬텀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말 이효리 소속사인 DSP엔터테인먼트는 호신섬유를 통해 우회 상장했다. 이후 DSP는 1천원 대였던 주가가 1만원 대를 뛰어넘었지만, 그뿐이었다. 3천원 대로 다시 쪼그라든 것이다. 이런 주가 하락은 부진한 실적 때문이다. DSP는 지난해 매출액이 2백86억1천5백만원으로 전년보다 늘었지만 영업 손실 34억4천2백만원, 순손실 41억9천9백만원을 기록했다.
제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도 기업 실적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에 DSP 최대 주주인 이호연 대표는 지난 7월 레드코리아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1백86만1천6백73주(20.69%)를 1백20억원에 매각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결국 코스닥 시장을 떠났다.
지난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작해 유명세를 얻었던 강제규필름과 명필름은 MK픽쳐스를 통해 우회 상장했다. 하지만 결국 실적 악화로 코스닥 입성 3년 반 만인 지난 7월 최대 주주인 강제규 사장과 이은 사장, 심재명 사장 등이 보유한 주식 1천2백96만 주(29.09%)를 김영균 강원방송 대표 등에 총 1백50억원을 받고 넘긴 다음 코스닥 시장에서 발을 뺐다.
결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신규 사업 찾기로 생존책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기업이 예당이다. 예당은 한때 팬텀과 함께 코스닥 엔터테인먼트 대표주였다.
“이제는 연예인들의 탈 코스닥 행렬 시작됐다”
예당은 음반사로 출발한 만큼 음원 보유와 유통에서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변신했다. 예당은 지난 6월 자회사로 예당에너지를 설립했고 이달 초 예당에너지를 통해 러시아 유전 시추 사업에 진출했다.
DVD 유통 전문 업체인 엔터원은 교육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엔터원은 최근 대일학원 등 교육 관련 업체 3개 사를 인수해 교육사업에 진출했으며 오는 2008년 초 개강을 목표로 대형 교육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2005년과 2006년처럼 연예인의 이름만으로 주가가 급등했던 시절은 사실상 갔다. 개인 투자자들 역시 반짝 상승 뒤의 급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체들도 신규 사업으로 수익을 내기 힘든 것은 물론 그나마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던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도 힘겨워져 사실상 진퇴양난에 빠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연예인들의 코스닥 입성이 봇물을 이뤘다면 이제 탈 코스닥 행렬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라고 덧붙였다.
엔터 주 테마가 사라졌다고 해서 개미들을 지옥으로 이끈 함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엔터 주 테마가 시들해지기 무섭게 ‘재벌 2세 테마’ ‘자원 주 테마’가 입을 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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