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서다’ 경선, 죽다 살까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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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일괄 경선으로 일단 ‘숨통’…파행 불씨는 계속 남아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극한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인단 대리 접수 논란이 불법 선거운동 공방으로 확대되면서 경선 일정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통합’은 간데없고 ‘분열’만 남았다. 한나라당의 ‘과열 경선’을 비판하며 ‘아름다운 경선’을 약속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이제 경선 자체가 무산되어 후보 각자가 뿔뿔이 흩어지는 파국을 맞게 될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벼랑 끝 대결’은 일찌감치 예고되었다. 경선 첫 주 조직력에서 앞선 정동영 후보가 종합 1위를 차지하자 이해찬·손학규 후보측에서는 충북 지역 몰표 등을 근거로 ‘차떼기 동원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손후보는 추석을 앞둔 지난 9월20일 합동연설회에 불참하며 칩거에 들어가는 등 ‘무력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판세를 가늠할 ‘슈퍼 4연전’으로 주목된 광주·전남, 부산·경남 지역 경선을 치르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버스 동원 의혹, 유사 콜센터 운영, 부산 조직 동원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경선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급기야 이해찬·손학규 후보는 지난 10월1일 예정에 없던 심야 회담을 갖고 ‘경선 일정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던지며 ‘반(反)정동영’ 협공에 나섰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 등의 명의를 도용한 선거인단 대리 접수 지시자가 정동영 후보 지지자인 종로구의회 의원으로 밝혀진 것이 빌미가 되었다. 두 후보는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책을 당 지도부에 요구했다.
이후보측은 △노무현 대통령 불법 명의 도용 △불법 콜센터 이용한 휴대전화 선거인단 대리 접수 △차떼기 대규모 동원 선거 △이용희 국회부의장 관권 선거 지원 요청 △전북 생활체육협의회 박스떼기 선거인단 모집 △부산 금정구 불법동원 기획서 발견 등을 ‘정동영 후보측의 불법 선거 사례 모음’으로 제시했다.
“지금까지 본 선거 중 가장 무법하고 무도해”
이후보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신당의 후보 경선 과정은 지금까지 본 선거 중에서 가장 무법하고 무도한

 
선거이다. 이렇게 타락한 선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잘못된 제도를 가지고 악용한 후보는 더 나쁜 것이다. 무슨 낯으로 개혁 정치, 좋은 정치를 하겠다고 하나”라며 정후보를 비난했다. 그는 “이런 선거를 치른다고 하면 당 자체가 크게 외면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국민들에 대한 큰 결례이다”라며 당 지도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손후보도 성명을 통해 “그동안 이루어졌던 불법 선거에 대한 명백한 진상 규명과 엄중한 조치, 향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불법 선거의 토양을 뿌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내 경선이라고 무기력한 땜질 처방과 봐주기식 묵인으로 일관한다면 그나마 일궈왔던 정치 개혁의 성과마저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릴 것이고 국민의 신뢰는 영영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경선이 파행으로 치닫자 당 지도부는 부랴부랴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오충일 대표는 10월3일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국민경선위원회회의와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잇달아 가진 후 “이대로 국민경선을 진행할 수 없기에 국민경선 잠정 중단 결정을 내렸고 일정을 조정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 지역 순회 경선을 중단하고 남은 전지역의 동시 투표를 진행하겠다”라며 ‘일괄 경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8개 지역 경선을 10월14일 한꺼번에 치르는 방식으로, 개표 결과 및 모바일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는 15일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일괄 발표하기로 했다. 
오대표는 다음날 중진 의원들을 만나 “경선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 제반 상황을 감안해볼 때 드러난 문제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14일 일괄 경선을 실시하는 것이 경선을 유지하고 경선 후 승복을 확보하는 데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그런 결정을 했다”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김덕규 의원은 “노적가리가 불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도부가 원칙을 가지고 풀어가야 한다. 후보들의 요구를 일일이 들어서 일을 하면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김근태 의원도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중진들도 함께 지도부를 지원하고 단합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자”라며 지도부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의 이같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세 후보측은 제각각의 이유를 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동영 후보측은 “경선 일정 변경은 원칙 위반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해찬·손학규 후보측도 “전수 조사를 통해 불법 선거인단을 걸러내야 한다”라며 요구 수위를 높였다.
상황이 진정되지 않자 오대표는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음주 월요일(8일)부터는 경선 일정을 정상화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한 캠프가 따라오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일괄 경선’ 강행 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는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기 때문에 내주부터는 경선 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요일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이 주도적으로 경선 일정을 밀고 갈 것이니 세 후보는 지도부가 하는 일에 따라주기 바란다”라고 재차 촉구했다.
불법 선거운동 밝혀지는 쪽은 ‘끝장’
정동영 후보가 당 지도부의 ‘일괄 경선’을 받아들이면서 일단 큰 고비는 넘기게 되었다. 정후보는 10월5일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당의 결정을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겠다”라며 수용 입장을 밝혔다.
 
정후보가 전날 “당 지도부가 경선 도중에 규칙을 바꿔 민주주의의 원칙을 위반했다. 지도부의 폭거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가 한 발짝 물러선 데는 1위를 달리는 후보로서 ‘판을 깨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우선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는 지금 모두가 공멸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모두가 패배자가 되고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경선 판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대의와 원칙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큰 원칙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망설이고 주저했을 때는 공멸할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감이 나를 결단하도록 몰아세웠다”라고 설명했다.
손학규·이해찬 후보의 불법 선거운동 관련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강한 의지와 함께 두 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는 “정동영과 정동영 캠프에 대한 낙인찍기 공세를 벌이고 있는 데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도 말려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과적으로 진흙탕 선거가 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정후보는 또 “우리는 서로를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한 배를 타고 있는 동지이다. 상호 비방을 즉각 중지하고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경쟁하는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로 일대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것을 약속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광주시청 청사에서 공무원들을 동원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관권 선거, 경기도 군포시를 비롯해 광역 범위에서 금품을 지급한 금권 선거 그리고 전직 장·차관과 공기업 임원 등을 동원한 신종 관권 선거, 이런 것이야말로 대표적인 구태 선거이다. 최근에는 참여정부평가포럼이란 유사 조직을 총동원해서 실질적인 권력형 선거를 벌이고 있기까지 하다”라며 역공도 펼쳤다.
앞서 정후보측 김현미 대변인은 “손후보와 이후보측이 정치적 금도를 넘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라고 비난하면서 두 후보와 관련한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손후보와 관련해 ‘일당 5만원씩 36명 무단 서명을 통한 대리 접수’와 ‘현역 군 장교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례’ 의혹을, 이후보와 관련해 ‘대전·충남 지역 불법 콜센터 운영’과 ‘참평포럼의 공직선거법 위반 신종 관권 선거’ 그리고 ‘부산 지역 택시회사의 선거인단 불법 동원’ 의혹을 각각 제시하면서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당장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을 뿐 경선 파행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세 후보측은 저마다 경선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총력전에 나설 태세이다. 10월14일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위기감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불법 선거운동 공세가 어느 한 쪽에 치명상으로 나타날 경우 갈등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정동영 후보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 정후보측 박명광 의원은 “우리가 제기한 13가지 불법 사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다. 국민경선위원회와 최고위원회에 구체적 증거를 첨부해 제시한 자료이다. 손학규 후보의 광주 관권 선거, 군포 금권 선거, 이해찬 후보의 충남 불법 콜센터 운영 등에 대해 철저히 진상 조사하고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특정 후보측의 일방적 매도와 근거 없는 흑색 선전을 종식시킨다는 이유로 남은 전지역에 대한 전수 조사와 더불어 결과의 전면 공개와 함께 홍보를 위한 모든 기회를 박탈한 채 유권자의 선택을 강요하겠다는 것은 동원된 모바일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승부를 가리겠다는 구태적 발상이다”라며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 전면 공개’를 요구했다.
같은 시각 이해찬 후보측 의원들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후보의 회견은 적반하장이고 경선 파행의 본질을 축소시키고 있다. 불법 대리 접수, 불법 동원, 불법 콜센터 운영 등 총체적 불법 행위에 대해 진실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도 여전
특히 “노무현 대통령 명의 도용 사건으로 경찰에서 조사 중인 구의원 정씨 문제를 정후보와 캠프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열혈 지지자가 일으킨 것이 아니다. 정씨가 깃털에 불과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정후보의 사과와 수사 협조를 촉구했다.
손학규 후보측 우상호 대변인도 “당의 결정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경선 파행이라는 사태는 정후보측의 불법 부정선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정후보는 이런 경선 위기를 불러온 원인 제공자로서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정동영 후보는 ‘일괄 경선’을 수용했지만 “경선 도중에 원칙과 룰을 바꿔버리는 당 지도부의 이번 결정은 납득할 수 없다. 우리 민주 정당사에 오점을 남겼다. 아주 나쁜 전례가 될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당 지도부는 이같은 결정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앞으로의 경선 관리에서 한 점 의혹과 불신을 받지 않도록 투명성을 확보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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