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실세 따로, 얼굴 마담 따로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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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에 비친 북한 권부 지형도 /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영일 내각총리 ‘두각’

 

북한의 권력 실세는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존재한다. 심지어 김위원장의 공식 행사에 누가 가장 많이 수행했는지의 횟수를 놓고 권력 서열을 따지기도 한다. 김위원장 주변이 곧 권력으로 직결되는 셈이다. 조선노동당과 국방위원회를 북한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의 직함을 갖고 있다.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 북한 주요 간부들의 면면에도 상당한 변화가 엿보였다. 북한의 핵심 권력 실세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했느냐의 여부가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를 가늠하는 또 다른 척도가 된 까닭에 바뀐 인사들의 면면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지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보다 더 많은 북한의 간부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평가도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실질적인 핵심 권력 실세는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북한 권력층의 세대 교체는 최근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지난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서서히 단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북한은 의전상의 권력 서열과 실제 핵심 권력 세력이 어느 정도 구분되는데,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공식적인 행사에는 아무래도 의전상의 고위 간부들이 등장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북한에서는 권력 서열 2인자로 두 명이 혼재되어 소개된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82)과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77)이다. 이번 2차 회담은 단연 김상임위원장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외용일 뿐이다. 이번 회담에도 김위원장을 대신하는 ‘얼굴마담’ 역할만 톡톡히 했다. 그에게는 항상 권력 서열 2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실질적인 2인자로 보는 이는 없다.
이 대목에서 ‘실질적 권력 서열 2인자’로 인정받는 이가 바로 조부위원장이다. 그는 국방위 제1부위원장에 군부의 핵심 기구인 총정치국 국장까지 겸임함으로써 명실공히 김위원장 다음 가는 권력을 쥐고 있다. 1차 회담 때 조부위원장은 순안공항에서 비행기 트랩 아래까지 걸어가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는 등 2인자로서의 역할을 활발히 했다. 하지만 이번 2차 회담에는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심장 질환으로 건강이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부터 권력층 세대 교체
이번 회담에서 조부위원장을 대신한 이는 김일철 인민무력부장(71)이다. 그는 국방위에서 김위원장과 조부위원장에 이은 서열 3위로 통한다. 하지만 김부장을 북한의 진정한 세 번째 군부 내 실력자로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인민무력부장은 군부 내부보다는 외곽의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실질적으로 북한 군부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김위원장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군부 내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김격식 총참모장(64)이나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71)이 우리측 김장수 국방장관의 파트너로 더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4월 북한은 3대 권력 요직인 총참모장과 내각 총리, 그리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차례로 새로이 임명했다. 북한의 군부와 행정 내각, 그리고 대남 사업의 수장이 한꺼번에 바뀐 셈이었다. 북한의 새로운 권력

 
실세 재편이라는 점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총참모장에는 야전통인 김격식 전 2군단장이, 내각 총리에는 경제 전문 관료인 김영일 육해운상(63)이, 통일전선부장에는 김양건 국방위 참사(66)가 각각 임명되었다.
총참모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김영춘 부위원장 역시 여전히 군부 내 실세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현재 병세가 심각한 조부위원장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이번 회담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김위원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김총참모장은 조부위원장을 대신해 군부 대표로 회담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관측되었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김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으로 군부 내 실세로 통하는 현철해 총정치국 부국장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나 김영일 내각총리는 예상대로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가장 부각된 인물은 김부장이다. 그는 1차 회담 때의 김용순 전 부장의 전례대로 이번 회담에도 김위원장의 유일한 배석자로 자리를 함께 했다. 김위원장의 김일성 종합대학 동창으로 알려진 그는 노동당 국제부장과 국방위 참사 등을 맡으며 김위원장을 최측근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다. 정실장은 “김부장이 차지하는 북한의 정치적 비중은 우리의 국정원장·통일부 장관·청와대 안보실장 등 장관급 세 명을 모두 혼자 상대할 만큼의 실질적 권력 중추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김영일 내각총리는 4·25 문화회관에서 노대통령을 맞을 때 제일 앞자리에서 먼저 악수를 나눴다. 지난 1차 회담 때 홍성남 총리가 아예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은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북한의 경제 사령관으로 통하는 김 총리의 비중이 남북 경협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셈이었다.
김교수는 “일부 군부 핵심 실세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나 격이 떨어졌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실장은 “굳이 군부 실세라고 해서 정책결정 과정에 나설 이유는 없다. 북한 사회에 분명히 숨은 권력 실세는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의전 행사 때 전면에 나서는 것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어차피 북한의 모든 권력은 김위원장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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