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방판’, 뒤로는 ‘다단계’
  • 왕성상 전문기자 (wss4044@hanmail.net)
  • 승인 2007.10.0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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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업계, 변칙·불법 영업 판쳐…아모레·LG 등 대기업도 버젓이

 
화장품 업계에서 변칙·불법 영업이 판을 치고 있다. 대표적 유형은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강매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다단계 판매. 신고는 방문 판매업(방판)으로 해놓고 다단계 영업을 하는 것이다. 특히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까지 변칙 영업을 일삼아 ‘기업 윤리를 저버리고 있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곳으로는 이들 두 업체 외에도 중견 회사 여러 곳이 있다. 나드리화장품, 화미화장품, 한국화장품, 한불화장품, 소망화장품, 코리아나화장품과 6개 화장품 유통 업소 등 12곳이 해당된다. 모두 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고발·시정 명령을 받은 사업체들로 영업 규모가 크고 수법이 다양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공정위 조사에서 드러난 영업 흐름을 보면 다단계 전문 회사 못지 않게 조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최소 4~8단계의 판매원 조직을 거느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판매 활동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주면서 철저한 인맥 관리로 장사를 하는 것도 특징이다. 
 나드리화장품 직판 조직인 서울 강남사업장의 경우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본부장·처장급의 위탁 관리인 그룹과 그 밑에 5단계의 판매원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판매원들은 자신이 거느리는 요원들의 실적에 따라 우선 모집 장려금 5%를 갖는다. 반면 화장품 장사를 한 영업 사원은 최고 33%까지 판매 수당을 받는다. 여기에 그룹 수당(18만~35만원), 사업 활성화 수당(5% 또는 9%), 직급 수당(30만~1백60만원)까지 보태어져 실적이 좋을수록 개인과 조직에 떨어지는 돈이 적지 않다. 리더가 되면 웬만한 대기업의 임원 봉급 못지않다.
승급 조건도 다단계 조직의 특징을 접목시키고 있다. 매달 그룹 실적(본인 및 하부 조직원 1명 실적) 5백만원 이상, 그룹 누계 실적 1천2백50만원 이상이면서 일정 기간(3개월) 활동 조건을 채우면 부장으로 올려주고 이어 실장→국장 순으로 승급시킨다. 돈과 승급을 다단계 장사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5단계 판매원 그룹 두고 수당 나눠먹기
지방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화장품 대구영업점의 경우 각 4단계 조직으로 되어 있다. 위탁 관리인 그룹은 사업단장·사업처장·국장·지부장으로, 그 밑의 판매원 그룹인 에이전트는 팀장과 요원 등으로 얽혀 있다. 화장품을 파는 일선 요원에게는 24~31%, 그 위 팀장에게는 그룹 실적에 따라 직책 수당조로 9만~55만원이 주어진다.
팀장에게는 이와 별도로 자신이 추천해서 들어온 사람의 판매액에 따라 모집 수당 4%가 돌아간다. 승급 조건은 누계 개인 실적 5백만원 이상, 승급 직전일 개인 실적 2백만원 이상, 피모집인 1명당 실적 50만원 이상이면 팀장으로 올려준다. 팀장이 되면 조직원들의 영업 실적에 따른 후원 수당, 모집 수당, 직책 수당 등 혜택이 많아져 무리를 해서라도 뛴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현상은 조사를 받은 다른 화장품 회사들의 경우에도 거의 비슷하다. 수당 금액과 장려금 비율, 조직 명칭이 약간씩 다를 뿐이다. 
문제는 고객에게 파고드는 판매 그룹들이 수당과 승급 유혹에 빠져 적지 않은 폐해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연고 판매, 대인 판매로 사행성을 부추기고 소비자들에게 직·간접의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다단계 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함으로써 각종 소비자 보호 의무 사항도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소비자 피해 보상 보험 계약, 후원 수당 정보 공시, 판매 가능한 제품 가격(1백30만원 미만) 제한 등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이들 판매업자들에게 다단계 판매업으로 등록하든가 판매 조직 시스템을 모두 바꾸라고 요구했다. 가입한 판매 요원들 체계가 3단계 이상이면 다단계 판매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법을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면서 법을 어겨 충격을 주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경우 △방문 판매업 신고 사항 변경 미신고 △홈페이지를 통한 방문 판매원 등록 여부 확인 의무 위반 △다단계 판매업 미등록 영업 행위가 적발되었다.
이에 대해 화장품 업계는 할 말이 많다. 공정위가 유제품을 파는 업소 사례를 들며 화장품 업체에 이 방식을 따르라는 것은 업계 속성을 모르는 탁상 행정이라는 견해이다. 판매원 모집에 기여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다단계로 본다면 방판을 접으라는 것과 같다는 시각이다. 화장품 업계 방판 종사자(다단계 제외)만 최소 10만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독립 사업자들인 이들이 일손을 놓으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이들 회사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강력한 추가 제재를 내릴 태세여서 양쪽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추가 조사를 하겠다는 정부와 반발하는 업계의 뜨거운 공방전이 불가피해질 전망이어서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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