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범죄 꼼짝 마! 네티즌 보안관이 간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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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등 조직, 끝까지 추적해 단죄

 
 사이버 보안관은 소속이나 계급이 없다. 범인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도 없다. 이름 대신에 ‘아이디’나 ‘별명’을 사용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추적한다. 사이버 세계에서 한 번 범죄는 영원한 범죄가 된다. 특정 사건, 특정 피해자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파급력이 뛰어나다.
사이버 보안관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더치트 운영자 김화랑씨(남·26)는 사이버 보안관의 지존으로 불린다. 김씨는 지난해 1월 인터넷 사기 피해 정보 공유 사이트 ‘더치트’(http://thecheat.co.kr)를 개설했다. 인터넷 구매 사기를 당한 경험을 살려 사기 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더치트가 문을 열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이트가 개설된 지 1년 만에 회원 수가 2만명에 육박했다. 피해자들이 몰려들면서 ‘사기 방지’에서 ‘범인 검거’라는 공세적인 사이트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더치트에 공개된 피의자 가운데 2백여 명이 검거되는 실적을 거두었다.
경찰은 더치트에 올려진 사기 정보를 단서로 범인 추적에 나서기도 한다. 더치트에는 ‘사기 피의자 인적 사항’ ‘사기 피해 사례’ ‘검거 소식’ 등이 실시간으로 등록되고 있다. 5백여 개의 범죄 피해자 사이트와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연방 보안관’인 셈이다.
고등학생 문경원군(남·17)은 지난해 1월 ‘인터넷 사기 사건 수사본부’(http://cafe. naver.com/netizenpolise)라는 카페를 개설했다. 현재 회원 수는 1백53명, 규모는 작지만 사이버 사기에 관한 갖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문군은 경찰 수사 뺨치는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터넷 물품 판매 사기범을 직접 추적하기도 했다. 사기꾼이 자주 쓰는 아이디를 찾아서 연락처를 알아낸 후 피해 보상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사기 사건 수사본부에서는 자체 수사 대원을 모집한 후 범인 추적에 나서고 있다.
문군은 “인터넷 사용이 늘어나면서 범죄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경찰이 손을 쓰지 못하는 사건이 많다. 네티즌들이 힘을 모으면 범인을 잡는 데 큰 보탬이 된다. 네티즌이 곧 경찰이다”라고 강조했다. 
사이버 보안관들은 대부분 사기 사건에 집중되어 있다. 피해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들 간의 결속력이 그만큼 강하다. 살인이나 의문사나 미제 사건의 경우에는 가족·친지 그리고 관심 있는 네티즌들이 범인을 쫓고 있다. 미제 사건으로 남은 대구 개구리 소년 살인 사건에도 네티즌의 추적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 6월에 개설된 ‘성서초교생(개구리소년)살인사건’(http:// cafe.daum.net/ frogboystruth)에는 5천2백명의 네티즌이 회원으로 가입해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버 보안관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피해자 대책위원회, ○○○피해자 모임, ○○사건 공동 대응 카페 등은 ‘사건별 추적형’에 속한다. 제이유(JU) 다단계 사업 피해자들이 만든 ‘JU 사업피해자전국비상대책위원회’에는 5천2백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피의자를 지목해 현상 수배나 지명 수배 형식으로 추적하는 것은 ‘개인 추적형’이다. ‘박○○ 지명수배’ ‘이○○ 현상수배’ ‘사기꾼 강○○ 대응카페’를 말한다. 특정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사이버 사기 사건 전체를 취급하는 더치트나 인터넷 사기 사건 수사본부는 ‘연방 추적형’에 속한다.
대부분이 범죄 피해자 출신
현재 인터텃 포털 사이트에는 사이버 보안관을 자처하는 카페가 5백개가 넘는다. 온·오프 라인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온라인에 결성되어 있다.
사이버 보안관들은 대부분 범죄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범죄와 싸우고 있다. 하나는 ‘나에게 피해를 준 범인을 잡겠다’는 것과 ‘또 다른 피해자를 막겠다’는 것이다. 사이버 범죄 추적 사이트나 카페에는 피의자의 사진이나 개인 인적 사항, 은행 계좌번호 등이 자세히 올라와 있다. 피의자의 아이디뿐만 아니라 개인 블로그 등을 찾아내 행적을 추적한다. 
사이버 보안관의 활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공개 수배’가 늘어나면서 인권 침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각종 ‘수배 전단’이 넘쳐나 개인의 인격 침해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범죄 피의자라도 해도 개인 사생활과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이버 보안관의 활동이 인민재판식 인격 살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사이버 보안관의 활동에는 긍정적이다. 다만 피의자가 검거되더라도 자신의 인권 침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삼으면 곤란해진다. 사이버 보안관들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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