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종전선언 ‘헤게모니’ 삼국지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10.1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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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부시 임기 내에 북·미 관계 정상화가 목표 미국, 동북아 냉전 구조 한꺼번에 해결 노려 중국, 종전선언 4자회담 참여는 당연한 권리 주장

 

'노무현 정부’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북한의 의도는 2·13 합의 이행의 본격화 추세에 맞추어 남북 관계를 급진전시켜 정세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남북정상회담을 활용할 가능성도 고려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연기됨에 따라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등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관련한 의제의 비중이 높아졌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와 올 9월7일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료 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 용의를 표시한 데 이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냉전 해체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종전선언은 부시 대통령이 제안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전달했으며 김정일 위원장이 수용하는 과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종전선언은 3국 또는 4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 지대의 종언을 알리는 이벤트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대전환의 전기를 새롭게 맞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핵 모호성 전략’을 넘어 핵 카드를 노출해 협상을 모색하는 벼랑 끝 전술의 거의 마지막 카드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국제 사회를 향해 ‘핵 확산이냐, 협상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을 충격 속에 목격한 국제 사회는 북한 핵을 용인할 수 없다는 목표가 분명해졌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인접 국가들은 북핵 실험을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미국 부시 행정부는 비확산 정책의 실패를 자인할 수밖에 없는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수세에 몰린 부시 행정부가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서 내놓은 카드가 종전선언과 평화 체제 약속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10월10일 정상회담 성사 과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이 평화 체제 구상을 처음 밝힌 것은 2006년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이다.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이 비핵화하면 평화협정 체결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해달라”라고 부탁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즉시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부총리급)을 평양에 보냈다. 하지만 김위원장은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 문제를 비롯한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부시의 제안에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응답했던 것이다. 북한은 위기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충격 요법을 통한 국면 전환을 모색했다. 그러자 유엔은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젤리코의 주장처럼 모든 당사자가 각자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느꼈을 때 공기는 달라졌고,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부시 행정부는 젤리코 보고서에 따라 ‘핵 포기시 평화 체제 약속’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결국 6자회담에서 2·13 합의를 도출하면서 ‘젤리코 구상’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종전선언 전주곡이 된 한·미 정상회담
한반도 종전선언 구상을 담은 보고서를 부시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은 필립 젤리코 전 미국 국무부 고문(버지니아 대학 교수)이다. 젤리코 보고서의 핵심은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과감한 접근법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고 한달음에 동북아 냉전 구조를 해체하자”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부시의 감수성을 자극했고, 김정일 위원장의 ‘통 큰’ 발상과 맥이 닿았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던 빅터 차 현 조지타운 대학 외교대학원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4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서 ‘비핵화하면 평화 체제를 만들겠다’라는 말을 듣고 평양에 특사까지 보내 전달했다. 하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응답했다. 따지고 보면 최근 수개월간 드러난 북한의 행동 변화는 중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안 승인이라는 압박과 미 재무부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줄 압박이라는 양대 요인이 불러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2006년 11월 하노이와 2007년 9월 시드니에서 열린 ‘노무현-부시 한·미 정상회담’은 10월4일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의 종전선언 합의의 전주곡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 용의를 표시한 것은 북핵 실험 이후 핵 보유고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종전선언에는 북한에게 핵을 버릴 수 있는 명분을 줄 테니 비핵화를 실현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핵실험 이후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핵무기와 모든 핵개발 계획의 완전포기를 전제로 한국전쟁 종료 선언, 북·미 관계 정상화, 에너지 및 경제 지원 등을 제시하고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현안을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움직임에 발맞춰 북한은 2·13 합의에서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disablement)라는 ‘전략적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 이후 잃어버린 10여 년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북·미 관계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전쟁의 종료 선언은 북·미 적대 관계 해소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북한이 줄곧 요구해왔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의미하므로 북·미 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볼 수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기 전에 먼저 1970년대 초 미·중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1978년 덩샤오핑 등장 이후 개혁·개방을 본격화한 경험에 비춰볼 때 북·미 적대 관계 해소는 북핵 해결의 지름길이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한국전쟁 종료선언을 할 수 있다는 용의 표시에 미국의 ‘진정성’이 있다면 북·미 적대 관계 해소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등과 관련한 놀라운 진전이 있을 수 있다. 특히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남북한과 미국이 3국 정상회담을 열어 한국전쟁을 종료하고 평화 체제 구축에 합의한다면 한반도 냉전 구조는 해체될 것이다.
3국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의 단초는 부시 대통령의 한국전쟁 종료 선언 시사 발언과 함께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의 발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성렬 차석대사는 2004년 5월12일 가진 유에스에이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남북한과 미국이 참가하는 3자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한 주장을 해 이목을 끈 바 있다. 한차석대사는 한반도에 군대를 두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영구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한차석대사의 말을 ‘남북한과 미국이 서명하는’ 평화협정이라고 해석했다.

북한, 3자 평화협정 가능성 미리부터 준비
북한이 그동안 북·미 평화협정 또는 불가침 조약 체결과 남북 불가침 합의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한차석대사의 말이 ‘한국·미국과 북한 3자가 동시 서명하는’ 협정을 뜻하는 것이라면, 기존 주장과는 다른 새로운 평화협정체결 방식이다. 북·미 평화협정(잠정 협정·불가침 조약) 체결 주장에서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 평화협정 체결로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 주체를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10·4 선언에서 합의한 3자 또는 4

 
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북한이 한 것으로 알려져 3자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은 북한이 이미 수년 전부터 고려해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함께하는 4자회담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정전협정의 실질적 당사국이자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실질적 당사국인 남북한과 미국이 3자 종전선언을 하고 4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일 수 있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국은 유엔과 북한·중국이지만, 중국은 인민지원군 형태로 참전했고, 1994년 12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대표를 철수시켰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형성된 적대 관계를 해소했다.
중국 외교부는 10월9일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중국을 배제한 3자 정상회담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동북아의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이며 북한과 조약 체결국이다. 동북아 정세와 평화 체제 문제에서 중국은 당연히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말해 중국이 배제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류 대변인은 또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인민들의 이익에 부합하고 중국의 평화와 안정, 발전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지지하며 조약 체결국으로서 중국은,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의 전제 조건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며 “6자회담에서 이 문제를 주요하게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평화 체제 수립은 점차적으로 외교 통로와 협상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라고 중국의 입장을 밝혔다.
9·19 공동성명에서 “6자는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고,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합의했다. 그리고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를 다룬 10·3 합의에서 참가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베이징에서 6자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될 것임을 재확인했다. 따라서 종전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에 관한 논의는 6자회담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시 대통령의 결단만 남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결단이다. 부시 대통령의 제안에 김정일 위원장이 화답했기 때문에 이제 공은 워싱턴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 임기 중에 북·미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협상을 서두를 것이다. 북한은 연내 2·13 합의 이행이 완료되는 것과 함께 종전선언을 하고, 핵폐기와 평화협정 및 관계 정상화를 맞교환하는 2단계 협상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종전선언을 완료하고, 미국의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기 전에 북·미 관계 정상화를 꾀하려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김정일-부시 3자 정상회담을 통해서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경우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는 본격화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진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 냉전종식을 외교적 업적으로 삼으려는 전략적 결단을 한다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를 통해 북·미 적대 관계가 해소되면 정상 국가의 일원으로 국제 사회에 편입하겠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북한 스스로 불법 행위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불량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나오라는 입장이다. 북한은 자물쇠가 밖에서 채워졌다고 보고 미국이 위협과 압박, 제재를 풀면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미국은 자물쇠가 안에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사상·이론적 조정 등을 통해서 스스로 열고 나오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북한 스스로 자물쇠를 열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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