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처럼 살아나는 ‘생존본색’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10.29 13: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 3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대권 출사표 놓고 계산기 두드리기 한창

 
갑자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왜 이럴까? 뜬금없는 그의 대선 출마설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치인 이회창’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대선 출마로 대통령이 된다면 그야말로 최상이겠지만 못 되더라도 출마는 해야 차기 정권에서도 지분을 챙길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인 이회창’은 없다. 그의 17대 대통령 선거 출마설의 배경에는 ‘이명박 낙마설’이 도사리고 있다.
아직은 이후보 지지율이 50%를 상회하며 고공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는 이 전 총재의 언급도 모호하다. 대선 삼수(三修)가 낯간지러운 듯 ‘대권 도전’이라는 질문만 나오면 얼굴을 붉힌다. “정권교체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라는 말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명박을 중심으로’가 그의 입에 오른 적은 없다.
그렇다고 ‘우물쭈물 모드’가 오래 유지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11월25일 훨씬 이전에 출사표를 던질 확률이 크다는 것이 정가의 중론. 그 시기는 이명박 후보의 진로와 직결되어 있다. 이후보 앞에는 ‘BBK 김경준’이라는 시한 폭탄이 기다린다. 그의 변호사는 “김경준이 귀국하면 모든 것을 다 불 것(if he goes, he sings)”이라고 예고했다. 국민의 60% 이상은 “이후보가 ‘김경준 청문회’에 출석해야 한다”라고 믿고 있다.
현재 50%를 상회하는 지지율이 언제 어떤 곡선을 그을지 아무도 모른다. 김씨는 빠르면 11월28~29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누나 에리카 김씨까지 “귀국과 증언”을 입에 올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또 다른 의혹이 회자되고 있다. 이후보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기 위해 모종의 통로로 2백만 달러를 전달했다는 것. “확실한 증거를 여권이 갖고 있다. 곧 터뜨릴 것이다. 이를 이회창 전 총재도 알고 있다”라는 식의 루머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여하튼 이후보를 강타하기 위해 뭔가 터지기는 터질 것이라는 예고이다.
혹여 그렇게 되어 이후보의 지지율이 폭락이라도 하게 되면, 한나라당으로서는 후보를 교체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11월25~26일, 이미 후보등록이 끝나기 때문이다. 박근혜 카드를 부여안고 발을 동동 굴러도 별 수 없다. 그때는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고개를 번쩍 들 시점이기도 하다.
마침 10월25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이 전 총재의 출마에 찬성하는 답변은 29.7%나 나왔다. 특히 대전·충청은 대선 출마 찬성이 42.9%로, 반대 22.8%를 압도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출마 반대가 52.2%로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기는 하다.

 
후보 사퇴해도 정치적 지분 챙겨 남는 장사
이 전 총재로서 ‘대선 후보 등록’은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이다. 만약 이후보가 교체나 낙마라도 하게 될 상황이면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유일 후보로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이후보의 지지율이 막판까지 유지된다면, 후보 등록은 한 후 ‘정권 교체를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적당한 시기에 후보 사퇴를 해도 된다. 물론 이 경우 그의 주머니에는 정치적 지분이라는 현찰이 두둑하게 들어올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출마가 오히려 좌파정권의 연장을 도울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는 이명박·이회창이 모두 떨어지는 게임보다는 어느 경우도 모두 살아남는 윈-윈 게임을 하려고 할 것이다.
‘BBK 사건’ 자체보다 김경준씨의 귀국 시기가 이후보에게는 참 치명적이다. 11월28일 전후이면 선거일을 불과 20일 앞둔 시점이다. 김씨가 뭔가 작심하고 이후보의 비리를 폭로하면 해명하고 반박하고 할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 2002년 이회창 후보가 김대업씨의 병풍 의혹 제기, 설훈 전 의원의 20만 달러 수수, 한인옥 여사 기양건설 20억원 수수 의혹 폭로 등 시간차 공격에 휩쓸려 가랑잎처럼 추락한 신세를 상기하면 된다. 이후보는 3대 사기 폭로에 휘말려 선거운동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57만여 표 차이로 석패하고 말았다. 노무현 후보의 충청도 수도 이전 공약은 거의 죽음 직전인 이후보의 등에 날아든 비수였다.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 후보 등록이 끝난 후가 될 김경준씨의 귀국까지 기다릴 리 만무하다. 이 전 총재는 이미 갈짓자 걸음을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저런 강연에서 ‘좌파 정권 종식’을 강조하면서 “미래도 철학도 없는 대선 주자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이후보도 영락없는 타깃이다. ‘BBK 김경준 시한 폭탄’을 앞둔 이후보로 좌파 정권 종식이 되겠느냐는 물음이 담겼다.
이 전 총재측의 한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후보가 유일한 보수·우파 후보로 등록을 마친 뒤 거꾸러지는 상황을 가상해보라. 좌파 세력에게 무릎 꿇고 정권을 진상하는 꼴이다. 이미 통합신당 문희상 의원은 ‘엄청난 게 터진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범여권이 막강한 정보력으로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지 우파 진영에서 불안해한다. 유일한 대안인 박근혜 전 대표는 후보 등록조차 할 수 없는 ‘식물 상태’이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에게서 박근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럴듯한 변이다.
한 발짝 더 나간 논리도 있다. ‘이명박 구속설’이다. 이후보 상대의 청와대 고소 사건과 친인척 차명 재산 의혹, 도곡동 땅 의혹 등 마음만 먹으면 11월25일 이전에 신병구속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얘기이다. 가능하거나 말거나 여하튼 이 전 총재를 부추기는 쪽의 논리이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여기에서도 고개를 치켜든다. 이명박 후보 유고시 범보수-우익-양심적 중도 세력을 통합할 대체재 또는 대안이 경기장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전 총재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나 될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에게는 “두 번의 대선 실패로 나라를 친북 좌파 세력에게 헌납한 죄인”이라는 비난이 여전히 따갑다. 그것도 주로 보수층에서 나오는 목소리이다. 무소속 출마를 망설이게 하는 강력한 역풍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측근들은 할 말이 준비되어 있다. “이명박 후보와 선의의 경쟁을 해서 투표 직전, 앞선 후보에게 양보하고 단일화하면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같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라는 것이다.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결론은 뻔하다. 어떤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후보 등록은 할 것으로 보인다. 단, 마지막까지 뛸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이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정치적 지분을 챙길 것인지 하는 계산만 남는다. 결국 이 전 총재의 무소속 출마는 죽여도 죽지 않는 ‘정치인의 끈질긴 생존 본능’의 실현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