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능력도 ‘부창부수’할까
  • 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11.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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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새 대통령 오른 크리스티나는 누구인가 / 지구촌 첫 부부간 권력 승계로 주목

 

아르헨티나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던 지난 10월28일 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집권 여당인 승리전선당(FV)의 선거본부에서 후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당선 소감을 말하는 도중 한 젊은 여성 당원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믿던 후보가 당선된 때문만이 아니었다. 크리스티나 당선자가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그녀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나는 대통령 당선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크리스티나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이 여성임을 자랑스러워하고 대통령직 못지않게 여성의 중요성을 당당하게 부각시켰다. 젊은 여성 당원의 눈물은 여자라는 자부심에 주저함이 없는 새 대통령에 대한 감격에서 나온 것이었다.
크리스티나가 밝힌 여성으로서의 책임은 남편의 아내로서, 두 자녀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여성이기에 할 수 있고 해야 할 다른 일들 가운데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엘리자베트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라는 긴 이름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로 짧게 줄여 쓰는 그녀는 15세 때부터 화장을 시작한 조숙한 소녀였다. 54세의 나이에도 짙은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즐기고, 유럽 고급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도 즐긴다.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이자 권력 실세였던 이멜다를 연상시킬 만큼 다양한 구두 수집 취미도 갖고 있다. 성형수술을 했다는 정적들의 인신 공격에 그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파쇼니스타’(고급 패션 애호자)나 ‘이멜다’ 그리고 ‘크리스티나 여왕’‘보톡스 여왕’이라는 여러 가지 별명이 따라붙었다.
크리스티나는 이런 별명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화장과 치장과 쇼핑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기에 오히려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크리스티나는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자임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미지와 별명은 이름을 아르헨티나 식으로 발음할 경우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발음하는 그녀의 이름은 ‘끄리스띠나 페르난데스 데 끼르체네르’이다. 발음에서부터 당찬 모습이 연상된다.
크리스티나는 미모를 갖춘 글래머로 지성과 적극성도 함께 지닌 인텔리이다. 30년의 정치 경력을 자랑하며 현직 대통령인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정치 동반자이기도 하다. 중도 좌파로서 정치적 주장도 강하고 대중 연설도 남편에 버금갈 정도로 신랄하다. 미국 언론은 그녀의 연설이 자극적이고 도전적이라고 전한다.

명품 쇼핑에 화려한 의상 즐기는 인텔리

 
시사 주간지 <타임>은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반미 연설을 할 때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신랄’했다고 전했다. 키르치네르는 요즘 남미의 반미 독설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이다.
크리스티나는 그녀가 내세우는 사회적 포용 자본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세계 자본주의자들이여,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라’는 뜻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미국의 국제 질서 독주를 경고하고 이라크 전쟁이 유엔의 테두리를 벗어난 독자적 행동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이 크리스티나의 집권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 언론은 크리스티나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남편의 후광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현직 대통령에 이어 퍼스트레이디가 곧바로 후임 대통령이 되는 사상 전례 없는 권력 승계에 냉소적인 시선도 보낸다. 또 인기 절정에 있는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아내를 추대한 것을 두고 ‘부부끼리 권력을 주고받기’한 새로운 형태의 네포티즘(친인척 권력 독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크리스티나가 인구 4천만명인 아르헨티나의 차기 대통령이 되는 데 미국 언론이 지적하는 것처럼 간단하고 단순한 과정을 거친 것만은 아니다. 크리스티나는 1953년 아르헨티나 북부 오지인 라플라타에서 태어나 자랐고 1979년 라플라타 국립대학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인 1970년대 이미 페론주의 청년운동에 참가해 20대 시절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좌파 성향인 페론주의를 추종한 크리스티나는 현 아르헨티나 페론당의 한 파벌인 승리전선당의 리더가 되고 또 대통령이 되었다.
남편 키르치네르와는 대학 시절에 만나 1975년 결혼했다.졸업 후 리오 갈리고스에서 남편과 함께 변호사로 일하던 크리스티나는 1980년대 다시 정치를 시작해 1989년 산타크루즈 주 지방 의회를 거쳐 1995년에는 연방 상원에 진출했다. 남편 키르치네르는 1987년 리오 갈리고스 시장에 당선한 데 이어 1991년 산타크루즈 주 지사에 오른 후 3선을 한 뒤2003년 대통령에 당선했다. 크리스티나는 상원의원이자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힐러리와는 여러 면에서 닮은 꼴로 화젯거리가 된다. 빌 클린턴과 힐러리가 모두 변호사이고 빌 클린턴이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된 것이나 힐러리가 퍼스트레이디에 이어 상원의원이 되고 또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 등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부부의 성장 및 정치 여정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야심과 추진력에서도 두 여성 정치인은 서로 닮았다. 정치 성향은 진보적이거나 좌파 성향이다. 정치 활동에서 인기 있는 대통령 남편들의 후광을 입은 것도 같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힐러리 클린턴과 비교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힐러리의 정치 경력은 6년에 불과하지만 자신은 30년 경력이라고 강조하며 함께 견주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체급이 다른 정치인이라는 얘기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크리스티나는 서로 다른 점도 많다. 힐러리가 사치나 화장과 쇼핑으로 언론의 구설에 오른 적이 없는 반면 크리스티나는 그런 구설에 너무나 많이 시달렸다. 힐러리의 연설이 지적이고 냉철한 데 반해 크리스티나는 격정적이고 선동적이다.
힐러리가 미국 정치에서 냉혹하기로 이름난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를 거치고 있는 것과 달리 크리스티나는 대통령 남편의 후원과 당내 자동 추대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힐러리는 만일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남편 클린턴의 정치적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안고 갈 부담이 없다. 반면 크리스티나는 당장 아르헨티나의 사회·경제적 난제를 남편으로부터 떠안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6년간 매년 6~8%의 겅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소득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인플레이션과 도시 범죄 및 고위층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키르치네르 정부의 부패는 이번 선거전에서 상대 후보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내내 논란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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