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서린 ‘군기’도 무서운데…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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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경, 주당 근무 시간 80시간 달해…과로로 인한 스트레스가 구타·자살 부채질

 
1주일 사이에 두 명의 아까운 젊은이가 죽었다. 지난 11월11일 부산에서 발생한 김현종 이경의 사망 소식에 이어 11월15일 제주의 한 초소에서 김지민 일경(20)이 30m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경비 근무를 서는 도중 선임병의 지시로 얼차려를 받다가 절벽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부검 결과 구타나 여타 가혹행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전·의경 부대에서 잇달아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면서 ‘군기를 잡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전·의경으로 군 생활을 끝낸 사람들은 당시를 회상해보라는 부탁에 진저리부터 친다. 전역자 이 아무개씨(25)는 “맞는 건 아무 일도 아니고 잠도 못자고 점호 시간도 없다. 상병 달기 전까지는 하루에 4시간 정도 잤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일명 ‘밥 사역’이라고 부르는 음식으로 당하는 얼차려였다. 이씨는 “절인 고추만 가득 찬 식판을 주고 2분 내에 다 먹으라고 선임병들이 괴롭히곤 했다”라고 기억했다.
다른 전역자 안 아무개씨(28)도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난 후 전·의경 조직은 고참들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한다. 맞는 일은 식사하는 것보다도 더 흔한 일이다. 안씨는 “상부에 발설해서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더라도 배신자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고참 대접이나 인간 대접 받기 힘든 채 전·의경 생활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알려지지 않을 뿐 수많은 구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2007년 2월27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나타난 전·의경의 인권 실태 현황을 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서울 5개 기동대 소속 전·의경의 주당 평균 출동 시간은 최장 89시간, 최단 47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진압 훈련까지 포함한다면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이 70∼80시간에 달한다. 수면 시간도 부족해 하루 평균 5시간도 못 자는 전·의경이 6.3%, 5∼7시간 자는 경우가 54.7%로 나타났다. 인권위원회는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가 구타 및 가혹행위를 낳고 그로 인한 자살 및 자해 등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자살을 살펴보면 지난 5년간 연평균 8.6명이 자살하고 5.6명이 자해를 했다. 이런 자살 및 자해 당사자 가운데는 낮은 계급인 일·이경이 전체의 86%를 차지해 선임병에 의한 인권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자살률은 군대보다 높다. 최근 3년간 1만명당 평균 자살자 수를 조사한 결과, 육군은 1.17명이었으나 전·의경은 1.94명으로 훨씬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전·의경 조직 내에 구타 등 가혹행위가 심한 것은 군과 다른 전·의경만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전·의경은 군처럼 병영에서만 생활하지 않고 일반 사회에서 시위 진압이라는 임무를 맡고 있다. 시위는 일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선임병들은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강경한 방법을 사용해 조직의 분위기를 잡는다. 그 피해 대상은 주로 신병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자식을 전·의경으로 보낸 부모들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구타 등 인권 침해가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건이 발생한 뒤 축소·은폐되는 경우가 많아 부모들은 자식들이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설혹 사건이 터지더라도 부모들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아이들이 해꼬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부모들이 자율적으로 모여서 만든 단체인 ‘전·의경 부모의 모임’에서도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전·의경으로 복무 중인 자식의 문제로 전화를 걸어왔지만 누군지 밝혀달라고 하면 대응을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부모가 많았다. 이정화 전 대표는 “내가 이 모임을 만들었을 때도 ‘그렇게 하면 아이가 힘들어질 건데요’라고 경찰측에서 말하더라. 그래서 ‘내 아들을 거기서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냐’라고 따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유족들 “경찰 조직 특수성 때문에 축소·은폐” 불신

자살 등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경찰은 조용히 처리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경찰측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유족들의 반감을 사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해자의 진술만 듣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나중에 번복하는 사례들이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번복이 생기면서 유족들은 수사하는 경찰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게 된다. 자신들의 생각만큼 조사 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생긴 불만이 반목이 심해지면서 은폐 여부에 대한 의혹으로 커져 버린다. 경찰 내에서 벌어진 문제를 경찰이 조사를 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찰 내부를 아는 사람의 의견은 다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내부의 감찰 시스템이 엄격하기 때문에 정말 가혹하다 할 정도로 조직적으로 조사한다. 상급자가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조사에 문제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 모임의 이 전 대표는 “자기 식구를 자기가 조사해봐야 결과는 뻔하다”라고 비판했다. 인식의 차이는 이만큼 벌어져 있다.
전·의경 조직 내의 사소한 사건들을 축소하거나 은폐했던 전례 때문에 불신이 더욱 강해진 측면이 있다. 부모 모임의 이 전 대표는 축소·은폐의 이유를 “자신들의 밥줄이 달려있기 때문에 전·의경 조직 내에 사건이 일어나면 확실하게 은폐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건이 발생하면 조사위원회에서 감찰단이 내려오기 전에 부대원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강도 높은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한 사건의 책임은 전·의경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탓이 되어버린다.
경찰 조직이 가지는 특수성에서 문제를 찾기도 한다. 상급자에 대한 무한 책임주의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임교수는 “경찰관이 한 명 잘못하면 서장이 직위 해제되는 경우가 그렇다. 행위 책임도 형법에서는 개인별로 적용하는데 행정은 연대 책임이다”라고 설명했다. 상급자가 줄초상 나는 관행이 은폐와 축소를 조장한다는 이야기이다.
여러 해 동안 전·의경의 반인권적 실태가 고발될 때마다 경찰은 개선책을 내어놓았다. 지난 8월17일 조현오 경찰청 경비국장은 국정브리핑을 통해 “전·의경의 복무 환경을 개선하니까 인권 침해 행위의 대표적인 표본인 구타·가혹행위가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하지만 세 달 뒤 사라진 두 명의 목숨은 전·의경 문제의 해결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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