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대권, 나는 금배지” 동상이몽 대선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12.0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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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마음은 벌써 ‘총선 콩밭’에…공천 문제 걸려 합당·후보 단일화도 ‘쩔쩔’

 
대선 정국을 한 꺼풀 벗겨보면 두 개의 야릇한 기류가 감지된다. 대선 후보들은 사활을 걸고 육탄전에 돌입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 당과 소속 의원들의 몸부림이 대권 경쟁 못지않은 것이다. “후보는 후보, 나는 나” 식이다.
범여권의 당 대 당 통합과 후보 단일화 소동의 끝자락에도 내년 총선이 자리 잡고 있다. 정동영·이인제·문국현 후보 등의 저조한 지지율에 실망한 범여권 구성원들이 ‘대선 이후’를 곁눈질한 지는 오래되었다. 야권의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최선은 ‘당선’이지만 낙선하더라도 ‘이회창 보수당’ 등장과 내년 총선에서의 원내 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명박-이회창 후보 단일화’를 점치지만,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20%를 넘나들면서 그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하나는 정동영 후보를 중심으로 한 ‘대권 전선’과 정후보 당선 가능성에 회의를 품은 다양한 계파의 ‘총선 전선’이 그것이다. 정후보는 민주당·창조한국당과의 통합 및 후보 단일화를 일궈내 범여권 통합 후보로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건곤일척의 결투를 벼르고 있지만 소속 의원 상당수는 뒷짐을 지고 있거나 냉소적이다.
원인 제공자는 정후보이다. 살아날 줄 모르는 저조한 지지율 때문이다. 후보 선출 직후 20%를 살짝 넘긴 것이 전부이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 출마 선언 이후로는 더 비참해졌다. 하루아침에 3등으로 추락했다. 지지율 15% 안팎은 호남도 제대로 못 챙겼다는 반증이다.

대통합민주신당, 밥그릇 하나에 숟가락 여섯 개

정후보의 지지율 정체는 범여권 전체의 전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유시민 의원이 전쟁터 한복판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이명박 지지로 나타났다”라며 김 빼는 소리를 내지를 정도이다. 노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도 “정후보와 범여권이 BBK 김경준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라며 뒷덜미를 잡아챘다.
정후보가 주도한 신당-민주당 50 대 50 지분 합당은 정후보에게는 승부수였겠지만 신당 내 잡다한 세력에게는 ‘비수’였다. 아무리 대선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소속 의원 1백40여 명의 신당과 소속 의원 10명도 안 되는 민주당이 어떻게 같은 크기의 밥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 불만에 불을 지른 것이다.
신당에는 대략 6개의 계파가 존재한다. △정동영계 △이해찬-유시민-한명숙 등 친노계 △김근태계 △손학규계 △정균환 등 민주당 탈당 그룹 △오충일 대표 중심의 시민사회단체 출신 등이다. 간단히 말하면 숟가락이 여섯 개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정후보가 이 숟가락을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정후보가 무슨 자격으로 지분 50%를 민주당에 내줬느냐”라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노골적으로 터져나왔다.
정후보는 “이번 대선은 정동영 개인의 승패를 뛰어 넘는 것”이라며 양보를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민주당 탈당파 원외위원장 40여 명의 “정동영 후보를 교체하라”라는 아우성뿐이었다. 그래서 양당 지분을 70 대 30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민주당으로부터 “혼인 빙자 간음 집단”이라는 비난만 들었다. “다급해진 정후보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오히려 문후보는 “정후보가 사퇴하라”며 맞받아쳤다. 집권당 대선 후보가 탁발 나선 대처승 모습이다.
신당과 민주당의 ‘당내 의결기구 5 대 5 구성’과 ‘지분 50 대 50 합의’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 공천에 같은 비율로 자리를 갈라먹는다는 말의 점잖은 표현이다. 그렇게 되면 신당은 내년 공천에서 줄초상을 피할 수 없다. 신당에는 계파만 6개, 소속 의원이 1백40명이 넘는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구는 2백43개이다. 1명씩 뽑는다. 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면 2백43명의 지역구 후보를 공천할 수 있다. 신당 소속 의원 전원을 재공천한다면 1백40개 이상은 신당 몫이다. 나머지를 몽땅 민주당에 주어도 100개 미만이다. 여기서 부터 ‘50 대 50 지분’에 어긋난다. 56명의 전국구 후보에도 같은 비율을 적용한다는 것이 ‘50 대 50’이다. 정후보 진영을 제외한 신당 각 계파와 소속 의원들이 반발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호남에서 강세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총선을 제외하고 각종 크고 작은 선거에서 민주당은 호남에서 열린우리당을 이겼다. 더구나 민주당의 인적 자원은 온통 호남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신당에도 호남 출신이 다수이다. 이러니 합당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역 의원과 지구당위원장에게 물어보자. “집권이 중요한가, 아니면 금배지가 중요한가?” 열이면 열 모두 ‘금배지’이다. 현역들의 평범한 정서를 외면한 정후보의 협상이 사면초가를 자초했다.
정후보의 희망대로 이인제·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아군 진영의 줄초상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인제 후보가 독자 출마로 압박하는 것이나 문국현 후보가 “정후보가 먼저 사퇴하라”라며 견제구를 날리는 것도 모두 통합 협상에서의 ‘지분 챙기기’를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후보 단일화를 외면했던 문국현 후보가 “후보 단일화, 조건 맞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라고 넌지시 손짓한 것도 모두 ‘지분’에 대한 애착으로 볼 수 있다. 정후보의 “분골 쇄신해달라”라는 호소에는 메아리가 없다.

정동영·민주당 견제하는 DJ

범여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밀어붙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략에 최근 변화가 감지된다. 범여권 통합보다 ‘후보 단일화’ 쪽으로 추가 이동한 것이다. 배경에는 동교동의 민주당 박상천 대표를 향한 ‘견제’가 자리하고 있다. 박대표가 신당과 50 대 50 지분에 합의한 것은 내년 총선에서 박대표의 지분이 그만큼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박대표의 영향력이 막강해진다. 가뜩이나 박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인물이다.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거부했고, 김홍업 탈당과 신당 합류를 거칠게 비난한 장본인이 바로 박대표이다.
김 전 대통령은 11월13일 오마이뉴스와의 회견에서 신당-민주당 합당 및 후보 단일화에 대해 “지금은 시간도 없고, 통합으로 가면 국회의원이니 뭐니 이해관계가 얽히니까, 대통령 하나로 해서 연합을 해가지고 단일 후보가 되는 것이 좋지 않으냐, 그렇게 했는데 갑자기 (두 당이) 통합으로 나오니까… 내가 걱정한 대로 내부에서 말이 생기고 있지 않나”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합당이다 뭐다 해서 일만 어렵게 만들어놓았다는 질책이다. 그런데 후보 단일화는 정동영 후보가, 합당은 민주당이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결국 정후보와 민주당에 대한 불만인 셈이다.

 

최근 정가에는 ‘DJ의 마음은 문국현’이라는 말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여하튼, 김 전 대통령은 “문국현씨까지 포함해 다 연합으로 해서 대통령 당선시키고, 설사 안 되더라도 나중에 총선 끝나고 나서 통합해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눈도 이미 내년 총선으로 멀리 가 있는 것이다. ‘총선 이후’까지 영향력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지지율 50%를 넘어 파죽지세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대권과 당권 모두를 손에 넣은 것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2인자 이재오 의원은 이후보 지원에 소극적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일갈했고, 한나라당 접수 작업을 착착 진행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박 전 대표를 도운 현역 의원과 지구당위원장 지역에서는 이후보 대리인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 이들은 “총선 공천은 내 것”이라고 떠벌이고 다녔다.
박 전 대표를 도왔던 현역 의원과 지구당위원장들은 당장 ‘살생부’를 떠올렸다. 정계 복귀를 염두에 두고 박 전 대표를 도운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은 아예 “정치 폐업”을 입에 올렸다. 그것은 경선 과정에서의 앙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후보의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180°도 바뀌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가 이후보의 오만과 독선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이 전 총재 출마로 이후보 지지율이 35~40%대로 주저앉자 이후보는 박 전 대표에게 고개를 숙이는 듯한 제스쳐를 보였다. “국정 파트너” “당헌대로”가 그의 입에 올랐다. ‘국정 파트너’는 “본인만 원하면 국무총리로 국정을 공동 운영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이고, ‘당헌 존중’은 ‘대권-당권 분리’를 의미한다. 주머니에 들어온 현찰을 내놓는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회창 전 총재도 있다. 그와는 후보 단일화의 고비가 남아 있다.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이다. 이 전 총재가 선거에 나선 이상 측근들이 그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 그 수가 만만치 않다. 이 전 총재와 권력을 나눈다면 그것이 정부 요직 배분과 공천권이다. 측근들이 반발할지 모르지만 이후보로서는 대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이회창 후보가 단일화에 호락호락 응할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이회창 후보 출마로 범보수 지지층이 60%를 넘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인 11월29일 매일경제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 지지율은 39.3%, 이회창 후보 21.1%로 나타났다. 60%를 넘겼다. 반면, 정동영 후보 18.6%, 문국현 후보 5%, 권영길 후보 3.3%, 이인제 후보 0.9%, 심대평 후보 0.3%이다. 10%를 넘는 부동층을 감안하면 범보수 지지층이 60%를 훌쩍 넘는다고 보아야 한다. 조선일보가 11월25일 “정권 교체를 해야 하는가”를 물은 결과 57.6%가 “해야 한다”라고 답한 반면 “하면 안 된다”는 27.9%에 불과했다. “모름·무응답” 9%를 감안하면 약 60% 정도가 정권 교체를 바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범보수’로 보는 것이다.

이명박·이회창의 총선 셈법

이회창 후보 출마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명박 후보가 50%를 넘었지만 범보수 지지층이 지금처럼 단단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범보수로의 외연 확대 측면이 있다. 그의 출마로 정동영·문국현·이인제 후보가 모두 피해를 입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범보수 외연 확대는 야권에 약이 아니라 독이 될지 모를 일이다.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가 각각 출마해도 정권 교체에 문제 없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단일화를 할 이유가 없어서이다. 이명박 후보로서는 권력을 나눠주는 단일화를 꺼릴 것이고, 이회창 후보는 “2등 해도” 대성공으로 치부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후보로서는 대선에 져도 20% 정도의 지지율을 과시할 수 있다면 내년 총선에서 20~30석 정도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눈치이다.
이명박 지지에서 이회창 지지로 선회한 연세대 유석춘 교수는 “이명박·이회창·정동영 후보가 3 대 3 대 3이 아니고, 정권 교체가 확실하다면 이회창 후보는 3등이라도 완주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범보수층의 외연 확대’가 ‘새롭게 탄생할 보수 정당’에 내년 총선에서 무대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의원들도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낙선’으로 한나라당이 다시 박 전 대표에게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신보수 정당’에라도 의탁해야 2008년 공천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쪽의 상당수 정서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어도 절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쪽이다.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 김병호 의원의 탈당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보면 여야 모두에게 ‘후보 단일화’는 흘러간 옛 노래이다.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는 “너는 대선-나는 금배지” 유일한 판단 기준이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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