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는 서로 소통할 수 있다
  •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서울시립대 총장) ()
  • 승인 2007.12.10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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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특별 기고 / 독선·폭론·오만·부패 활개치면 모두 자멸
<시사저널>은 과학기술처 장관과 서울시립대 총장을 지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위 사진)의 글을 싣는다. 지성의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는 김이사장은 오만과 독선, 부패와 무능을 넘어서 합리적이고 건강한 세력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통점을 찾기보다 상대의 주장을 논박하기에 바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한 학계를 향해 그는 죽비를 든다. 김이사장의 글이 지성계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제 신보수·신진보의 지성들이 모여 새싹을 틔워야 한다.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거쳐 신진보·신보수의 소통과 대화가 선거, 정권, 정치를 넘어 대한민국의 이념 구조, 토론 광장, 담론 지도, 지성의 풍토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안팎으로 일대 격변기, 일대 전환기, 세기적·문명사적 변천기를 살고 있다. 한국의 정치 구도에도, 국제적인 세력구도에도 일대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워싱턴 컨센서스의 세계 기준도, 석유 달러의 위력도, 친디아(Chindia:중국·인도)의 성장도, 지구의 기후 변화와 정보화·이민의 대폭발 앞에서 뿌리가 동요하고 있다. 나라 안으로는 일대 혼란기, 폭로기, 갈등기, 분열기, 파괴기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권위도 정당의 이름도 재벌의 신화도 대학과 언론의 명예도 법과 종교의 신뢰도 모두가 붕괴되었다. 이 혼란, 폭로, 갈등, 분열, 파괴가 새 진실을 찾기 위한 큰 시련, 자기를 재발견하기 위한 큰 반성, 창조를 위한 큰 파괴, 통합과 수렴을 위한 큰 탐험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 21세기 지구촌 시대, 세계화를 뛰어넘고 근대화를 뛰어넘는 ‘지구촌의 공존’, 인류 사회의 새 가치, 새 삶의 양식을 숙성시켜야 한다.

한국의 이념 논의는 허구의 논쟁

그것은 한국에서 지성의 숙성을 요구한다. 그동안 한국의 이념 논의는 허구의 논쟁, 허상의 난타전이었다. 북한 문제라는 프리즘, 지역주의와 권력 프리즘에 반사되기만 하면 철저히 굴절되어버리고 이성의 논리는 증발되어버리거나 삶의 현장에서 유리된 절름발이 논쟁이었다. 이 나라의 정책 혼란과 혼탁의 상당한 책임을 지성과 이념의 혼란과 혼탁이 져야 한다. 이념의 차이에 의한 정책 경쟁이 아니라 연줄의 구별에 의한 권력 대결이 담론의 광장을 흐려왔다. 이념 논의의 혼란과 혼탁을 벗기려면 이 나라의 지성, 즉 이념·담론·지식·정책 담당자들이 다음의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가족 이기주의. 가족 연줄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지성인일수록 자기의 객관화에 충실하고 심지어 타자화(他者化)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는 일제 식민지 통치, 국토 분단과 6·25 전쟁으로 인해 모두 어느 편에 서기를 강요당하거나 떠밀려 어느 편 사람으로 구분되는 삶을 살았다(물론, 예외도 있다). 그리하여 어느 가족을 막론하고 4촌만 넘으면 이 비극의 흔적, 외생 변수가 만든 고통의 흔적이 끈적끈적하게 남아 있다.
이를 유교적 효도나 일차원적 귀속 집단의식으로 소화하려는 강한 전통이 지성과 이성의 설자리를 좁혀왔다. 학문적 배경이나 생활 배경까지 때로는 이들 가족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을 본다. 이 땅의 지성은 크게 보면 외생 변수, 외세 요인과 이에 대응했어야 할 우리의 능력 부족 때문에 안고 왔던 이 비극의 유산을 객관화시키고 나서 이념의 원형에 접근해야 한다. 개인과 개인 가족사를 뛰어넘는 객관화의 치열한 노력 없이 자기 안주, 자기 합리화를 위해 이념을 차용하거나 자기 한풀이나 보복의 논리로 이념을 동원하는 본능의 차원을 극복해야 한다. 그야말로 ‘나와 우리’의 객관화를 위한 자기 극복이야말로 어느 나라 지성인보다 더 요구되는 한국 지성의 도전이다.
둘째, 세계와 미래를 보는 눈이다. 우리는 지금 근대라는 틀 속에서 보수와 진보를 논의하고 있다. 세계화를 보는 시각도 근대의 연장선상인 논의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생존 조건은 핵무기, 재래식 군사력, 4대 강국과의 지정학적 세력 균형, GNP와 경상수지, 소득 분배, 사회적 분화와 통합 등 기능주의적 근대 논의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근대가 만들어놓은 결과, ‘근대화의 세계화’ 또는 ‘중국과 인도의 근대’ 편입이 만들어낸 결과는 ‘근대의 종언’과 근대 이후 탈근대, 초근대의 현상들을 목격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이상 기후, 에너지 값의 폭등과 ‘오일 달러 독재’(러시아,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 가봉, 이란, 버마,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이집트, 리비아…)의 확장, 자살 폭탄 테러의 확산, 물 부족의 확대와 해수면 상승, 원자력폐기물의 1만~100만년 관리 요구 등 행성으로서의 지구 위에서의 인간 삶의 지속성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중국의 과학기술자가 중국의 1인당 소득을 배로 올리려면 다른 행성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고 진단하고 일본의 학자는 중국인 모두가 수세식 변소를 쓰면 현재 중국인들이 쓰는 산업용·농업용·생활용수보다 많다고 계산하고 있다. 우리의 이념 지도는 근대의 지도가 아니라 ‘지구촌’의 지도여야 한다. 근대 국가와 근대 사회 구조를 뛰어넘는 ‘인류 사회’의 ‘인류 문제군’의 시각이어야 한다.
셋째, 한국의 지성은 그 어떤 이념 좌표에 있든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정체성을 수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성취, 즉 1945년 이후 독립한 1백40개 가까운 제3 세계 국가들 중 ‘유일’하게 민주 정치, 시민 사회, 언론 자유, 근대 경제 성장, 사상과 종교의 다양성, 고등교육, 첨단 과학기술 수준 등 근대화의 조건과 내용을 충족시킨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통계적·실증적 사실을 거부하고 한인(韓人)·한민족의 정통성을 북한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두려는 유사 종교적 폭론은 거부해야 한다.

보수의 최우선 덕목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다만 이런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에도 불구하고 또 완벽하게 성취했기 때문에 21세기 초근대적 지구촌 문제군의 도전이 더욱 빠르다는 사실에 더욱 분발해야 한다. 진정 이 나라에 보수주의자들이 있었다면 한강의 기적 속의 부패, 사회 해체로 치닫는 이기주의가 자본주의·보수주의와 등식일 수 없음을 좌파가 나서기 전에 앞장서 주창했어야 했다. 보수주의 엘리트는 공익을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보수의 최우선 덕목이다. 또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이 있었다면 우파반공주의자들에 앞서 김일성·김정일의 극악한 독재와 반복지, 반인간성을 고발했어야 했다. 진정한 진보는 억압·폭력과 결코 등식일 수 없다. 인권과 다원성이야말로 진보의 최우선 과업이다.
지난 60년의 짧은 경험은 이른바 보수와 우파 세력도 독선, 폭론과 오만, 부패가 활개치면 자멸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진보와 좌파 세력도 독선, 폭론과 오만, 부패가 활개치면 반드시 자멸한다는 교훈을 엄중히 주었다. 보수지만 개혁적이고, 진보지만 현실적이고, 보수지만 부패하지 않고, 진보지만 폭력을 거부하는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우익이지만 이기주의를 거부하고, 좌익이지만 아집을 거부하고, 우익이지만 경제 제일주의에 탐닉하지 않고, 좌익이지만 낡은 이념에 안주하지 않는 집단이 창출되어야 한다. 기성 세대지만 이상을 놓치지 않고, 젊은 세대지만 독선에 매몰되지 않고, 좌우, 보수, 진보 모두 사회공동선과 국가공익, 보편 윤리에 충실하고 이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는 그런 엘리트군, 그런 주류가 새로이 구축되어야 한다.
광복 60주년을 지내고 경제 제일주의와 민중·민족 제일주의라는 극단의 독성을 이겨낸 진짜 우익과 진짜 좌익,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가 나올 때가 되었다. 진짜들은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다. 더 큰 국익, 공익, 인류의 공동선에서 합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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