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푸틴을 위한’ 러시아의 미래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7.12.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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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끝나가도 물러설 조짐 없어…정치적 혼란기로 들어설 수도

 
지난 12월2일 세계의 이목을 끄는 투표가 두 곳에서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하원의원 선거가 있었고 베네수엘라에서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러시아에서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UR)은 압승을 거두어 푸틴의 영구 집권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베네수엘라의 위고 차베스 대통령은 대통령의 연임 조항을 철폐하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자신이 그토록 의욕적으로 추구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에 제동이 걸렸다. 역설적인 것은 투표에서 패배한 차베스보다 원하는 승리를 쟁취한 푸틴에게도 의문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푸틴은 8년을 집권했다. 그의 2기 대통령 임기는 내년 3월 끝난다. 그러나 물러날 조짐이 없다. 유효 표의 80%를 차지한 UR당을 통해 헌법을 고치면 세 번째 출마도 할 수 있다. 시간적 제약이 있지만 그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설사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로 군림하려는 것이 푸틴의 야망이다. 총리, UR당 지도자, 혹은 ‘국부(國父)’라는 모호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푸틴의 속셈은 옛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들어 장기 집권을 하는 것이다.
그의 탐욕을 자극하는 여건도 조성되었다. 석유 덕분에 경제는 회복되고 있고 모든 권력은 자신의 손안에 들어왔다. 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인기도 높다. 불행한 것은 이 모든 이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선 내년 3월에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가 최대 의문이다. 이 의문은 러시아가 또 한 단계의 도약으로 가느냐 아니면 극도의 혼란으로 가느냐를 판가름하는 갈림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러시아인들이 푸틴의 국정 운영에 일부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최대 업적은 경제성장과 러시아의 국제 위상 고양이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3류 국가로 전락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러시아는 옛 소련의 위치를 거의 회복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당면한 최대 위기는 푸틴의 임기가 끝난 후 권력 이양 문제이다. 푸틴의 측근들조차 이를 시인한다. 이런 고민은 최근 몇 달 동안 푸틴의 행적에서 나타났다. 그는 단순한 하원의원 선거를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로 변질시켰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 나붙은 선거벽보들은 UR당이 아닌 푸틴을 위해 투표하라고 독려했다. 푸틴을 강조한 것은 그의 야망과 연계되어 있다.
푸틴은 임기 후 무엇을 할지에 관해 공개적으로 밝힌 바 없다. 그러나 크렘린 궁 안에서는 벌써부터 암투가 시작되었다. 일련의 음모설도 나돈다. 측근들은 장기 집권을 할 수 있는 법의 맹점을 활용하도록 푸틴에게 촉구했다고 한다. 심지어 허수아비 대통령을 내세웠다가 몇 달 뒤 사임시키고 푸틴이 재집권한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하면 헌법상의 연임 금지 조항을 피할 수 있다.

허수아비 대통령 내세웠다가 재집권한다는 소문 돌아

권력 승계를 둘러싼 러시아의 정정 불안은 부시 대통령과 그의 후임자에게도 골칫거리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러시아와 긴장 관계에 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다. 미국이나 러시아 자체에 가장 큰 도전은 러시아의 권력 이양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수백 년 동안 러시아의 권력은 위에서 나왔다. 주체가 황제이든 공산당 서기장이든 대통령이든 마찬가지이다. 러시아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가 국민의 충성을 확보하느냐이다. 푸틴일 수도 있고 그를 대신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정치에 대체로 무관심한 러시아인들도 눈치는 챘다. 다시 말해 푸틴의 허수아비 대통령이 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사실상 없다는 얘기이다. 더구나 가혹한 야당 탄압 분위기 속에서 푸틴의 반대자가 지지 세력을 규합할 여지도 없다.
선거를 앞둔 수 주 동안 전국에서는 야당과 언론에 대한 극심한 탄압이 자행되었다. 정부 보조를 받는 기관이나 기업들은 UR당에 투표하라는 노골적인 압력을 받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직장에서 기권 표를 이용해 푸틴 당에 기표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기권 표는 거의 친(親)푸틴 표로 둔갑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선거 감시단이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들로서는 일부 선거 부정과 관영 언론의 편파 보도를 지적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고작이었다. 당국의 음성적인 방해로 부정선거에 대한 조사도 포기했다. 부정이 얼마나 노골적이었으면 미국 백악관이 부정선거 조사를 촉구할 정도였을까. 이번 선거에서 친서방적인 자유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참패했다.
뉴욕 타임스는 논평에서 푸틴의 승리로 러시아는 정치적 혼란기로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의 권력은 강화된 것이 아니라 약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고 풍자했다. 그의 야심을 둘러싼 의혹들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푸틴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정에는 계속 간여하겠다고 토를 달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푸틴이 과욕을 부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현 수준의 권력 장악이면 족하다. 그런데도 지나친 권력을 탐함으로써 반대 세력을 키우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은 선거 후 러시아의 권위를 회복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보리스 옐친 시절의 만발한 민주주의가 푸틴 치하에서 규제된 민주주의로 변질되었다고 본다. 하기는 러시아가 과도한 자유와 방만한 민주주의로 인해 국제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보다는 제약을 받는 민주국가로 남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도 룰이 있다.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이치이다. 야당 탄압, 언론 통제, 개리 카스파로프 같은 국제적 민주투사의 감금 등등. 푸틴이 과대망상증에 빠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심지어 한때 온건한 KGB 대령이었던 푸틴이 내적으로 정서불안증에 걸렸다는 괴소문마저 나돈다.
푸틴은 국민투표로 변질시킨 이번 선거에 의해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말했다. 그 프로젝트의 내용은 여전히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독재자들이 자주 국민투표를 이용했던 지난 역사를 감안하다면 푸틴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는 사실상 대통령 이상의 지위, 즉 러시아를 통솔하는 ‘사령관’ 혹은 ‘위대한 선장’이 되었다. 그러나 무슨 임무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가가 문제이다. 푸틴이 남 모르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추측을 할만하다. 러시아 경제가 발전했다고 하나 일반 국민의 삶의 질이 호전되지는 않았다. 부패와 인플레는 여전하다.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러시아 경제는 아직 국제경제 공동체에 편입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푸틴이 무리수를 쓰는 것으로 애써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경제를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것이 긴 역사에서 볼 때 옳은 일인지에 대한 논란이 남는다. 오죽하면 러시아에 ‘푸틴의 러시아’가 있고, ‘국민의 러시아’가 따로 있다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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