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법, ‘해’가 넘어간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 승인 2007.12.1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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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콤·이랜드의 노사 갈등은 계속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치 노선을 달리하며 갈라섰다. 2007년 노동계의 현실과 과제를 점검했다.

 
2007년 12월 현재 비정규직 사태와 관련된 장면 둘.
#장면1. 12월12일 오전, 여의도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정문.
코스콤(옛 증권전산)의 교섭거부로 지난 9월12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코스콤 비정규지부 조합원들과 경찰·경비 용역 업체 직원 1백50여 명이 뒤엉킨 채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이날 지부 조합원 50여 명은 사측과의 교섭을 요구하며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용역 업체의 ‘건장한 청년들’과 경찰이 이들을 막으면서 격한 충돌이 빚어졌다. 곳곳에서 고함과 욕설, 멱살잡이가 난무했다.
한 조합원은 경찰의 주먹에 맞았다며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날 회사 안으로 진입하려다 실패한 조합원들은 거래소 정문 앞에서 정리 집회를 갖고 여성 두 명이 포함된 교섭위원 다섯 명이 삭발까지 했다. 조합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비정규직 철폐하자!”
#장면2. 같은 날 오후, 동대문 성터교회 예배실.
이랜드 그룹의 유통 매장인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2백여 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난 8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열리는 수도권 총회가 있던 날이다. 울산과 전남 순천 등에서도 지역 총회가 열린다고 했다. 이들은 사측과의 협상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그에 따른 투쟁 계획을 세웠다. 이날은 성탄절 직전에 홈에버 주요 매장과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장로로 있는 교회에서 시위를 벌이자는 안건을 놓고 분임토의를 했다. 이랜드 그룹 유통 매장 비정규직 1천여 명이 집단 해고된 후 5백여 명은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4백60여 명의 조합원이 현재까지 남아 고용 안정과 차별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메아리 없는 “비정규직 철폐!” 구호

올해 노동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큰 쟁점으로 떠오른 비정규직 문제의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10년 전인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에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노동 유연화(labor flexibility)’ 논의는 노·사·정 간에 큰 입장 차이를 보였다. ‘노동 시장을 더 유연화 해야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사용자측과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노동자측이 첨예하게 맞섰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양측의 눈치만 보면서 어정쩡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비난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를 점거한 가운데 임채정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인 △기간제 및 단기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노동위원회법 개정안 등이 통과되었다. 이에 노동계는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노동 유연화를 합법화한 악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전면 재개정을 요구했다. 그런데 올해 7월1일 비정규관련법 시행을 앞두고 곳곳에서 우려했던 사태들이 벌어졌다.
이른바 ‘비정규직법’에는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 초과 사용시 무기 계약으로 간주한다’와 ‘동일·유사업무 정규직에 비해 임금과 근로 조건에서 차별적인 처우를 금지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자 사용자들은 기간제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를 외주화하는 형태로 ‘자구책’을 모색했다. 아무래도 ‘무기 계약’과 ‘정규직과의 차별 금지’ 조항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다 터진 것이 이랜드 사태이다. 이랜드 그룹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유통 매장인 홈에버와 뉴코아 등의 계산원 업무를 외주화하기 위해 비정규직과 계약을 해지하며, 초단기 계약서 제출을 종용했다.
이랜드측은 홈에버 3천5백여 명, 뉴코아 4백70여 명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용역계약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충돌이 빚어졌고 결국 이랜드 사측이 비정규직 노동자 1천여 명을 집단 해고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노조와 노동단체 등이 “비정규직법에 명시되어 있는 2년 초과 사용시 무기 계약한다는 조항과 정규직·비정규직 혼재 업무의 차별 시정 조항을 회피하고자 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지난 6월 말 파업과 함께 매장 점거 투쟁에 들어갔다. 이랜드 파업 사태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이 어떤 사태를 빚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파업이 진행되면서 사측은 노조측에 대한 고소·고발, 손해배상가압류 조치를 취했고, 노조는 고공 농성과 매장 점거 등으로 더욱 강경하게 맞섰다.
파업에 돌입한 지 6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이랜드 사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지난 12월12일 만난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12월로 접어들면서 그나마 사측이 타결 의지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노조의 ‘백기투항’을 요구했던 사측이 ‘전향적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사측은 내년 1월 말쯤에 홈에버-뉴코아 법인을 통합해 상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 파업이 장기화되면 상장 계획도 힘들어지고 누적 적자도 계속 불어나기 때문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측은 노조원들을 상대로 제기했던 민·형사상의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을 전면 취하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합원들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조측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한다. 우선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되어야 하며,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정규직 수준’에 맞게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외주화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 사측과 해빙 무드에 접어든 것 같지만, 노조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부위원장은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홈에버 주요 매장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사측과 협상을 벌이면서도 계획된 투쟁 일정은 그대로 추진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나마 이랜드 노조는 사측과 협상의 물꼬라도 터져 있지만,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화의 문이 막힌 상태이다. 주식시장과 증권 업계의 IT 인프라 구축과 운용을 전담하고 있는 코스콤의 이번 사태 핵심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파견 받아 사용하면서 도급으로 불법 위장했느냐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오래 전부터 파견 노동자들을 사용해왔던 코스콤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불법 파견 시비를 없애기 위해 50여 개 파견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지난 5월1일 대신정보기술 등 5개 도급 업체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 민법상 도급으로 위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증권산업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이하 지부)는 파견 노동자일 경우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한 계약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코스콤 사측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새로운 도급 업체와 계약했다고 주장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의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모두 불법 파견과 위장 도급을 신속하게 해결할 것을 사측에 통보했다. 노동부도 지난 10월 사측을 불법 파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사측에 노사분규 해결 권고 공문도 보냈다. 증권산업노조도 10월 말 서울 남부지검에 이종규 코스콤 사장 등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이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한 중앙노동위원회에 코스콤(원청)을 상대로 쟁의조정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었다. 중노위는 코스콤의 사용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급 형태로 고용된 것이기 때문에 코스콤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에 비정규 노동자들은 “코스콤이 사용자이면서도 사용자성을 부인하고 있다”라고 성토한다. 이에 반해 코스콤 사측은 “중노위 결정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코스콤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현재 검찰에 고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어떤 교섭도 있을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비정규직 통계, 노동계 8백90만명·노동부 5백46만명 엇갈려

92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가입한 코스콤 비정규지부 황영수 지부장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사측에 계속해서 교섭에 나올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코스콤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해 3월부터 이어져온 KTX 여승무원 사태도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노·사·정이 약속했던 ‘3자 공익협의체 구성’도 물 건너갈 상황이다. 당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 엄길용 전 철도노조 위원장, 이철 철도공사 사장, 이상수 노동부장관 등은 노·사·정이 2명씩 추천한 6명의 공익위원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KTX 여승무원 사태의 해법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벌써 석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협의체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측은 “KTX 여승무원들이 협의체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먼저 해야 한다”라는 입장인 반면 노측은 “사측에서 공익위원 선임을 미루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또다시 한 해를 넘기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 문제가 도처에서 불거지고 있는 것에 대해 노동계는 하루빨리 비정규직법을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부는 일시적인 혼란이기 때문에 좀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몇 명인지도 명확하지가 않다. 노동계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56%인 8백90만명이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노동부는 35.5%인 5백46만명이라고 맞선다. 가장 기본적인 통계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어, 비정규직 문제 해결로 가는 길이 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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