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저주’가 다가오고 있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7.12.2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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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들, 과도한 경제 성장으로 10년 안에 석유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할 듯

 
거대한 석유 수출국들이 과도한 경제 성장 때문에 머지않아 석유 수입국으로 돌아서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산유국들의 경제가 너무 급속히 성장하는 바람에 석유의 국내 소비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수출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석유 시장 수급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것이며, 가장 극적인 변화는 석유 수출국이 수입국으로 변하는 경우이다. 상전벽해가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석유 수출국들의 현 경제 성장 추세가 지속되면 향후 10년 안에 다수의 석유 수출국이 수입국으로 변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석유를 수출해 번 돈으로 자동차나 주택을 구입하고 기업을 유지하는 데 다시 막대한 석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시작되었다. 5년 후에는 멕시코가 뒤를 따를 것이고 이란도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의 제2 석유 수입국임을 감안할 때 그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이란도 세계 4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이 나라들이 수입국으로 변하면 석유시장 판도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이런 전망이 나오는 데는 일부 산유국들에게 책임이 있다. 다수 산유국에서는 국민들에게 갤런당 7센트 내지 26센트에 석유를 판다. 이런 가격으로 수지가 맞을 리 없다. 적자는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한다. 이 보조금이 만병의 근원이 된다. 보조금 덕분에 석유를 너무 헐값에 살 수 있으니까 석유를 물처럼 쓰고 결국 낭비를 가져온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5년 내지 10년 내에 유수한 석유 수출국들이 수입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텍사스에 있는 라이스 대학 아미 마이어스 교수의 경고이다.
이 경고는 매우 중대하기는 하나 반드시 석유 부족 사태가 온다는 단정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 판도에 일대 변화가 온다는 의미가 강하다. 다시 말하면 기존 석유 시장은 쇠퇴하고 캐나다 같은 벽지의 석유 시장이 빛을 보는가 하면 지금까지 석유 생산이 금지되었던 지역들이 새로운 메이저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또한 산유국이 수입국으로 바뀜으로써 발생하는 수요 증가는 이라크, 이란, 베네수엘라 같은 산유국들의 증산으로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반미 노선을 고려하면 이들이 순순히 증산에 동의해 석유 시장을 안정시켜줄지는 미지수이다. 공급 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이유는 또 있다.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의 다니엘 예르긴에 의하면 시추 기술의 발달로 10년 후의 산유 능력은 20% 증가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도 지정학적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문제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국내 소비 증가는 지금부터 2010년까지의 증산분 2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란의 수출 감소분은 그 절반이 국내소비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캐나다 CIBC 은행의 세계 시장 보고서에 의하면 러시아, 멕시코 및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국내 석유 소비량은 2010년까지 하루 2백50만 배럴로 이는 세계 석유 수요의 3%에 해당한다. 이 수치로 보아서는 큰 비중은 아니다. 그러나 석유 수요가 불안정하고 잉여 증산 능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소량이라도 석유 부족 사태가 오면 곧바로 유가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02년 베네수엘라의 파업으로 인해 세계 산유량의 3%가 감소하고 유가는 수주 만에 26%나 치솟은 적이 있다.
사실 석유 수출국들의 국내 소비 증가는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개도국 혹은 신흥 경제 성장국들의 눈부신 성장이 석유 수요 증가에  더 큰 요인이 된다. 중국과 인도는 향후  20년간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의 대부분을 소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산유국과  개도국의 소비 증가가 모두 문제인 셈이다. 국제에너지기구의 파티 비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산유국 석유 소비 증가율, 미국 앞질러

5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노르웨이, 이란, 아랍에미리트연방의 2006년도 국내 석유 소비는 전년에 비해 5.9% 증가했다. 수출은 3% 이상 줄었다. 이 기간 중 미국의 석유 수요는 변동이 없었다. 문제는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리비아 등의 국내 소비가 10년 내에 배가된다는 점이다. 지금 국내 소비가 많지 않은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같은 나라도 미래에는 대량 소비국으로 바뀔 수 있다.
국내외적으로 석유 소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는 세계적인 산업화, 정부 및 개인 소비의 증가를 들 수 있다. 세계은행 보고에 따르면 중동, 북아프리카, 러시아 경제는 1990년대 이후 거의 두 배 성장했다. 일부 산유국의 경우 석유 국내 소비 증가율은 미국을 앞질렀다.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등이 그렇다. 산유국 가운데서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멕시코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국내 석유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러시아 농부들은 말과 카트를 팔고 휘발유를 물처럼 먹어치우는 4륜구동 차량을 구입했다. 도시 소비자들은 운전면허도 따기 전에 BMW를 구입한다.
대부분의 산유국에서는 운전 연령층이 낮아져 승용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석유 값이 워낙 싼 것도 ‘마이카족’을 늘리는 요인이다. 일부 석유 수출국들은 가격 통제와 보조금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저렴한 석유를 공급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에서는 휘발유 1갤런이 30 내지 50센트에 불과하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겨우 7센트이던 것이 요즘 10센트로 올랐다. 이 나라의 자동차 판매는 지난 4년간 4배 증가했다. 이런 식의 국내 저유가 정책이 석유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해도 쇠귀에 경 읽기이다.
멕시코의 벽돌공은 최근 자기 이름으로 된 새 차를 구입하고는 ‘브라보’를 외쳤다. 그의 가족은 새 차를 축성해줄 신부를 찾아 시내를 질주했다. 기후 변화니, 석유 부족이니 하는 말은 이들에게 관심 밖이다. 자동차용 휘발유 값만 오르지 않으면 된다. ‘검은 황금’은 석유의 별명이다. 검은 황금은 풍요와 안락을 주지만 동시에 전쟁과 살육,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석유 수출국이 수입국으로 바뀐다는 예언은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다. 석유의 저주가 오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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