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쓰러지거나 말라리아에 시달리거나
  • 김소연 (성균관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
  • 승인 2007.12.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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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가 인류에게 주는 건강상 피해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 변화로 인한 사망자가 세계적으로 연간 16만명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는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자연 재해,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를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발생하는 건강상의 피해는 아직까지 학술적으로 충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향후 지구 온난화로 인한 건강 피해의 범위와 인과관계가 더 상세히 밝혀지면 그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 현상 중 건강에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은 여름철 폭염이다. 우리 몸은 주위 환경과의 계속적인 열 교환을 통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하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매우 높은 기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체온 조절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이상 증세가 일어난다. 2003년 3만5천여 명의 사망자를 내며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유럽의 폭염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특이한 고온 현상이었기에 그 피해가 더욱 컸다.
 고온으로 인한 대표적 질환에는 열경련, 열피로, 열사병 등이 있으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기온의 경우 평균값의 변화만이 아니라 건강에 피해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기온이 높은 날의 횟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는 1995년 후반부터 폭염 발생의 기간과 빈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의 경우 기록적인 무더위를 기록했던 1994년을 제외하면 폭염 지속 일수가 평균 5일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1996년 이후에는 여름철 폭염이 10일 이상 지속되는 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연도별 초과 사망자 수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1994~2005년 여름철 서울·대구·인천·광주 지역에서 더위로 인한 사망자는 2천1백27명으로 기상재해로 인한 사망·실종자(1천2백19명)보다 많았다.

열 스트레스로 인한 피해는 동시 다발적…정부 차원 대책 세워야

 
앞으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1.4도에서 5.8도까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폭염과 같은 열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피해는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개인 차원의 예방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시민들의 대처 요령과 응급실 이용 안내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각별히 필요하다.
지구 온난화는 대기 오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기온 상승은 도시의 오존 농도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높은 기온은 오존의 전구 물질인 휘발성 유기 물질과 질소산화물의 자연적 배출량을 증가시키고 오존이 생성되는 광화학적 반응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해마다 오존 농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기온과 오존 농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기온 상승은 산성비의 원인이 되는 대기 중의 황산염이나 질산염의 생성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수목류, 목초류, 잡초류의 개화와 성장 시기를 변화시켜 알레르기성 오염 물질의 대기 중 농도와 확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후 변화는 이처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기오염을 악화시켜 간접적으로 건강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대도시에서는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꽃가루와 곰팡이 등의 발생 빈도가 해마다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알레르기나 천식 환자의 발생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염병 발생의 증가이다. 전염성 질병의 경우 대부분이 모기·진드기·벼룩 등 곤충이나 쥐·토끼 등의 설치류를 통해 확산되므로 질병의 확산은 매개체가 되는 곤충이나 설치류의 생육 환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이들 매개체의 생육 환경이 변화하면서 개체 수의 증가와 서식지의 확장으로 인해 전염성 질병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 중 특히 모기를 매개로 하는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이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모기가 성충이 되는 비율이 높아지고 발육 기간이 단축되어 개체 수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모기도 극성, 열대성 전염병 만연할 수도…예방 시스템 시급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 지역의 경우 약간의 기온 상승에 의해서도 모기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하거나 활동 시기가 훨씬 길어질 수 있다. 최근 말라리아가 급증하는 현상도 기온·강수량·습도 등 기후 요인과 관련이 깊다.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2007년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대에는 말라리아 등 열대성 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만연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래 대부분의 전염병이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후 변화와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 세균성 이질, 신증후군 출혈열, 렙토스피라증, 발진열, 뎅기열, 비브리오 패혈증 등 많은 질병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말라리아나 세균성 이질 등은 1980년대까지 크게 감소하던 질병인데 최근에 다시 급증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성이 낮은 대다수 전염성 질병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최근에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 질병은 계속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 관리 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된다.
기후 변화는 이미 우리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이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바로 동결시키더라도 기후가 다시 안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국가적 적응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방적 조치로는 폭염이나 기상 재해와 같은 극단적인 자연 재해에 대한 조기 경보 시스템의 구축, 취약 계층에 대한 사전 예보 등이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기후 변화와 관련된 질병들을 사전에 모니터해 문제가 발생하면 백신 사업이나 예방 사업 등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대응을 할 수 있다. 기상 재해의 위험에 대한 공중의 인식 증대와 사망·상해 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한 국가적 체제 수립, 자연재해에 대한 보험 체계의 강화 등도 주요한 대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기후 변화를 먼 나라의 일이나 국제적인 환경 규제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더 큰 재앙이 발생하기 전 신음하는 지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신속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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