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고 신당 창당할까 ‘손’ 잡고 실익 챙길까
  • 우은식 (뉴시스 정치팀장) ()
  • 승인 2008.02.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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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 노리는 정동영 전 장관, 4월 총선 앞두고 ‘장고’

“한달 정도 지나니까 여러분 얼굴이 보고 싶더라. 산에 다녀왔는데 좋더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월29일 대선 패배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지지 모임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회원들과 만났다.
앞서 1월27일 충남 공주군 계룡산 갑사유스호스텔에서 자신의 계파 의원 10명, 총선 예비 후보자 60여 명과 함께 산행을 겸한 워크숍을 가진 뒤 이틀 만이다. 4월 총선을 향한 일종의 예열 작업으로 비추어진다.
서울 신촌 한 음식점에서 열린 이날 모임에 정 전 장관은 부인 민혜경씨와 함께 참석했으며 2백여 명의 정통들 식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오랜만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날 모임에서 쏟아져 나온 손학규 대표 체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정 전 장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정청래 의원은 “정동영 후보와 캠프에 있는 사람만 선거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패배의 책임도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 정동영계는 뒤로 비키라는 것은 자신들이 대선에서 열심히 안 뛰었다는 반증이다”라고 신당의 손학규 지도부를 비판했다.
정의원은 또 “정동영과 손잡지 않고 어떻게 신당이 단합하고 단결할 수 있느냐. 손학규 캠프 꾸리듯 당직을 인선하면 성공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 후 “손대표 체제가 출범한 후 지지율이 더 떨어져 더 이상 떨어질 수치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청래 의원 “신당 지지율은 이미 바닥을 쳤다”

인적 쇄신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한 참석자는 “지도부 구성도 후단협을 주도했던 사람이 주축을 이루고 대선 패배에 역할을 한 운동권 386 집단 등 청산될 사람들이 당 중심에 있다. 인적 쇄신을 수행할 능력도 안 되고 오히려 쇄신 대상이 인적 쇄신을 주도하고 있다. 인적 쇄신의 기준도 절차도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정당을 창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거침없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당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대의와 명분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이 새로운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지자는 “신당 지도부가 똑바로 안 한다면 혼자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가야 한다. 신당이 똑바로 안 하는데 왜 신당에 참여하느냐”라며 현역 의원들의 행보에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참석자는 “신당을 창당하는 조건이 공천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2010년 지방 선거와 2012년 대선에서 힘을 쓰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3월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신년 모임치고는 쏟아지는 불만과 요구가 덕담 수준을 뛰어 넘었다. 지난 번 계룡산 산행에서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정 전 장관은 말을 아꼈지만 정치 재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통합신당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우선은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정대철 고문과 만나 평화민주 진영의 정치적 회복을 위한 의견을 나누면서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정동영계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진지를 구축하고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정동영계 안팎에서는 물밑 접촉 결과 신당을 창당할 경우 현역 의원이 최소 15명 이상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동영 신당’을 창당하기위해 일부 의원들이 선도 탈당을 강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 전 장관의 한 핵심 측근은 “이대로 가다가는 청명에 죽으나 경칩에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냐. 거취가 결정만 되면 총선을 따로 치러서 전북에서 최소한 5~6석을 얻고 전국적으로 교섭단체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측근은 “신당의 동교동계(민주계 8인 모임)나 386 의원들은 우리가 나가면 곧바로 궤멸될 것으로 보지만 지난 대선에서 정 전 장관은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찍던 습관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신당 창당의 명분이 약하고 총선 전 창당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만큼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 전 장관의 공개 행보가 많아진 것도 자신의 계파 인사들이 공천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주군 역할론’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비중 있는 정치인이 당을 뛰쳐나와 다른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거니와 결국 또 하나의 ‘호남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탈당 결심은 쉽지 않다.
결국 협상력을 높인 후 지분을 챙기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판을 뒤흔드는 작업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당내 기반이 약한 손학규 대표측으로부터 화합의 메시지가 건너올 것이고 그때 발맞춰 실익을 얻겠다는 것이다.

설 연휴 지나면 결단 나올 듯

그러나 정 전 장관 본인은 여전히 ‘선문답’ 중이다. 정 전 장관은 ‘정통들’ 모임 후 거취 표명 시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거취 표명할 것이 있느냐”라며 즉답을 피했다. “대선 기간 동안 제일 고생한 사람들이 ‘정통들’ 아니냐. 진작 봤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왔다”라는 것이다.
그는 또 “신당 창당이 가능한 것이냐”라는 질문에도 “정청래 의원에게 물어보라”라면서 역시 답변을 피했다. 일부에서는 정 전 장관이 손학규 대표와 함께 서울 지역에 공동 출마해 침체된 평화민주 세력의 분위기를 되살려 수도권 바람으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대선 패배 이후 ‘묵언 수행’ 중인 정 전 장관이 설 연휴를 지나면서 어떤 형태로든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권토중래를 노리는 ‘정치인 정동영’으로서 총선이라는 정치적 모멘텀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 당시 노인 폄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비례대표를 반납하는 등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이며 후일을 도모했던 정 전 장관이 대선에서 패배한 후 맞게 된 이번 총선에서는 어떤 선택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찾아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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