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들, 특혜 포기하고 납세로 당당해져라
  • 구교형 (목사·성서한국 사무총장) ()
  • 승인 2008.02.0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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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종교인·종교단체의 의식적 허구·제도적 허점 찾아 개선해야…사회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벗어날 수 없어

 
지난 1월26일 밤 MBC 시사 프로그램 <뉴스 후>에서 방영한 ‘세금 안 내도 되는(?) 사람들’이 나간 후 여론이 들끓고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소리들이 있겠지만 그 대부분은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심각한 양극화로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져 있고, 최근에는 88만원 세대라는 20대 대다수가 항상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보도는 충분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단지 일부 양심 없는 종교 지도자들의 도덕성 문제로만 치부하기 전에 제도 개혁의 과제가 없는지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호화 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의식적 허구가 무엇이며, 제도적 허점이 무엇인지를 살펴 개선하지 않으면 국민 정서에서 벗어난 삐뚤어진 종교 행태들은 거듭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종교인 및 종교 단체에 대한 과세이다.

종교인·종교시설에 대한 과세는 지극히 당연

사실 종교인의 청빈한 생활 문제를 넘어선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 종교인들이 사회적 평균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더 큰 관건은 혜택을 누리는 만큼 그 소득이 정당한 과정을 통해 지급되고 정당하게 과세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필자는 종교인들과 종교 시설에 대해서도 마땅히 과세해야 하며, 특별한 경우 면세혜택을 주어야 한다면 그 근거를 분명히 명시해야 하고, 혜택을 받고서도 그 규정을 벗어난 경우는 처벌 규정이 함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신교 목회자의 경우에 한정해 이 주장을 할 때 부닥치는 반론이 있다. 필자는 그 반론들이 별 근거가 없음을 들어 필자의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
개신교에서는 목회자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사례비라고 부른다. 목회자의 직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고받는 영업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소득처럼 세금을 납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들 스스로가 호구지책으로 하는 목회가 아니라고 믿는 것과 엄연한 급여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사례비는 목회자들의 노동 행위에 대한 급여 성격이 분명하다. 그것은 분명히 인건비이며, 그런 면에서 사회의 월급 체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굳이 근로소득이 아니라 사례비라는 우회적 표현을 쓰고 있다 해도 분명히 급여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세금을 못 낸다는 것은 부당하다. 또 목회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 노동 행위가 아닌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직종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례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잘못된 목회자 급여 체제를 은폐하는 면이 많다. 적게 주는 목회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로, 많이 주는 목회자에게는 ‘주의 종에 대한 당연한 축복’이라는 이미지로 채색하는 것이다.
목회자 사례는 하나님께 드린 헌금 중에서 목회자들에게 사용되는 교회 지출이므로 세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목회자의 사례비는 성도들이 헌금을 드릴 때 이미 세금이 공제된 상태이므로, 또 다시 사례에 세금을 매긴다면 이중 과세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과세의 근거는 재화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근로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순간마다 당사자에게 새롭게 발생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목회자의 과세는 당연하다.
순수한 수익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목회자도 새로운 수익이 생기는 것이므로 당연히 그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이다. 당사자가 계속 바뀌는데도 한 번 과세되었다고 다시 과세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장 경제에서 통용될 수 없는 주장이다.

 

가난한 목회자라도 과세 피해가서는 안 돼

목회자들 대부분은 면세점 이하의 열악한 생활을 살고 있다?
종교인 납세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억울한 사람들도 생겨난다.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무려 네 개의 교회가 한국에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한국 교회의 현실은 100명 안팎의 소형 교회가 대다수이다. 또 일부 목회자가 골프장 딸린 사택이니 3억원짜리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분노를 사고 있지만, 상당수 목회자는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 이하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소수 목회자들의 호화 생활이 보편 사례로 인용되며 함께 매도당하는 것을 무척 억울해 하며, 힘든 목회자 사례에서 세금까지 걷어가면 뭐가 남겠느냐는 말도 한다.
그러나 굳이 어려운 목회자가 아니어도, 상당수 한국 도시 근로자들은 세금 내기 자체가 힘든 현실에 살고 있으면서도 당연히 납세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려운 직종이기에 세금을 내지 못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정말 농어촌이나 미자립 개척 교회의 어려운 목회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경우도 면세점 이하의 소득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많으므로 그것 역시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또 정말 어려운 분들이라면 교회와 노회, 총회 등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주어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해야지,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으로 가난을 해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리스도인다운 발상도 아니다.
그러면 납세 문제를 계기로 개신교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개신교인들 스스로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개신교 신자들은 목회자 납세 문제를 곧 하나님에 대한 과세로 보는 의식이 있는 것 같다. 신자들의 목회자에 대한, 특히 담임목사에 대한 우대 사상은 과할 정도이다.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도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그것은 목회자를 우대하면서 자신이 복을 받으려는 우회적 기복주의이다. 목회자들 스스로도 자신의 사역은 특별한 성직이고, 나머지는 세상적인 직업(그러므로 과세가 가능한)이라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특혜를 기대하지 마라.
종교인과 기관에 대한 과세 문제가 나오면 항상 나오는 말이 ‘교회의 사회적 기여’이다. 한국 교회가 사회 복지나 공공적 서비스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면세 조치는 당연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합리화와는 별개로 실제 한국 교회가 구제나 사회 복지를 위해 쓰는 예산은 전체 재정에서 극히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매년 말 개인이 교회에 낸 헌금에 대해서는 공공적 성격의 기부금으로 인정되어 연말정산 혜택을 받고 있다.
교회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반대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마땅한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해서도 안 된다. 필자가 이미 충분히 지적했듯이 종교인과 종교 기관이 사회적 역할을 벗어난 특혜를 기대하는 것은 사회와 국가도 망하고, 해당 종교도 반드시 타락하게 마련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변화되어 세력으로서의 영향력이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감화력으로서의 올바른 영향력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기를 간곡히 바란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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