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은 활활 타는데 돈 받아서 ‘외국 답사’?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1: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을 몰고 다니는 문화재청장’ 오명 남기고 사직한 유홍준씨

 
숭례문을 화마에 날린 책임을 지고 제일 먼저 물러난 사람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이었다. 직접 불을 지른 방화범이나 이후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진화하지 못한 소방 당국, 평소 관리를 소홀히 했던 서울 중구청 등 모두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가장 중심에 있는 기관은 문화재를 관리·감독·보존하는 책임을 진 문화재청이다. 문화재청은 숭례문을 허망하게 날린 데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하고, 그래서 유 전 청장이 누구보다도 먼저 사죄하고 물러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물러나면서 공직자로서 상당한 오점을 남겼다. 사고 당시 유럽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고, 그것도 대한항공으로부터 항공권을 제공 받아 부인과 함께 출국해 다분히 외유였다는 의혹을 받을 만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유성 출장’에 대한 해명으로 인해 더욱 커졌다. 기업의 돈을 받고 출장을 다녀와서는 나라 예산을 아낀 셈이니 논란거리가 될 게 없다고 한 것이다. 이 한마디로 그의 도덕적 해이가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국민들의 분노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4년 9월3일 문화재청장에 취임한 유홍준 전 청장은 베스트셀러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저자로 문화유산의 전도사처럼 알려졌던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나라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켰는지는 의문스럽다. ‘낙산사 화재’, ‘수원 화성 방화 사건’ 등에 이어 이번 숭례문 화재까지 모두 그의 재임 중에 발생했다. 결국 ‘불을 몰고 다니는 문화재청장’이라는 오명과 함께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것이다.

유 전 청장이 문화재청장이라는 고위 공직자가 되면서 전국 산하를 돌며 만났던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정성스럽게 글로 옮겼던 열정을 잃은 것일까. 낙산사 화재를 경험했으면 당연히 전국의 문화재에 대한 화재 경계령이라도 내려 대비책을 강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학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가 자신의 재임 기간 발생한 재난 사고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해 결국 숭례문 6백년 역사를 사라지게 한 것은 너무 유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