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으면 서럽지, 일에 빠져 ‘회춘’
  • 정락인·이은지 기자 freedom@sisapress.c ()
  • 승인 2008.02.25 11: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령화 시대의 노인 취업 사례 / 3D 업종도 마다않는 열정으로 제2 인생 펼쳐

 
 
┏ 실버넷뉴스 기자 조희상씨      ┓   

실버넷뉴스는 비상업적인 실버 언론을 기치로 2001년에 창간한 인터넷 신문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버넷 기자는 1백6명. 나이는 58세부터 82세까지 다양하다. 기자들은 전원 무보수이다. 복지환경부 조희상 기자(66)는 지난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전직은 언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15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건설 시공 감리회사에서 정년을 마쳤다. 조씨는 어릴 때부터 기자라는 직업을 동경했으나 막상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현업에서 퇴임한 후 인터넷에서 기자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 후 지금까지 3년간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다. 숭례문 화재 때에도 현장에 있었다. 그는 “노인들이 공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취업이나 복지 등 다방면에서 노인들에 대한 불이익이 있는지 감시하겠다”라고 기자 생활의 포부를 밝혔다.
그에게는 기자 생활이 전부가 아니다. 현업에서 은퇴한 후 한문 공부를 시작해 한자능력검증 1급 등 한문 관련 자격증을 4개나 취득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하루 3시간씩 연세대 가양사회종합복지관에서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서울시 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하며 각종 사회 부조리와 정책을 관찰하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건설교통부장관 상과 가양사회종합복지관장의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가족들도 좋아하고 나도 즐겁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일을 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 남서울 어린이집 구연동화 교사 김현순씨  ┓
 

한제약회사의 파스 광고에 출연하는 김현순씨(63)는 ‘트라스트 할머니’로 유명하다. 하지만 김씨의 직업은 광고 모델이 아니라 구연동화 교사이다. 김씨는 대학 재학 중에 결혼하면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장성한 뒤 50대에 방통대 유아교육과에 편입했다. 교사의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뒤 ‘유아교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교사의 길에 성큼 다가갔다. 2004년부터는 서초노인복지관의 알선으로 남서울 어린이집에서 교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김씨는 1주일에 8시간씩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가르친다. 구연동화는 재미있는 동화를 문자에 의하지 않고 입으로 전해주는 것이다. 김씨의 구연동화는 감미롭고 구수하다. 마치 옛날에 화롯불을 피워놓고 어른이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지난해에는 색동회 어머니회 구연동화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김씨가 구연동화를 선택한 것은 맞벌이하는 큰딸을 대신해 손녀를 키우면서이다.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것이 새로운 직업이 되었다.
김씨는 10분짜리 이야기를 하려고 2~3일을 꼬박 투자한다. 마음에 드는 동화책이 있으면 개작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도 한다. 수업 전에는 반드시 연습을 하고, 새로운 동화는 아예 원고를 외운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 동시를 외우도록 한다. 동시 같은 맑은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교실 문을 열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껴안는다. 하루하루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나이 올해 63세.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다섯 살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틈틈이 치매노인을 위한 봉사 활동도 펼치고 있다. 김씨는 칠순을 대비해 자신만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30년간 애지중지 길러온 분재들을 세상에 내놓는 동시에, 동화 구연 자료집을 만들어 전시회를 가질 생각이다.
김씨는 노인들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던졌다. “평소에 봉사를 저축해두어라, 그래야만 내가 어려울 때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일터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을 즐길 수 있다.”

 ┏ 결혼정보회사 커플매니저 한순희씨    ┓

 
듀오, 선우, 가연 등 대형 결혼정보회사에 노인 커플매니저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매가 과거 어른들이 해왔던 일인 만큼 노인 일자리로 되찾아오겠다는 것이다. 그 선봉으로 도봉시니어클럽 소속 50명의 노인들이 나섰다. 전직 공무원이었던 한순희씨(69) 역시 이 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한씨는 1962년에 공무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1982년에 은퇴했다. 중3이던 첫째딸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서 과감하게 공직에서 물러났다. 딸을 외고에 진학시키고 난 뒤부터는 탁구, 수영 등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66세가 되던 지난 2006년 우연히 도봉시니어클럽에서 노인 커플매니저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다. 혼기를 놓친 딸을 위해 직접 예비 사윗감을 찾아나서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한씨는 강한 체력과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다. 탁구 동호회에서 선수로 뛰었을 정도이다. 남편에게도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 한씨에게 커플매니저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탁구 동호회, 남편의 친목회, 성당 모임 등 활동이 많다 보니 인맥도 풍부하다. 도봉시니어클럽이 커플매니저 사업을 시작하고 4쌍의 커플을 탄생시켰는데, 그 가운데 한 쌍이 한씨의 중매로 연을 맺었다. 한씨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회원으로 등록된 7백여 명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서로 잘 맞을지 회의를 해서 주선에 나선다. 결혼 후에도 인생 조언자로서 상담을 해준다”라며 사설 결혼정보회사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씨는 지난해부터 1주일에 한 번씩 국제 결혼한 여성을 직접 찾아가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발품을 팔아가며 바쁘게 활동해 받는 돈은 월 10만원에 불과하다. “돈을 보고서는 이렇게 일하지 못한다. 단지 이런 활동들이 생활에 긴장감을 주고 활력소가 된다는 점에 만족한다. 나처럼 밖으로 나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노년 생활을 개척해나간다면 항상 젊게 살 수 있다”라며 활짝 웃었다. 

 ┏ 숲 생태 해설가 김혜영씨    ┓ 

 
20년간 자원봉사자로 활동해오다 67세에 처음으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다. 숲 생태 해설가로 화려하게 인생 2막을 연 김혜영씨(71)가 그 주인공. 김씨는 “숲이 좋아서 시작한 공부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몰랐다. 돈을 주는지도 모르고 지원했는데 월 20만원을 받는다. 남편한테 손 벌리지 않아 좋다”라며 만족해했다.
중국 만주 벌판에서 자란 김씨에게 숲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여덟 살이 되던 1945년, 독립과 동시에 한국으로 넘어왔다. 2004년 관악구 시니어클럽에서 숲 생태 해설 프로그램 교육을 받고 단번에 강사로 인정받았다. 1주일에 두 번씩 어린이집에서 숲이나 곤충에 관한 강의를 한다. 김씨는 “자식, 손자들을 키워본 경험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다. 옷도 원색으로 입고 몸에서 냄새 안 나게 신경 쓴 덕분에 아이들도 잘 따른다. 강의 내용을 매일 새롭게 해야 되기 때문에 늘 공부한다.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원동력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열정 덕분에 2년 뒤에는 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가 주관하는 숲속 여행 강사로도 뽑혔다. 한 달에 두 번씩 낙성대를 찾은 가족을 데리고 숲을 산책하며 나무와 열매에 대해 설명해준다. 도토리로 개구리를 만들기도 하고 단풍 열매로 잠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이들보다 더 즐거워하는 엄마들의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김씨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의 모습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등산을 자주 가게 되었다. 다리 근육 하나는 젊은이들보다 더 튼튼하다”라며 활짝 웃었다.
젊었을 때 자원봉사 활동에만 매진한 김혜영씨. ‘곳간이 비다  보니’ 이제 돈을 주는 직업을 찾게 된다는 김씨는 “나처럼 희생한 세대들에게 사회가 조금만 더 배려해줬으면 한다”라는 뜻을 전했다.

 ┏ 지하철 폐지 수집 박권호씨  ┓

 
무가지가 등장하면서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신문을 수거하는 노인들이 생겨났다. 한 노선마다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 정도이다. 사람이 많다 보니 한 사람당 하루 평균 30kg 정도의 폐지를 모으는 데 그친다. 폐지 1kg당 가격이 100원밖에 되지 않아 수입은 많아야 3천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노인들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12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는 박권호씨(71)는 “어디론가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삶의 목적이 있어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박씨는 26세이던 1964년에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시장관리사무실 총무,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수금대원, 아파트 경비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1990년에 철근 콘크리트 기술 자격증을 딴 덕에 경력 20년차의 베테랑 기술자가 되었다. 하지만 65세가 되던 해인 2002년부터 일감이 뚝 끊겼다. 이후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답답해하던 박씨에게 친구가 이 일을 권했다.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신문을 모으는 박씨는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운동 삼아, 재미 삼아 나온다. 아직도 건강하기 때문에 이것보다 좀더 돈이 되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며 의욕을 내비쳤다.
박씨는 지난 1월 안국동 노인복지관에 구직 등록을 했다. 이력서 쓰는 법, 사회 트렌드에 대해 수업을 들으며 젊은이 못지않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노인들이 제2 인생을 살 수 있을 만한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는 “외국 사람들을 데려다 쓸 게 아니라 노인들을 데려다 쓰면 된다. 고생을 많이 한 세대라서 3D 업종도 충분히 할 수 있다. 70세가 넘었어도 체력적으로 끄떡없다.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쓸모 있는 구성원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