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된 '저승사자' 공천 혁명 성공할까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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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박재승 공심위원장, 철저 보안 속 칼날 심사, 외부 심사위원 6명도 정치권과 무관한 인사로 꾸며 눈길

 
지난 2월26일 오후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통합민주당 중앙당사 7층. 유력 정치인들이 줄지어 공천심사위원회(이하 공심위)의 면접을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3선 의원으로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기남 의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오전 심사 통보 일정을 전달받은 신의원은 30분 전 면접장에 미리 도착해 순서를 기다렸다. 노무현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고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여당을 이끌었던 3선 중진의 문희상 의원도 당사를 직접 찾아 면접 심사에 참석했다.
총선 공천 신청자를 대상으로 면접 심사를 보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낯선 풍경이다. 더구나 현역 의원까지 면접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써 달라진 공천 문화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은 단수로 공천을 신청한 지역을 대상으로 면접 심사가 이루어졌다.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들인 셈이다. 하지만 면접장은 물론 대기실 분위기는 엄숙했다. 간간히 ‘질문을 많이 받으면 떨어진다더라’ 식의 농담조 대화가 오갔지만 정치 신인이나 현역 의원이나 모두 시험을 앞둔 수험생 마냥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면접 심사에 중진 의원도 예외 없어

실제 면접 내용도 예상보다 까다로워 후보자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고 한다. 강남 갑에 공천을 신청한 김성욱 전 뉴욕한인회 이사는 “따지는 게 많았다”라고 면접장 분위기를 전했고, 17대 총선에 이어 두 번째 도전에 나서는 광명 을 공천 신청자 양기대 열린정책포럼 대변인은 “짧은 시간인데도 예리하게 질문을 해왔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공심위의 공천 칼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정치와는 인연이 적은 외부 인사들이 주축인 공심위가 현실 정치권에서 서슬 퍼런 칼자루를 휘두를 수 있는 데는 당내 계파 간 견제라는 외부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저승사자’로까지 불리는 박재승 위원장이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당대표가 아니라 공심위원장이 ‘최고 실세’라는 이야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돌 정도로 박위원장의 당내 입지는 상당하다. 실제 공천과 관련해서만은 박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권한을 위임받은 상태이다.

여기에는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는 않는다’는 박위원장 특유의 강직함이 한몫하고 있다. 유신 시절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의 민원 청탁을 거절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사시 13회로 1973년 서울형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박위원장은 1977년 중앙정보부의 민원 청탁을 거절했다가 유신 정권에 찍혀 제주지법으로 쫓겨났다. 그는 10·26 사태 이후에야 수원지법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판사로서의 공직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1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를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었다. 변호사 개업 후에는 인권 변호사로 활약해오다 2003년부터 3년간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 회장을 맡았다. 지인들은 한결같이 “외부의 영향이나 압력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변협 회장 시절이던 2003년 최종영 대법원장과 맞섰던 일화도 그의 강단을 잘 보여준다. 당시 대법관제청자문위원으로 있던 박위원장은 회의에서 최대법원장이 시민추천위원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천거한 후보를 배제하고 서열 관행대로 3명의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려고 하자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자문위원직을 사퇴했다. 이 일은 판사 1백44명의 항의 서명으로 이어졌고 최대법원장은 퇴진 직전까지 몰렸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법원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른 것도 이같은 그의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다. 법조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운 그는 지난해 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삼성 특검의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변협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기도 한 그는 민변과 참여연대로부터 특별검사 후보로 추천되었다.

 

강직한 성품으로 대법원장을 퇴진 직전까지 내몬 적도

민변은 당시 박위원장을 추천한 이유와 관련해 ‘삼성그룹과 국가 최고 권력층으로부터 독립적·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이 사건을 둘러싼 국민적 의혹을 밝힐 수 있는 법조인’으로 그가 제일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권력의 외압을 이겨낼 수 있는 강단 있는 법조인’이라는 평가이다.
손학규 대표가 침몰 위기에 내몰린 당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공천 혁명’의 칼자루를 평소 친분도 없던 박위원장에게 쥐어준 것도 그를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낼 최적의 인물로 평가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손대표는 1주일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지난 1월29일 박위원장으로부터 승낙을 받았다.
우상호 대변인은 “위기에 처한 우리 세력이 공천을 통해 새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이 다시 관심을 보인다는 위기의식에서 모셨다. 손대표는 우리 당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 원칙대로 공천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나도 부탁하지 않을 테니 원칙대로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박위원장은 당 최고 지도부와 가진 첫 만찬에서부터 ‘공천 혁명’을 예고했다. 당직자들이 외부 공천심사위원으로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떠보며 몇 사람을 추천하자 그는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이미 다 정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유인태 최고위원이 농담조로 “이제 우리 다 큰일 났다”라고 말할 정도로 단호했다고 한다. 실제 박위원장이 구성한 외부 심사위원 6명의 면면은 정치권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언론인·의사·역사학자·시인 등 기성 정치권과는 무관한 인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 쇄신위원을 맡았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그나마 정치권과 인연이 있다면 있는 정도였다. 정치권 몫 심사위원 5명과 심사 과정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크지만 이들이 쉽게 뒤로 물러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한 달 동안 박위원장은 철저하게 독립성을 지켜나가며 공심위를 외부와 차단해왔다. 공천과 관련한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는 공천 희망자들이 “빨대를 꽂을 데가 없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평소 박위원장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변호사 출신의 한 인사는 “주변에서 박위원장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기에 공천받기 싫으면 그렇게 하라고 타박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정보 통제는 곧 독립성 강화로 이어진다. 그런 만큼 공심위에서 논의된 사항은 최종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당 지도부에도 함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공천 가이드라인과 관련해서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외부와는 어떤 조율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면접 심사 때도 평가회의가 시작되면 공심위원들을 제외한 주요 당직자들은 자리를 비워주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월25일 당사에서 열린 공심위 회의에서 박위원장은 한 차례 호통을 쳤다. 전날 회의 내용 일부가 언론에 보도된 것을 놓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회의를 못한다”라고 격노한 것이다. 박위원장을 비롯한 공심위원들은 회의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 특검’으로 불리며 당 쇄신의 최전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재승 위원장. 그가 이끄는 ‘공포의 외인구단’이 계파 안배와 지역 정서 등 현실 정치권의 논리를 뒤엎고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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