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엘도라도’ 어디 없나?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3.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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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들, 원유 등 확보 안간힘…올해 유전 개발 투자액 56억 달러

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들고 각종 원자재 가격이 고공비행을 하면서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너도 나도 원자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으나 치솟는 자재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깊은 시름에 빠져 발만 동동 굴릴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자원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원자재 확보에 공을 들인 바 있다. 지난 2월 당시 이당선인은 이라크 쿠르드 자치주 총리와 만나 쿠르드 자치지역 내의 유전 개발에 한국 기업이 결성한 컨소시엄이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한국석유공사, 삼성물산, 쌍용건설이 참여한 한국컨소시엄은 2월14일 서울에서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지방정부 총리와 쿠르드 4개 광구를 탐사하는 양해각서를 맺고 20억~30억 배럴의 원유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쿠르드 자치주 지역의 원유 개발 프로젝트는 중동 원유 개발 프로젝트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인지 그대로 나타내는 사례이다.
애초 쿠르드 지역의 유전 개발에 먼저 합의한 것은 SK에너지였다. 지난해 11월 한국석유공사와 SK에너지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쿠르드 자치주 내 바지안 지역의 유전 개발에 합의했었다. 하지만 지난 1월 이라크 정부가 자신들의 허가 없이 쿠르드 자치주와 유전 개발에 합의한 것은 무효라며 SK에너지에 대한 원유 공급 계약을 일방적으로 끊으면서 사태는 복잡해졌다. SK가 이라크로부터 들여오는 원유량은 하루 5만 배럴. SK에너지 공장에서 하루에 처리하는 양은 1백11만5천 배럴이다. 하루 필요량의 5% 정도에 해당하는 물량이 사라진 셈이다. SK에서는 이 물량을 현물 시장에서 사들여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라크 정부와의 관계가 소원해져 크게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지난 2월 쿠르드 총리와 양해각서를 맺은 한국컨소시엄에서 SK에너지는 빠졌다.

 

우리 에너지 주권, 외국 메이저 석유회사가 계열사갖고 있어

지난해 11월 SK와 함께 한국 컨소시엄에는 국내 다른 정유사의 도 들어갔지만 수입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라크의 수출 금지 대상 기업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 입장에서는 더욱 억울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쿠르드 지역의 원유 개발권 확보를 둘러쌓고 우리 기업들이 벌이는 이런 우여곡절을 보면 해외 원자재 확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원자재를 찾아 헤매는 데 큰돈이 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설사 원자재를 확보한다고 해도 정치적인 이유로 계약이 뒤집어질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악착같이 해외 자원 개발에 덤벼들고 있는 것은 원자재 가격이 워낙 뛰어오르는 데다 돈을 주고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통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원자재에 자주 쓰이는 통계는 ‘자주개발률’이다.
자주개발률이란 국내 기업이 해외 자원 개발을 통해 들여온 원자재 양을 국내 소비량으로 나눈 수치로 에너지 자급도를 나타낸다.
2007년 국내의 원유와 가스 자급률은 4.2%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006년 3.2%에서 오른 수치이다. 이는 우리가 소비하는 원유나 가스 중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개발해 들여온 안정적인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4.2%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주권이 외국 메이저 석유회사나 산유국 수중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웃 일본은 원유 및 가스 자주개발률이 10%에 이르고 지중해 연안 국가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50%가 넘는다.
지식경제부에서는 올해 원유와 가스의 자주개발률을 5.7%로 잡고 있으며, 이런 목표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내내 자주개발률이 4% 미만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가 5년 내에 자주개발률을 18.1%로 잡고 있는 것은 무모한 목표 설정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탐사 광구를 확보했다고 해서 광구마다 모두 원유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날로 뛰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개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지난 2005년 9억5천만 달러였던 국내 기업의 해외 유전 개발 투자 실적이 2006년에는 19억 달러, 2007년에는 25억5천만 달러로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투자액 중 석유공사, 가스공사, 대우인터내셔널, SK에너지, GS칼텍스, LG상사, 삼성물산 등 7대 메이저들이 72% 정도인 18억4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지식경제부는 올해 유전 개발에 투자될 금액이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56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유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 기업의 수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번 쿠르드 자치주 지역의 유전 개발 계약을 주도한 유아이에너지는 자본금 1백81억원의 회사이다.
유전 개발 이외에도 국내 기업의 해외 자원 확보 노력은 치열하다. 포스코의 경우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에 철광석 장기 공급권을 확보한 뒤 현지에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일관제철소 완공을 앞두고 있는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 2월 호주의 리오틴토와 10년간의 철광석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고,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올 하반기에 철광석 대국인 브라질을 방문해 철광석 장기 공급 계약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포스코나 SK에너지 등 원자재를 직접 조달해야 하는 대기업을 빼고 국내 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은 종합상사에서 주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카자흐스탄의 구리 광산을 개발하다 결실을 거두기 직전에 삼성물산 현지 지점장이던 차용규씨에게 사업권을 넘겼다. 차씨는 개인 재산만 1조2천억원대에 달하는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적인 자원 부국으로 현재도 SK나 삼성물산, LG상사가 컨소시엄을 결성해 유전을 탐사하고 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도 지난해 11월 말 카자흐스탄에서 목격되어 재계에서는 카자흐스탄 엘도라도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각종 스캔들 메이커였던 최규선씨가 최근 부활한 것은 원자재 확보에 혈안이 된 요즘 기업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씨는 옥고를 치른 다음 자신이 운영하는 유아이에너지를 앞세워 이라크 쿠르드 지역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첫 번째로 자원 외교를 성공시킨 기업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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