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매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 시사저널 취재부 외 ()
  • 승인 2008.03.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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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급 정치인, 숙명의 라이벌, 신구 정부의 실세들이 맞붙는 총선 격전지를 가다

총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야 주요 정당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해당 지역의 대결 구도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선 직후 치르는 총선인 데다 10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당초 여당의 ‘안정론’이 주효해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선거가 마무리될 듯 보였지만 최근 야당의 ‘견제론’이 힘을 얻어가면서 ‘전장’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그만큼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격전지가 늘고, 전략 공천을 통한 ‘빅 매치’도 곳곳에서 펼쳐질 전망이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3월 정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38.4%)보다 ‘이명박 정부에 견제·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57.3%)는 여론이 높게 나왔다. 2월 정례조사와 비교하면 ‘견제론’이 5.8%포인트 늘어난 반면 ‘안정론’은 7.5%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40대 이하 화이트칼라층과 중산층 이상에서 ‘견제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되어 지난 대선에서 보여주었던 민심의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 정당 지지도에서 여전히 한나라당이 통합민주당을 압도하고 있지만 그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는 추세여서 총선 성적을 예단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선 최대 격전지를 찾아가보았다.

 
서울 종로
‘정치 특별구’를 어찌 놓치랴

“당의 패배주의를 극복하겠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12일 ‘당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결단’으로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손대표는 “당의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이명박 1% 특권층 정부의 독선과 횡포를 막아내는 수도권 대오의 최선봉에 서서 싸우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같은 날 박진 의원을 손대표의 ‘대항마’로 낙점했다. 종로는 박의원이 단독으로 공천을 신청한 지역이지만 민주당 간판급 정치인이 나올 것을 대비해 전략 공천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일각에서는 정몽준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당은 최종적으로 이 지역 재선 현역인 박의원을 선택했다.
예전만 못하지만 종로는 정치적 상징성이 큰 지역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노무현·윤보선 전 대통령 등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데서 알 수 있듯 거물급 정치인들이 경쟁하는 ‘정치 1번지’이다. 그런 만큼 수도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특별구’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손대표가 이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켜 수도권으로 바람이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최근 수도권 민심의 변화 기류와도 맞물려 있다. 당 관계자는 “수도권 30, 40대의 표심이 ‘안정론’에서 ‘견제론’으로 많이 돌아서는 분위기다.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서 바람이 일면 이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손대표도 “50년 민주 세력 정통 야당을 살리고 서민을 대변하는 건강한 야당을 세울 수만 있다면 나의 모든 것을 불태우겠다”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대권 도전에서 실패를 경험한 손대표로서는 정치적 생명을 건 승부수이기도 하다. 종로에서 당선된다면 명실상부한 야당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정당 지지율에서 한나라당에 한참 뒤처져 있는 데다, 맞상대인 박진 의원의 지역 영향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박의원은 “기다렸다”라며 오히려 손대표와의 격전을 발판 삼아 ‘차세대 리더’로서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입장이다.
박의원은 종로에서 내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종로 토박이’이다. 2002년 16대 종로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 첫 입성했으며, 17대 총선에서는 당시 열린우리당의 김홍신 의원에게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깨끗한 이미지와 함께 외교 분야 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박의원측은 “종로가 중앙 정치권에서 관심이 높은 곳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이 강해 ‘낙하산 후보’가 살아남기는 어렵다. 누가 지역에 애정이 깊고 지역 발전을 이끌 수 있느냐를 놓고 볼 때 비교할 수가 없다”라고 자신했다. 결국 승부는 남은 선거 기간 손대표가 종로 민심을 얼마나 파고들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한편 손대표와 박의원은 개인적인 인연이 깊다. 경기고·서울대 선후배인 데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까지 인연이 겹친다. 같은 교수 아래에서 쓴 논문도 ‘박정희 시대’를 주제로 했으며, 김영삼 정부 시절 박의원을 청와대 비서관으로 천거한 사람이 손대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도봉 갑
민주화 대부·뉴라이트 기수 맞붙다

“누가 당선되든지 노인 복지에 신경을 써 달라.” 지난 3월12일 열린 서울 도봉구 창동 주공 아파트 3단지 노인회 정기총회에 김근태 통합민주당 의원과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오는 4·9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판으로 결전을 펼치게 될 김의원과 신대표가 ‘노심(老心) 잡기’에 나선 것이다. 노인 복지에 대한 당부에 두 후보는 “최선을 다해 해결하겠다”라고 한목소리로 약속했다.
도봉 갑은 민주화 운동의 대부 격인 김의원에게 뉴라이트 운동의 기수격인 신대표가 도전장을 내밀어 주목되고 있다. 여당 대표를 지내고 대권에 도전했던 관록의 중진 의원과 현실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정치 신인의 대결 구도도 흥미롭다.
후보 인지도에서는 김의원이, 정당 지지도에서는 신대표가 앞서 있다. 대권 도전에도 나섰던 김의원은 40여 년을 도봉구민으로 살아오면서 ‘텃밭’을 다져와 지역 기반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여전히 민주당을 크게 앞지르고 있어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김의원측은 “대선 직후보다 차이가 좁혀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정당 지지율에서 격차가 크다”라며 ‘힘든 싸움’을 예상했다. 김의원은 올 초부터 ‘서민의 친구’와 ‘영원한 도봉사람’을 강조하며 구민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늘려나가고 있다.
김의원측은 지난 12년 동안 김의원이 지역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리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활약하다 보니 지역 현안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반론이다. 김의원측은 “그동안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측면이 많다”라고 밝혔다.
신대표는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다. 집권당 프리미엄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민주당 세가 강해 한나라당으로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지역에서 ‘선거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각오이다. 신대표는 “도봉구는 서울시에서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성공 시대’를 완성하려면 ‘도봉 성공 시대’가 먼저 열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김의원에 대해 “존경받을 분이지만 지역을 신경 쓰지는 못했다”라고 지적한 후 “민주화 시대에 ‘김근태 역할’이 있었다면 선진화 시대에는 ‘신지호 역할’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의료·교육 등을 위한 복지 시설 확대와 열악한 문화 시설 확충이 이 지역 주요 현안으로 거론된다. 특히 창2, 3동 뉴타운 건설이 총선에서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의원측은 “도봉민의 기대가 무엇이고 그 해법이 어디에 있는지 가장 잘 아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판단할 것이다”라고 밝혔고, 신대표는 “구민 정서는 이명박 정부와 함께 일할 가장 적합한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 을
‘모셔온 거물’과 ‘토박이 교수’의 한판
“서울 남부 벨트에서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하겠다.” 지난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총선을 통해 정치 재기에 나선다. 정 전 장관은 지난 3월12일 기자회견에서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한다”라며 서울 동작 을 출마를 선언했다.
정 전 장관의 서울 출마는 예견되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는 한편 정치 입지를 재구축하기 위해서 ‘텃밭’인 전북을 떠나 서울행을 택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서울 어느 지역에 출마할 것이냐를 두고 고심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종로 출마가 유력하게 검토되었지만 손학규 대표가 이 지역 출마를 선언하면서 남부 벨트의 중심지인 동작 을에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다. 이로써 서울 북부와 남부를 민주당의 간판인 손대표와 정 전 장관이 각각 책임지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동작 을은 유권자 38%가 호남 출신으로 정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곳이다. 여기에다 현역인 이계안 의원이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여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정 전 장관에게는 최적의 출마지로 여겨진다.
17대에 이어 18대에도 원외에 남을 경우 향후 정치 활동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당선 가능성도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이 지역 공천을 신청한 예비 후보들이 정 전 장관의 동작 을 출마에 반발하면서 강남 출마를 촉구하고 나선 근거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지금 어느 한 군데도 녹록한 곳이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4주 동안 민심 속으로 파고들면 견제 야당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다. 그 목표를 위해 헌신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이미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정부를 바로잡고 국민이 편안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50년 전통의 민주 평화 개혁 진영을 대표하는 통합민주당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견제론’을 강조했다.
정 전 장관과 맞붙을 한나라당 후보는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한 이군현 의원이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교육학 박사로 한국교총 회장을 역임했다. 후보 인지도에서 정 전 장관에게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당 지지율과 지역 연고 등을 앞세워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이의원은 이 지역에 소재한 중앙대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 교수이기도 하다. 경남 통영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동작구에서 생활해온 만큼 이 지역이 ‘제2의 고향’이라고 자부한다. 이의원측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 ‘낙하산 공천’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많다”라고 지적하면서 “3여 년 전부터 지역 활동을 해오면서 주민들과 많은 접촉을 가졌고 지역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공략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 갑
라이벌의 전쟁은 계속된다

숙명의 라이벌 사이에 또 한 번 맞대결이 펼쳐진다. 연세대 총학회장 출신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과 이성헌 전 한나라당 의원이 모교가 위치한 서대문 갑에서 세 번째 격전을 준비 중이다. 지난 두 차례 대결이 2천표 차 이내의 박빙 승부였던 만큼 이번 총선도 승패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어 보인다.
역대 전적도 1승 1패로 팽팽하다. 16대 총선에서는 ‘정치 선배’인 이 전 의원이 1천3백64표 차로 우의원을 따돌리며 국회에 먼저 입성했다. 하지만 재대결을 벌인 17대 총선에서는 우의원이 1천8백99표 차로 승리하며 이 전 의원에게 당한 앞선 패배를 설욕했다.
우의원은 지난 4년간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초선 의원으로 여당의 ‘입’ 역할을 맡으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열린우리당 대변인에 이어 지난 대선 경선에서는 손대표의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고 현재 손학규 대표 체제의 통합민주당 대변인으로 활약 중이다.
이 전 의원도 원외라는 제약을 딛고 당내 입지를 강화해왔다.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참모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왔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 경선에서는 조직총괄단장을 맡아 박 전 대표를 도왔다. 지역 판세는 정당 지지율을 등에 업은 이 전 의원이 앞서나가는 상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의원이 15% 이상 우세하게 나오고 있다. 이 전 의원은 “당에서 조사한 결과에서는 이보다 격차가 더 크게 나왔다”라고 전했다.
이 전 의원은 지역 조직력에서도 현역인 우의원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이’ 인사들과 대결해 공천을 무난하게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지지 기반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전 의원은 “지역 발전을 위해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사업을 이끌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라고 지적한 후 “대통령을 비롯해 서울시장, 서대문구청장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지역 개발 계획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려면 국회의원도 한나라당 출신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접전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우의원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오랜 대변인 경험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진 데다가 최근 민심이 ‘안정론’에서 ‘견제론’ 쪽으로 움직이는 추세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의원은 “대선 후폭풍의 영향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새 정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지역 민심이 차츰 강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기에다 옛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전통적 지지층’이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의원측은 “지난 총선에서 그랬듯이 지역 표심이 한 곳으로 쏠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서울 은평 을
‘한반도 대운하’를 사이에 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한반도 대운하’를 놓고 격전이 예고된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추진을 위한 ‘전도사’ 역할을 자임해온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과 한반도 대운하를 ‘대재앙’이라고 강하게 비판해온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총선에서 맞붙는다.
이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 상임고문을 지내면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한반도 대운하 예정지를 자전거로 직접 탐방한 후 <물길 따라가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의욕이 강하다.
반면 문대표는 은평 을 출마를 결심하게 된 동기 자체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 소신에서 비롯된 것일 정도로 대표적인 대운하 반대론자이다. 문대표는 “한반도 대재앙을 가져올 대운하를 저지하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다”라며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문대표는 “민의를 무시하고 대운하를 추진하겠다는 이재오 의원을 상대해 승리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올바르게 받드는 자세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선거의 유불리를 떠나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인 격인 이의원이 출마하는 지역을 선택해 ‘사람 중심 진짜 경제’를 지역 유권자들에게 직접 설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역 판세는 15대부터 내리 3선을 해온 이의원이 우세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12년 간 지역구를 지켜온 현역 의원인데다가 현직 대통령과 가까운 집권 여당의 ‘실세’라는 점에서 누가 대항마로 나서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의원측은 “지역 민심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총선 첫 도전인 문대표가 지역 민심을 어느 정도 파고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문대표는 대통령 후보로서 전국 득표율 5.8%, 1백37만5천4백78표를 얻어 경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최근 불광동으로 이사한 문대표는 3월16일 지역 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인 총선 행보를 시작했다.
당 내부 갈등으로 인해 총선 준비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불었던 ‘문풍(文風)’이 지역에서 되살아난다면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어 이 사안이 총선 쟁점으로 부각될 경우 결과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통합민주당에서는 민병오 전 손학규 경선 캠프 정책특보, 송미화 전 서울시의회 의원, 최창환 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등이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화제를 모았던 허경영 경제공화당 총재도 예비 후보로 등록해 눈길을 끈다. 허총재는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등으로 구속 기소되어 현재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배기선 의원실 제공
 
경기 부천 원미 을
숙명의 대결, 벌써 네 번째
한 사람은 민주화 운동으로 옥살이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공안 검사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걸었지만 국회의원의 자리를 놓고 1996년 4월7일 제15대 총선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 대결이다. 민주화 인사 출신인 민주당 배기선 의원과 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이사철 전 의원의 인연은 이만큼 질기다. 재대결만 벌여도 관심을 모으기 마련인데 네 번째 대결이니 주목하는 눈이 그만큼 많다.
통산 전적을 따지면 배의원이 2승 1패로 앞서고 있다. 15대에는 이 전 의원이 이겼지만 16대와 17대에는 배의원이 배지를 따냈다. 두 후보 모두 십여 년간 지역을 다졌기 때문에 지역 조직의 탄탄함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하지만 배기선 의원이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변수가 생겼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러면서 균형추가 무너져버렸다.
배의원측에서는 우선 결백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배의원측의 관계자는 “판사 출신인 박재승 공심위 위원장이 면접을 보았고 재판 기록도 훑어본 뒤 공천을 주었다. 당선 무효가 될 경우 당이나 후보나 모두 망신 아니냐”라고 항변했다.
한때 배의원은 총선 불출마 선언도 고려했었다. 상대인 이 전 의원측도 ‘설마 배의원이 나오겠어’라고 생각했다. 이 전 의원측의 김승동 부천시의원은 “민주당이 개혁 공천을 한다고 해서 배의원은 공천을 못 받을 줄 알았다. 어쨌든 그 사건에 대해서 지역민들이 불쾌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점은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오랜 라이벌치고는 이 전 의원이 많이 앞서고 있다. 지역 언론인 <부천타임즈>가 지난 3월11일 실시한 여론조사(부천 원미 을 지역 7백40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이사철 전 의원은 45.1%의 지지를 얻어 24.2%에 그친 배기선 의원에 크게 앞섰다.
이제 배의원은 재판 때문에 주춤했던 지역 활동부터 재개할 계획이다. 배의원측의 김경곤 사무국장은 “현역 의원을 하면서 지역을 위해 한 일이 많다는 것은 강점이다. 게다가 재판 역시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지역민들의 신뢰도 다시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불고 있는 ‘한나라당 견제론’도 배의원측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반면 이 전 의원측은 원외 인사이지만 ‘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대선 때도 법률 지원 단장 등을 맡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김승동 시의원은 “새 정부와 집권 여당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는 포지티브 전략을 쓸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지역의 두 거물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부천타임즈>의 조사에서 최의원은 5.4%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부천시의원 출신이고 의정 활동을 우수하게 해온 국회의원이라는 점 등을 내세워 “인물면에서는 내가 가장 낫다”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민노당의 어려운 상황이 최의원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경기 일산 갑
이명박 정부와 참여정부 ‘대리전’?
“좋은 야당이 필요할 때입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사무실에 걸린 현수막은 요즘 불고 있는 ‘견제론’을 생각나게 했다. 일산 갑 지역은 ‘신(新)정치 1번지’라고 불린다. 인구 분포를 보면 정치에 관심이 많은 30대와 40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중산층이 많아 지역의 정치 성향은 보수적인 편이라고 각 후보 진영에서도 분석하고 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 지역의 유권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55%가 넘는 표를 던졌다.
하지만 한 전 총리측의 조성만 비서관은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정치 의식이 높은 곳이고 학습도 빠르기 때문에 지역민들이 야당 견제론에 공감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20~40대에서 견제론이 50%를 넘는다”라고 말했다. 견제론의 바람, 그리고 총리를 지내고 대선 후보로도 출마한 바 있는 한 전 총리의 높은 인지도 때문에 선거 초반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한 전 총리의 상대인 백성운 한나라당 후보는 인지도에서 밀리고 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행정실장을 맡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한 언론에서는 그를 ‘리틀 이명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난 2월18일에 열린 백후보의 선거 출정식에는 이재오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 등 현 정부의 거물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백후보측의 정인학 보좌관은 “지난 총선에서는 탄핵 정국 속에서도 홍사덕 후보가 불과 2천여 표 차이로 졌다. 이번에는 우리가 5천여 표 차이로 이길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지역 내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다는 점, 그리고 백후보가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강한 여당 후보라는 점이 그 근거였다.
노무현 정부의 인물과 이명박 정부 인물의 대결로 대표되는 곳인 만큼 지역 문제를 둘러싼 해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이곳 신도시 주민들은 자녀 교육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한 전 총리측은 지역구 내에 방과 후 타운과 학습 지원 시설을 건립해 부모들의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백후보측은 다른 해법을 내어놓았다. 백후보는 “자사고와 국제 중·고등학교 등을 유치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두 후보의 차이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백후보에게 밀려난 친박계의 김형진 변호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 일산 갑 지역의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해진다. 하지만 백후보측은 “김변호사가 나올 일은 없다. 당원의 본분을 다하자고 이미 설득한 상태이다”라고 설명했다.

 
충남 홍성·예산
그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인물이다. 덕분에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의 와중에도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한나라당 간판으로 당선되었다. 지난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홍의원은 이총재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제자의 도리’를 다했다.
그러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지난 3월4일 “총선 전략상 중요하다는 당의 의견에 따르고자 한다”라며 홍성·예산 출마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곧바로 ‘정적’(政敵)으로 돌변했다. 그동안 이총재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온 홍문표 의원측은 “이총재가 예산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선영만 있을 뿐 이 지역의 지리도 모른다. 이총재의 출마는 노후 대책일 뿐이다”라며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홍의원도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나 지역민을 얕봐서 그랬지 않겠느냐. 지역 현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으신 분이 갑자기 출마를 선택해 아쉬움을 갖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최소한 정치적 도의를 먼저 져버린 것은 홍의원이 아닌 이총재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총재 역시 홍의원과의 대결이 탐탁치는 않은 눈치다. 이총재는 최근 “홍의원은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해준 사람으로,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다”라고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이총재는 홍성·예산을 중심으로 충남 서·북부 지역 및 전국을 돌며 자유선진당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복안이다. 이총재가 정계에 입문시킨 최승우 예산군수도 3월13일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유선진당에 전격 입당하는 등 홍의원의 입지는 갈수록 위축되는 분위기다.
본격적인 총선 국면을 앞두고 홍문표 의원측은 “여기서 밀릴 수는 없다”라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홍성·예산 선거는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당 대 당의 전쟁이다. 자유선진당 바람의 근원지에서 이회창 총재를 꺾는다면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반드시 압승할 것이다”라며 당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이총재측 관계자는 “홍성·예산은 충청 지역 정서가 강한 곳으로, 이회창 총재의 총선 승리를 걱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다만 총재가 홍성·예산 지역구뿐만 아니라 전국을 챙겨야 할 상황이라 지역민을 만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이회창 총재와 홍문표 의원의 맞대결은 정치의 세계가 얼마나 냉혹한 것인지를 반증해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아울러 홍성·예산을 중심으로 충청권을 넘어 전국에서 바람을 일으키려는 자유선진당과 ‘지역 정당’으로 규정하며 아예 싹을 잘라내려는 한나라당 간의 외나무 다리 대결이 예고되고 있어 홍성·예산은 이번 총선에서 충남 지역의 최대 접전지로 부각되고 있다. 창조한국당에서는 유병학 전 농림부 사무관이, 평화통일가정당에서는 평화대사협의회 예산군공동회장인 이윤석씨가 출마했다.

 
대구 수성 을
굴러온 옛 실세, 박힌 실세 빼낼까
대구 수성 을은 대구 12개 선거구 가운데 가장 관심 지역 중 하나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유시민 의원(48)이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에서 출마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친노 세력의 대표격인 유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주호영 의원(47) 사이의, 그야말로 전-현직 정부 실세들의 맞대결로 보고 있다.
두 사람 간의 대결 구도 속에 이수성 전 대구시의회 의장(58)이 한나라당 탈당에 이은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친 한나라 정서가 유달리 강한 지역. 이번 대선에서도 유효 유권자의 총 71.57%가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져 대구 평균 지지율 69.37%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때문에 주의원의 낙승이 예상되는 지역. 하지만 최근 공천 갈등이 심화되면서 정권 견제론이 일부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까지 이 지역의 판세는 주의원의 우세로 귀착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불교계를 대표해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고 당선 이후에는 당선인 대변인을 맡아 ‘MB 최측근’ 이미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 3월3일 두산오거리 부근에서 열린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에는 그야말로 정권 실세답게 행사 시작 30여 분 전부터 몰려든 차량으로 일대는 교통 혼잡까지 빚어졌다. 하지만 주의원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유의원의 도전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개소식 이후 줄곧 대구에 상주하며 지역 곳곳을 훑고 있다. 주의원은 하루 1만2천보를 걸어다니며 유권자를 만나고 있다. 주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으니 일할 수 있도록 이번에 대구·경북이 확실히 밀어주자”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친 한나라당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인지도와 지지도 면에서 주의원에게 뒤쳐지는 유의원은 마음이 급하다.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지역 밑바닥을 훑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그는 며칠 전 주의원에게 “막창에 소주 한 잔 하면서 대구 현안에 대해 이야기 좀 합시다”라며 소주 토론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유의원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구 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이 높고 한반도 대운하,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 등 지역 현안에 대해 방안을 모색하고자 소주 토론을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주의원측이 거론하는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1월 중순께부터 지역에 내려와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는 유의원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장관 재직시의 경험이 노년층에서 회자되면서 인지도가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수성 전 의장의 출마도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 전 의장은 한나라당 공천 결과를 지켜본 후 무소속 또는 다른 정당 후보로 출마를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 시의회 의장 출신인 그의 출마는 기존 보수 표를 일부 잠식할 가능성이 있어 ‘주-이’ 구도에 다소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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