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약속 해놓고 이제 와서 칼질하나 나는 억울하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3.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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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당이 자신을 공천에서 배제할 줄은 몰랐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총선에서 평가를 받고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당이 칼질을 잘못했다.” 오는 4·9 총선을 통해 정치 재개에 나선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통합민주당의 공천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고형 이상 확정자 배제’ 방침에 따라 희망했던 전남 목포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한 그는 “개인적으로 불만을 갖고 억울함도 있지만 친정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입장을 우선 밝혔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당이 칼질을 할 줄은 몰랐다”라며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대북 송금 특검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문제 삼아 공천 배제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또 공천과 관련해 “입당 후 손학규 대표와 직접 통화를 했고, 상당한 지도자 두 분이 다섯 번을 확인했다. 당이 신의를 저버렸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20일 오후 목포 선거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 전 실장은 통합민주당에서의 ‘역할’과 당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이날 무소속 출마를 공식 선언한 그는 “목포 시민의 역사적 평가를 받은 후 당으로 돌아가 힘 있고 능력 있는 야당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하겠다”라고 밝혔다.

무척 바빠 보인다.
목포 시민들과 함께 한 지 2주가 되었다. 공천 배제 소식을 들은 후 당 지도부를 비롯해 시민사회·종교계 대표 분들을 일일이 만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천금 같은 8일을 버리고 내려왔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뛰고 있다. 오늘도 계속 일정이 잡혀 있어서 정신이 없다. 식사도 대부분 차 안에서 빵이나 떡으로 때우고 있다.
무소속 출마까지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햇볕정책을 이어가고 6·15 남북정상회담을 높이 평가하는 통합민주당이 대북 송금 특검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문제 삼아 공천 배제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백50억원 건(수뢰 혐의)은 무죄가 확정되었고, 1억원 건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억원은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모임인 주암회에서 판공비로 사용한 것이었다. 주암회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것에 유감을 표하면서 ‘대북 문제에 있어 진보적인 정강·정책을 가진 통합민주당이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탄원서를 당에 낸 바 있다.
남북 화해를 위해 나랏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통합민주당에서 또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 목포 시민들로부터 역사적 평가를 받아서 다시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쓰라린 심정으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게 되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개혁 진영의 대통합을 위해 노력했는데 당시에는 성사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이었다고 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평화·개혁 세력이 분열되어서 가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국민도 불안해한다. 한나라당과 1 대 1 구도에서 정책 대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대통합의 당위성을 시민사회·종교계 분들에게 호소한 바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통합을 간곡히 청하며 개문발차(開門發車)를 했는데 박상천 대표의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통합을 이루었더라도 진보 세력이 10년을 집권했으니까 보수 세력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또 국가 발전을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문제는 참패를 당했다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통합민주당이 출범했는데 이번에는 공천 과정의 알력 때문에 분열상이 다시 나타났다. 안타깝다.
손학규 대표 영입 과정에서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손학규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데는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들어와 경선에 참여하는 데는 직접적인 조언을 했고 분위기도 만들었다. 당시 범여권의 일부 대권 후보들은 손대표를 받아들이기 꺼렸다. 그래서 ‘경쟁을 통해 이겨야 대통령이 될 수 있지, 밖에서 구멍가게를 차리면 분열이 된다. 대통합을 하자’라고 설득했다.

 

총선 이후 다시 통합민주당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잠시 당을 떠났지만 통합민주당의 오늘이 있게 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자부한다. 입당 후 손학규 대표와 직접 통화를 했고 상당한 지도자 두 분이 다섯 번을 확인했다. ‘박지원 전 실장 목포 공천은 걱정하지 말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를 드려라’라고 했다. 그러던 당이 신의를 저버렸다. 하지만 나는 통합민주당으로 돌아갈 것이다.
통합민주당에 대한 나의 애정은 여전하다. 통합민주당 입당 전 손대표에게 불만을 갖는 몇몇 정치 지도자들이 함께 당을 만들어 새롭게 정치를 하자고 구체적으로 제안을 해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입당하면 손대표에게 이용당할 테니까 별도의 당을 창당하자고 한 것이다. 그때 ‘분열해서 참패를 한 사람들이 또 분열을 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손대표에게도 ‘이런 창당 움직임이 있는데 책임지고 저지할 테니까 (당을) 잘 이끌고 나가고 그분들도 포용을 해라’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나?
많은 말씀을 했다. 내가 공천에서 배제된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하시고 섭섭해하실 것이다. 어제 전화를 드려서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겠다’라고 했더니 한참 말씀이 없다가 ‘박실장이 잘 판단해서 해라. 잘 되기를 바란다’라고 하셨다.
당이 이래서는 안 된다. (김 전 대통령 이름을) 팔지 말든지 공천 약속을 말든지 해야지.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으면 절 찾아갈 것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국민이 실패한 정부라고 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언행을 너무 품위 없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업적도 있다. 투명성이 확보되었고 6자회담을 이끄는 등 그래도 대북 정책을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양극화 추세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해 소외 계층을 보호한 것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 평가를 더 많이 한다. ‘노무현 정권 5년, 박지원 징역 5년’이지만 평가할 것은 해야 한다.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듯하다.
대북 송금 특검은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반대했고 심지어 국무회의에서 관계 장관인 법무부장관도 반대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했겠지만 실패했다. 만약에 특검이 없었으면 2차 남북정상회담도 일찍 성사되어 (남북 관계에) 얼마나 많은 진전이 있었겠나.
소 읽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되었다. 행담도 특검은 면죄부를 주고, 이명박 특검은 인심 써주고, 삼성 특검은 새 정부에 넘기고. 특검을 너무 조자룡의 헌 칼 쓰듯이 썼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강력히 요구했던 사안이다.
그렇다. 한나라당 논리로 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를 들라 하면 대북 송금 특검과 한나라당 연정 제안이다. 집토끼를 완전히 놓친 것이다. 그렇다고 산토끼를 잡지도 못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떨 것으로 보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와 50분 정도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배석을 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이야기하니까 이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저와 똑같습니다’라고 했다. 선거 과정과 취임 초기에 지지층과 일부 언론을 의식해서 명확한 대북 정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대통령 본인이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고 본다. 속도의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다. 결국 햇볕정책밖에 없다. 이대통령도 그 길로 가리라고 본다.
이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살려나갈 용의가 있다면 내가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대북 관계에서 위기 상황이 온다면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귀를 붙들고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중요하다. 김위원장을 설득해 납득을 시키면 모든 문제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세계 정세에 대해서 소상하게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납득이 되면 스마트한 결정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말씀했지만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도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 후 똑같은 평가를 했다.
김위원장과 만났을 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초청 문제와 특정 언론에 대한 취재 거부에 대해서 설득을 한 적이 있다. ‘야당과 언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독재자다’라고 하자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조리 있게 설명을 하니까 ‘좋다. 이회창 총재를 초청하겠다. 그리고 그 언론 당장 취재 허용한다’라며 지시를 내렸다. 김위원장이 아마 일생에 처음으로 독재자라는 말을 직접 들었을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전임 정권을 통해 임명된 기관장에 대한 자진 사퇴 요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박 전 실장은 국민의 정부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국가를 위해서 문화예술계를 위해서 지혜롭게 잘 처리하기를 바라지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겠느냐”라며 말을 아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 최근 검찰은 대우그룹 퇴출 저지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재미교포 조풍언씨에 대한 계좌 추적에 착수했다. 박 전 실장과 친분이 있는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박 전 실장은 “근거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해라”라며 이른바 ‘DJ 비자금’ 의혹을 일축했다. 이건수 회장에 대해서는 “한나라당과 더 가까운 분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그는 “지난해에도 한 월간지에서 ‘DJ 3천억원 비자금’을 보도했다가 나중에 사과를 했다. (김 전 대통령과) 독일에 갔다 오니까 한 주간지에서 ‘스위스 은행 비자금’을 보도했다가 역시 사과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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