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했다 발 묶인 조풍언씨 DJ 비자금 관리하러 들어왔나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3.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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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회장 돈 5백26억원 실체·사용처·대우그룹 로비 의혹 풀 열쇠로 지목돼

 
조풍언씨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난 3월 초 입국한 그는 현재 국내에서 열흘 이상 머무르고 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 10여 년간 그는 기자들의 호기심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뉴스 메이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에게는 항상 ‘비자금 관리인’ 혹은 ‘특혜 의혹 대상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그는 늘 베일 뒤에 숨어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미국에서조차도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자신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은둔의 유희를 즐기던 그가 지금은 꽤 당혹스러운 처지에 내몰렸다. 조만간 검찰 소환 조사가 불가피해진 까닭이다. 지난 3월8일 인천공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곧바로 자신의 입국 사실이 체크되었다. 검찰은 즉각 그를 출국 정지시켰다.

3월9일 입국한 순간 검찰이 출국 정지시켜
검찰은 2005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횡령 혐의를 수사하면서 ‘미완성’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김 전 회장이 1999년 대우그룹 몰락 전 그룹의 해외 금융 조직인 BFC를 통해 4천4백3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5백26억원)를 조씨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주요 피내사자인 조씨가 미국에 있는 탓에 조사하지 못한 것이다. 검찰은 조씨를 내사중지 처리했다. 그리고 이후 출입국관리소에 ‘입국시 통보’ 조치를 취해둔 상태였다. 그동안 남모르게 수차례 한국을 은밀히 드나들었던 조씨의 처지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조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전남 목포 출신인 그는 DJ 정권의 실세들과도 무척 가까웠다. 무기 중개상을 하며 많은 돈을 벌어들인 그에 대해 한나라당은 특혜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1999년 김 전 대통령의 경기도 일산 자택을 매입해서 현재도 소유하고 있으며, 김홍일 전 의원 등 DJ의 세 아들이 미국에 머무를 때마다 후견인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심지어는 지난 2005년 DJ의 숨겨진 딸이라고 세상에 알려진 김 아무개씨 역시 “조풍언 아저씨가 한때 동교동을 대신해서 우리를 보살펴주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조씨가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그리고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갑자기 스스로 한국에 들어온 것을 두고 갖가지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과의 교감설을 거론하기도 한다. 평소 조씨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설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조씨가 현 정권과의 물밑 채널을 통해 김 전 대통령과 대우 몰락 사태 등에 대해 뭔가를 제공하는 대가로 몰래 입국한 것이라는 제법 구체적인 살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조씨를 잘 안다는 주변 관계자들은 이런 전망을 단번에 일축한다.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은 “그것은 조씨와 DJ의 관계를 제대로 모르는 데서 나오는 흥미 위주의 상상에 불과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정권이 한 번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틀어지고 정리되고 할 단순한 관계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 DJ 일가와 조씨의 관계 등을 잇달아 폭로하면서 ‘DJ 저격수’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조씨가 DJ 일가의 비자금 관리인이라고 믿고 있다.
이번 조씨의 귀국은 국내에 남아 있는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조씨는 국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애써왔다. 한국도 자주 다녀간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의 한 방송국에 몸담고 있는 언론인 ㅇ씨는 “조씨는 제3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피력한 것으로 안다. 이번에도 한국에서 일을 보고 카자흐스탄으로 가고자 했다가 발이 묶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조씨가 남겨두고 있는 국내 재산으로는 김대중 정권 말기에 사들인 대우정보시스템 주식과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삼일빌딩이 대표적이다. 김 전 회장의 재산을 쫓는 예금보험공사는 현재 조씨 소유로 알려진 이 재산의 가치를 약 1천4백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일산 자택도 1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조풍언씨 소유 재산 가치 1천4백억원 추정
조씨는 국내에도 자신의 사람이 제법 많다. 그의 주변을 탐문해보면 현재 그의 행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그는 지난 3월8일 혼자 한국에 들어와서 현재 모처에 머무르고 있다. 집안일을 돕는 중년의 도우미 여성과 운전기사 겸 비서 노릇을 하는 젊은 남성이 곁에서 돕고 있다. 특이한 점은 조씨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어딘가를 시종 분주하게 다닌다는 점이다. 하루도 거처에서 머무르는 일이 없이 바쁜 ‘업무’를 보고 있는 중이다. 도우미 여성은 “회장님은 굉장히 바쁘시다. 나도 제대로 얼굴을 못 볼 정도다”라고 말한다. 운전기사는 조씨의 손과 발이 되어주느라 새벽에 하루를 시작해서 밤늦게 하루를 마감하곤 한다. 그가 이용하는 승용차 또한 조씨 소유로 알려진 국내 한 회사 소유 차량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의 차가 서초동 검찰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검찰은 현재 그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수사 계획은 갖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소환 조사는 하지 않고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때마침 지금이 검찰 내부 인사 이동 중이어서 새롭게 업무 인수 인계를 하고 새 진용이 과거 수사 자료를 재검토하는 데는 시일이 좀 걸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조씨에 대한 최대 궁금증은 그가 과연 김 전 대통령과 김 전 회장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는 점이다. 그 의혹의 핵심은 김 전 회장이 조씨에게 전달했다는 5백26억원의 실체와 그 사용처에 있다. 이 돈의 행방을 밝히는 것이 대우그룹 로비 의혹을 푸는 열쇠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항간에 루머가 끊이지 않는다.
검찰과 예금보험공사는 현재 조씨 소유의 국내 재산이 실질적으로 김 전 회장의 비자금일 것이라는 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당시 매입 자금이 김 전 회장이 조씨에게 건넨 5백26억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김 전 회장이 측근인 조씨를 통해서 회사 비자금을 빼돌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만만찮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구조조정본부장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1999년 조씨가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2백53만주(전체 주식의 71.59%)와 대우통신 교환기 사업 부문 그리고 아도니스 골프장 등 대우그룹의 알짜배기 사업체 세 개를 사들이려고 할 당시 그와 김회장 사이에서 직접 실무를 담당했던 장본인이다. 그는 지금도 당시 상황을 눈앞에서 그리듯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5백26억원은 대우그룹 회사 세 개 판 돈” 주장
“1999년 6월 당시 김회장이 힐튼호텔 25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나를 불렀다. 가보니 김회장과 함께, 한 낯선 인물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날 조씨를 처음 보았다. 기흥물산 회장 명함을 내게 건넸다. 김회장의 표정은 다소 침울하고 착잡한 듯했다. 그는 내게 ‘여기 이 사람은 내 후배로 미국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사업체 세 건을 매각하려고 하니 김본부장이 적정한 가격을 책정해서 안을 올리라’라고 지시했다. 이후 내가 세 건의 사업체에 대해 최저가안(1안)부터 최고가안(4안)까지 4등급으로 분류해서 제출했다. 조씨는 당연히 1안을 고집했다. 하지만 나는 ‘과연 1안을 제시할 경우 주주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다. 나와 조씨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던 김회장은 내게 ‘지금 1안을 선택할 경우 5일 내로 조회장이 바로 계약금을 입금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유리할지, 아니면 4안을 갖고 계속 다른 인수자를 기다리는 것이 유리할지 김본부장이 잘 판단해보라’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는 조씨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만큼이나 당시 상황은 대우로서는 막다른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김회장은 대우자동차와 (주)대우 두 회사만 제외하고는 무조건 다 팔겠다고 나섰지만 사려고 나서는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DJ 정권에서는 난리였다. 왜 자구 노력을 보이지 않느냐는 닦달이었다. 코너에 몰리던 김회장 처지에서는 조씨가 그나마 지푸라기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1안으로 계약을 했고, 실제 5일 만에 조씨에게서 계약금이 들어왔다.”
그런데 김 전 본부장은 항간에서 제기되는 김회장과 조씨의 유착설에 대해 강하게 고개를 젓고 있다. 그는 “내가 김회장을 보필해온 경험으로 아는데, 당시 김회장은 조씨를 썩 신뢰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입장이었다. 반면 조씨는 시종 김회장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형님이 하시는 것은 내가 무조건 도와드려야지요’라는 둥 우리 앞에서 김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고자 애쓰는 듯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 대우그룹 임원 출신의 한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시 김회장은 정치적으로 이회창 쪽이었다. DJ 쪽에는 정말 줄이 없었다. 그런 DJ가 당선하자 김회장 역시 적잖이 당황해 했다. 그런 상황에서 DJ의 최측근으로 급부상한 조씨의 존재감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김회장으로서도 착잡한 심정이었겠지만 회사를 살리려면 조씨를 무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씨 역시 지난 2003년 로스앤젤레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평생을 군납과 무기 장사를 하면서 군인들과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고개만 숙이고 다녔다. 그런데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니 평생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장관과 고위 장성들이 ‘형님, 형님’ 하고 부르며 나를 대접해 다소 우쭐해져 안하무인이 되기도 했다. 그 당시야 조풍언을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나를 실세 중에 실세로 대해줄 때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실제 이 계약이 성사된 이후 당시 방송과 신문에는 ‘대우그룹 3개 회사 해외 시장에 매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나갔다. 당시 DJ 정권의 ‘재계 저승사자’로 불린 이헌재 금감원장의 서슬 퍼런 등살에 전전긍긍해하던 김회장의 기억을 김 전 본부장은 되살리고 있었다. 이때부터 당시 대우그룹 임원들 사이에서는 “조풍언을 앞세운 DJ 정권에 대우와 김회장이 농락당했다”라는 자조섞인 울분이 터져나왔다.
김 전 회장은 당시 검찰 조사에서 5백26억원의 성격에 대해 “조씨에게서 빌린 돈을 해외 계좌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돌려준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우 전직 임원 관계자들 말대로 김 전 회장과 조씨의 유착설도 근거가 희박한 한낱 상상력에 불과하다면, 김 전 회장이 5백26억원을 조씨에게 건넬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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