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치과야, 귀족 치과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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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치과, ‘소아 전문’ 간판 달고 폭리… “수면 치료, 보험 혜택 없는 재료 사용 때문”

 

어린이 치과’가 성업 중이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지못할 정도이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은 일반 치과와 무엇이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어린이 치과로 향한다. 그러나 한 번쯤 가본 부모들은 혀를 내두른다. 특별한 것도 없으면서 진료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싸다. 일반 치과보다 2~3배 비싼 것은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결국 어린 아이를 볼모로 한 얄팍한 상혼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최정애씨(32·여)는 지난달 세 살 난 딸아이와 집 근처에 있는 ㅇ어린이 치과를 찾았다. 아이의 어금니가 썩은 것 같아 간단하게 치료할 요량이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진료비에 깜짝 놀랐다. 최씨는 “아이 어금니에 마치 사인펜으로 콕 찍어놓은 것 같은 작은 점이 보였다. 이제 막 썩기 시작하는 것 같았고 크기도 작아서 큰돈 안들이고 치료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냥 긁어내거나, 심하다고 해도 때우면 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의사는 아이의 치아가 많이 썩어 신경 치료를 한 후 덮어씌워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치아도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심하게 썩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금니를 덮어씌우고 다른 치아 두 군데도 때웠다. 그렇게 치료를 하고서 병원측이 요구한 비용은 50만원이었다.

최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이에게 친절하기는 했지만 바가지 진료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이라서 어린이 치과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앞으로 다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라고 털어놓았다. 최씨와 유사한 경험을 한 부모들은 또다시 어린이 치과에 가기가 망설여진다. 일반 치과보다 많게는 10배까지 비싼 진료비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이지순씨(35·여)는 네 살짜리 아이를 어린이 치과에 데리고 갔다가 비싼 진료비에 놀라 진료를 받지 않고 돌아 나왔다. 이씨는 “아이의 치아 한 개가 썩었을 뿐인데 이것저것 붙이더니 진료비 견적이 40만원이나 나왔다. 놀라서 어린이 치과를 나와 연세세브란스병원 치과를 찾았다. 단 4만원에 썩은 치아를 치료했다. 대학병원 치과의사에게 어린이 치과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다 더 놀라는 눈치였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ㅇ어린이 치과는 마치 어린이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다. 원색의 벽지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만화 캐릭터가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진료실 옆에 있는 놀이방에는 컴퓨터 게임기와 장난감은 물론 그림책도 구비되어 있다. 진료실도 여행 진료실·동화나라 진료실 등 테마별로 꾸며져 있어 이들로 하여금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 아이가 진료대에 누우면 만화영화를 볼 수 있도록 천정에 모니터도 달아두었다. 치료를 받을 때면 이어폰을 씌워 기계 소리를 아예 듣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계속 무서워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에게는 풍선이나 만화그림이 그려진 스티커 등을 주며 달랜다. 한 대학병원 치과 전문의는 “진료 대상이 아이이기 때문에 성인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에 많은 돈을 들였을 것이다. 이런 비용들이 진료비에 전가되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같은 의사가 봐도 어린이 치과 진료비는 비싼 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따로 면허 없는데도 ‘소아 전문’ 내세워…당국의 적극적 관리 필요

 

어린이 치과와 일반 치과를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은 ‘수면 치료’에 있다. 수면 치료는 약물이나 가스로 아이를 재운 상태에서 치료하는 방법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ㅇ어린이 치과 관계자는 “아이의 치아 상태를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일단 신경치료 하고 충치를 덮어씌우려면 10만원 정도의 진료비가 든다. 수면 치료로 하면 별도로 10만원이 추가된다”라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굳이 부모가 묻기 전까지 충치를 덮어씌우는 재료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레진(resin)이라는 재료를 사용한다. 치아색과 재질이 비슷하다. 아말감(amalgam)이라고 싸구려 재질이 있는데 수은이 함유되어 있어 잘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레진이 아말감에 비해 5~10배까지 비싸 진료비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ㅁ치과의 상담실장은 “어린이 치과라고 해서 재료나 치료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충치 정도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치아를 때우는 아말감의 경우 1만원, 레진은 5만원 정도 한다. 레진은 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의 소아치과 의사도 “의료수가가 현실적이지 못한 점도 어린이 치과가 비싼 재료를 강요하는 이유일 것이다. 예를들어 치아를 때우는 재료로 아말감과 레진이 있는데 어린이 치과에서는레진을 많이 권한다. 수은이 함유된 아말감의 유·무해 논란은 접어두고라도, 레진은 보험 처리가 안 되기 때문에 이 재료를 권하는 어린이 치과가 많다. 그러나 아말감이 유독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증거는 어디에도없다”라고 강조했다.

어린이 치과는 자신의 아이를 각별하게 챙기는 부모들을 교묘히 자극하는 상술로도 재미를 보고 있다. 서울 이촌동에 사는 지우영씨(28·여·가명)는 얼마 전 세 살 난 딸아이의 앞니가 변색되어 놀란 마음에 어린이치과를 찾았다. 다행히 충치는 아니었지만 병원측의 상술에 넘어가 헛돈을 썼다고 했다. 지씨는 “엄마와 아빠의 치아가 약하기 때문에 아이의 치아도 약하다면서 의사가 ‘불소 도포’를 하라고 했다. 충치를 예방하기 위해 치약 같은 약을 발라주는 것이 전부인데 진료비가 4만원을 넘었다. 일반 치과에서는 2만원이다. 얄팍한 상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불소 도포는 불소를 치아에 도포해 충치를 예방하는 시술이다.

어린이 치과들은 소아치과 전문의가 치료한다는 점에서 일반 치과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어린이 치과는 정식으로 분류된 의료 분야는 아니다. 치과대학에서 다루는 하나의 전공 분야일 뿐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생활위생과 관계자는 “어린이 치과 또는 소아치과라는 의료 분야는 정해져 있지 않다. 소아 전문의라는 것도 최근에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도 “어린이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들 중에는 소아치과 전공자들이 많다. 그렇지만 소아치과 면허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어린이 진료에 관심이 있다면 일반 치과도 어린이 치과로 간판을 바꿔달 수 있는 셈이다.

어린이 치과 면허 제도가 따로 없는데 어린이 치과라는 간판을 내걸수 있을까. 명확한 법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 치과라는 명칭의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의료제도과 송수진씨는 “의료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고유 명칭은 의료 기관의 종별 명칭과 혼동할 우려가 있거나 특정 진료 과목 또는 질병명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어린이 치과라는 명칭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현재 관할 보건소 등을 통해 어린이 치과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치과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3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어린이 치과들은 간판에 어린이·꼬마·칠드런(children)·주니어(junior)·키즈(kids)와 같은 단어를 섞어 쓰고 있다. 그럼에도 어린이 치과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비싼 진료비를 물고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 원성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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