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공기’가 심상치 않네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8.04.0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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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태·대기오염 등 이유로 올림픽 ‘불참 선언 줄이어…중국의 편파 진행도 염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8이 4개나 겹치는 2008년 8월8일 8시 개막되는 베이징올림픽. 하지만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지금 갖가지 위험 요소로 인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01년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이 올림픽을 계기로 국가 전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서 세계 최대 강대국 미국과 대등한 위치로 올라가는 발판을 마련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우선 올림픽 사상 가장 화려하고 짜임새 있는 개·폐회식을 치르고, 완벽한 운영을 통해 흑자 올림픽을 기록하는 한편 처음 종합 1위를 차지함으로써 자기 손으로 중화주의에 승리의 월계관을 씌우고자 했었다.
그러나 티베트 사건과 베이징의 대기오염 그리고 예상한 것보다 강한 미국 스포츠의 상승세와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의 비밀 유출 등으로 성공적인 올림픽 가도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적이 있고,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치러진 적도 있었다. 1916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6회 올림픽은 1차 세계대전 때문에 열리지 못했고, 1940년과 1944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12, 13회 올림픽은 2차 세계대전 때문에 건너뛰었다. 따라서 29회 베이징올림픽은 사실상 26번째 올림픽이 되는 셈이다.

영국, 개막식 불참 선언…프랑스·독일도 뒤따를 듯

1980년에 개최된 22회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의 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1979년 12월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무력 침공해 친소정권을 세우자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소련군의 즉각 철수를 촉구하면서 다각도의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해낸 것이 올림픽 보이코트였다. 신성한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키는 처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올림픽 보이코트를 정치적 요구 관철의 카드로 내세운 것은 가장 위험 부담이 작으면서도 가장 효과가 큰 압력 수단으로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1980년 2월 미국 정부는 올림픽 불참을 공식 선언했으며, 서방 국가들이 이에 속속 동조해 모스크바올림픽에는 결국 한국, 미국을 비롯해서 서독, 일본, 캐나다 등 67개국을 제외한 81개국 6천9백48명이 참가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는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4년 전 모스크바 대회를 보이코트한 서방 국가들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불참했다. 역시 전세계 1백40개국에서 7천9백여 명의 선수가 참여한 반쪽짜리 대회로 치러졌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베이징올림픽이 28년 전에 치러진 모스크바 올림픽과 비슷한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가장 먼저 찰스 영국 왕세자가 올림픽 개막식 불참을 선언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개막식 불참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개막식 참석을 거부하려 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은 분명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전락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의 전철을 베이징올림픽이 따라갈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점점 위상이 커지고 있는 중국과의 경제적·정치적 끈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꽤 많은 서방 국가들이 인권 문제에서 중국을 대놓고 비판할 만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점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살인적인 대기오염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잇따라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테니스 스타 앤디 로딕이 베이징올림픽의 열악한 대기오염을 이유로 불참을 천명한 데 이어, 세계 여자테니스 랭킹 1위인 벨기에의 쥐스틴 예넹도 같은 이유로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베이징올림픽에 더욱 큰 타격을 준 선수는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르브 셀라시에이다. 셀라시에 선수는 2007년 9월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4분26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운 초특급 마라토너다. 그는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아서 트랙에서 뛰는 1만m 레이스에만 출전하겠다”라고 폭탄 선언을 했다.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셀라시에의 이같은 발언은 다른 종목의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선수가 베이징의 대기오염 또는 중국의 티베트 유혈 진압 등을 이유로 올림픽 출전을 거부할지 모른다.
 

부정·비리로 보안 ‘구멍’…위협 요소들 잇달아 불거져

중국의 또 다른 고민은 종합 1위를 다툴 미국의 경기력이 자기네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올림픽 종합 1위를 초창기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세 나라를 제외하면 미국과 러시아가 번갈아 차지해왔다. 만약 중국이 종합 1위를 차지하면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종합 1위를 차지하면서 올림픽의 역사를 바꿔놓게 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미국이 금메달 35개로 중국을 3개 차이로 따돌리고 종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미국은 육상에서 8개, 수영에서 10개 등 두 종목에서 18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전체 금메달의 절반 이상을 육상·수영 두 기본 종목에서 획득했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해 일본 오사카에서 벌어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무려 14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수영에서는 아테네대회 6관왕인 마이클 펠푸스가 무려 9관왕까지 노리면서 최소한 12개 이상의 금메달을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육상과 수영에서만 25개 안팎의 금메달 사냥이 가능하다.
그러나 중국은 육상에서 1백10m 허들의 류시앙과 여자 마라톤의 저우춘슈, 그리고 수영에서 모두 2~3개의 금메달밖에 건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벌 미국과 육상·수영 등 기본 종목에서 무려 20개 이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메달밭인 탁구, 배드민턴, 사격, 다이빙 유도, 태권도 등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을 대거 획득하기 위해 대진 추첨, 심판 배정 등에서 무리수를 쓸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올림픽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냐오차오(鳥巢)`로 불리는 메인 스타디움은 베이징올림픽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오는 5월 완공될 예정인 이 건물의 공사 현장은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일반인 접근이 엄격히 차단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외국인이 장막으로 둘러쳐진 ‘냐오차오’를 외부에서 촬영하기 어렵게 되자 사진 찍기 편리한 장소를 찾으러 수소문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2백 위안만 주면 건설 현장으로 들여보내주겠다”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어이없게도 그 제안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부정과 비리가 판치는 중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지키는 경비원 월급은 1천 위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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