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야소’ 뒤에 숨은 민심
  • 전남식 편집국장 niceshot@sisapress.co ()
  • 승인 2008.04.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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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서 여대야소(與大野小)의 기억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야당 총재 눈치를 보는 정치가 싫어서 ‘구국의 결단’을 내린다. 민정당 깃발을 내리고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와 손잡고 2백16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낸 것이다. 직전의 국회상은 아주 참신했다. 4색 당파가 타협하고 합의하며 해결책을 찾다 보니 의원들이 얼굴을 붉힐 일도 멱살을 잡을 일도 없었다. 이런 국회를 탄생시킨 ‘87년 체제’의 의미를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었다. 오랜 독재에서 벗어난 국민은 ‘견제와 균형’의 묘미를 한껏 살릴 수 있는 황금분할의 정치판을 엮어냈던 것이다. 물론 3당 합당으로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외톨이로 남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3당이 야합을 했다며 단식 정치로 반발했다. 국회는 다시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극한 저항으로 사사건건 충돌하는 난장판으로 돌아갔다.
탄핵 역풍 속에 ‘탄돌이’들을 대거 등장시킨 17대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열린우리당은 1백52석의 과반을 넘는 거대 여당으로 변신해 국회를 장악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화의 정치를 하겠다며 국정 파트너로서 야당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국회는 열렸다 하면 싸움과 농성으로 시끄러웠다. 민생은 뒷전에 제쳐놓았다. 사학법, 언론관계법, 과거사법처럼 이념으로 버무린 쟁점 법안들을 놓고 끝없는 소모전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타협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야당에게 추파를 던지며 대연정론을 들먹여 정국을 희화화하기도 했다. 그가 아량을 베풀어 상대를 배려하는 정치를 했다면 훗날 ‘실패한 대통령’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대통령들에게 여소야대는 마냥 불편하기만 했고, 여대야소는 감당하기에 힘이 부쳤던 것 같다. 이들은 ‘통합의 정치’를 번번이 공수표로 날렸고, 그래서 막후에서 싸움이나 지휘하는 인물로 투영되곤 했다. 대통령이 갈등의 한복판에 놓여 분란에 휘말리는 정치의 말로가 좋을 리 없다. 한국 정치가 항상 승자는 없고 모두를 패배자로 내모는 치킨 게임으로 일관했던 근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도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해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이대통령 역시 타협과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당장 보수 진영의 통합도 쉽지 않아 보인다. 통합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든, 친박 세력이든, 더 나아가 자유선진당이든 힘을 보탤 세력은 진지하게 껴안아야 한다. 힘을 엉뚱한 데 낭비하고 갈등을 오만과 독선으로 누르려 한다면 이전 대통령들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경제를 살리려면 정파를 초월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번 총선 민심이 빚어낸 여대야소에는 바로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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