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넘치는 ‘그리기’의 자유
  • 이재언 (미술평론가) ()
  • 승인 2008.04.21 15: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안젤름 키퍼·줄리안 슈나벨 전시 동시에 열려 애호가들 ‘흐뭇’

 
도서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 유명 작가들의 그림이 들어올 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했다. 입장료 얼마쯤은 지불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고, 또 때에 따라서는 줄을 서는 수고 정도도 기꺼이 쏟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식상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일상처럼 자연스러워진 것인지 분위기가 전과는 다르다. 안젤름 키퍼, 줄리안 슈나벨 하면 오늘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이들이다. 이 두 작가의 전시가 공교롭게도 사간동에서 거의 동시에 열리고 있다. 당연히 지불했어야 했던 입장료도 없이 보통의 전시처럼 차분한 분위기 속에 열리고 있다. 우리 미술 시장이 몰라보게 성장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거대 기업의 작품 소장 내용이 알려지면서 외국 유명 작품들에 대해서는 예민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린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리는 대형 미술관의 식상한 고전적 블록버스터 전시보다는 내용적으로 더 알차고 흥미로운 현대 작가의 전시를 한걸음에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술사적으로 두 작가는 독일의 신표현주의와 미국 뉴페인팅의 대표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회화의 방법과 개성적인 면에서야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보면 같은 부류로 묶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그저 고답적이고 억압적인 미의식으로 고립적인 양식을 추구했던 미술에서 벗어나 에너지 넘치는 자유로운 ‘그리기’로 복귀해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런 평가를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세기 초의 양식을 각색해 상업화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메리 분이나 사치와 같은 큰손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엄청난 자금력으로 새로운 스타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장의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명성이 오늘과 같았을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는 없다.
어쨌거나 1980~1990년대를 풍미한 그들의 작업도 어느덧 고전이 된 느낌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쏟아낸 찬사와 담론들을 되풀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약간의 화제들을 짚는 정도로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칸 영화제 감독상 받은 슈나벨

 

슈나벨(1951년생)은 영화 <바스키아>(1996년)의 감독을 맡았으며,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로 감독상을 수상하고 이로 말미암아 올해 골든글로브 감독상까지 받아 영화계의 명성도 화가의 명성 못지않게 화려하다. 오히려 영화의 비중이 더 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슈나벨은 약관의 나이에 이미 메리분이나 레오카스텔리 갤러리에 발탁되어 미국 화단에서 혜성처럼 떠올랐다.
특히 ‘플레이트 페인팅’이라고 불리는 그의 접시 파편 그림은 1980년대 화단에 대단히 강열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워낙 재능이 있는 데다 탁월한 붙임성까지 곁들인 작가이기에 서른도 채 안 된 나이에 뉴욕의 큰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플레이트 페인팅이란 가우디의 천재적 상상력과 모자이크 방식의 조합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멀쩡한 접시들이 깨진 상태로 캔버스에 접합되어 있는 것 자체가 거북한 제스처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팝아트와 미니멀아트 이래 미술 시장의 일시적 침체를 타개해나갈 스타에 목말라 있던 뉴욕에서 작가의 등장은 주목을 받을 조건들을 두루 갖추었던 것이다.
유럽 특히 독일 미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였던 터였기에 더욱 그랬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무언가 정형화된 양식에 갇혀 있던 팝아트나 미니멀아트의 카리스마가 더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표현주의를 새롭게 다듬어서 페인팅의 향수를 자극하는 움직임들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이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력에 걸맞는 문화적 패권에 대한 열망을 품은 독일 정부의 공공연한 지원까지 곁들여 나타난 현상이다.
데이빗 살르와 나란히 쌍두마차를 견인케 했지만 그래도 재능에 비해 카리스마가 약한 살르보다는 열정 면에서 앞서는 슈나벨이 그들의 입맛에는 더 잘 맞지 않았을까. 일명 노숙자의 ‘낙서화’를 들고 1980년대 혜성처럼 나타난 신동 바스키아에게 눈길은 주었지만, 그가 의지하고 있던 약물들을 못내 불안해했다는 점에서 슈나벨만큼 믿음직하고 세련된 동업자는 드물었던 것이다. 그런 여망에 부응하면서 슈나벨은 생경한 분위기의 알레고리가 풍부한 그림들을 무리없이 생산해냈다. 특히 최근에는 단조로운 구성 위에 문자가 삽입된 화면의 알쏭달쏭한 그림들을 고전적인 액자에 넣어 묘한 역사적 패러디를 자아내고 있다. 예전의 저돌적인 에너지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이제 관조의 미를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20세기 후반 미술 대표하는 키퍼 

안젤름 키퍼(1945년생)는 바젤리츠와 함께 요셉 보이스 이래 가장 출중한 독일의 현역 작가로 꼽히고 있다. 슈나벨에 비해 순발력이나 감각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그림에 대해 훨씬 진지하고, 그가 구축한 양식들 역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탄탄한 짜임새를 지니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등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처음에는 신표현주의라는 틀 안에서 언급되던 단계에서 벗어나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을 주유한 끝에 20세기 후반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표현주의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어도, 그는 누구보다 작품을 매개로 한 상호 작용과 소통을 중시한 예언자적 작가다.
특히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역사와 신화의 상호 관계에 기초한 역사적·실존적 반성의 문맥은 전세계인들에게 절절한 호소력을 갖는다. 그러한 내면적 성찰을 소통시키기 위해 회화적 자율성을 지키면서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사물들의 조합이라는 방법에도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키퍼만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는 이미지의 물질적인 혼재와 그만의 시·공간적 질서를 창출하게 된다. 납, 풀, 재, 머리카락, 사진, 사금파리, 진흙, 모래, 그 외 구체적인 오브제나 텍스트들이 융합된 복합적 텍스트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은 작가가 일관되게 설정한 잿빛이나 청회색, 검정, 갈색조의 화면 질서 안에 통합되고 융합되어, 세기 초의 표현주의가 드러낸 음울한 신비의 내면성, 그리고 실존적 세계의 중력성과 아우라, 묵시록적 메시지들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많은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는 가운데서도 무언가 대립적인 것들의 조합을 내장시켜 스토리텔링이 예상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선과 악, 과거와 현재, 자연과 문명(혹은 이성과 자연), 정신과 육체, 탄생과 죽음, 천상과 지상 등의 이질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 자체야말로 진정한 우리 세계의 실상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전시장 배열은 명료하다. 한쪽 벽 전체에는 거대한 패널 20개가 연결되어 있고, 그 앞에는 숫제 폐가와도 같은 건축물이 버티고 있다. 벽에서는 양치 식물로 상징되는 생명 자체가 순환을 통해 존속되어 온 비밀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건축 구조물에서는 문명의 필연적 소멸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문명의 악몽을 대비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