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벽 넘는 훈련·연구 탄탄히 해 베이징 전선 이상 없다”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8.04.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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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최초로 IOC 위원 물망에 오른 태릉선수촌장 이에리사씨

 
‘비리 백화점’ ‘부정부패’ ‘요절’…. 그동안 한국을 대표했던 스포츠 대통령, 즉 IOC 위원들을 떠올리면 나타나는 잔상들이다. IOC 위원은 각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올림픽 위원회를 대표하는 자리다. 따라서 굳이 권력, 금력, 심지어 학력보다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 스포츠에 대한 봉사 정신 등이 필요한 자리다. 우리나라 IOC 위원들은 그 자리를 파워게임의 전리품쯤으로 알았던 것 같다.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IOC 위원 후보로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에리사 촌장은 체육 외길을 걸어왔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관권·금권은 물론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는 무공해 체육인이다. 한국 최초의 구기 종목 국제대회 금메달의 주역이었고, 한국 최초의 국가대표 여성 코치, 한국 최초 여성 촌장이었으며, 2004 아테네올림픽 때는 여성 총감독으로 대회를 훌륭하게 치러내기도 했다. 이촌장은 올 초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1백68명으로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도전하라는 권유를 받고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IOC 위원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100일 앞두고 선수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이에리사씨를 4월22일 태릉선수촌장실에서 만났다.

한국인 최초의 여성 IOC 위원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IOC 위원은 어떤 것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가 스포츠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탁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스포츠 외길을 걸어왔다. 교수가 된 것도, 영어와 독일어를 익힌 것도, 여성 최초의 태릉선수촌장이 된 것도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전의 국내 IOC 위원들은 권력 또는 금력을 지녔고, 권력과 금력을 동원할 역량을 갖춘 인물이었는데.
다른 나라 IOC 위원들을 봐라. 물론 공주도 있고 왕자도 있지만 대부분 평범한 스포츠맨 출신이다. 그러나 모두 스포츠 외길을 걸어오며 스포츠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IOC 위원은 필요할 때는 국내 스포츠 발전을 위해 일을 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세계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권력·금력 등 외형적인 조건은 상관이 없다고 본다.

이촌장이 IOC 위원이 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일단 국내 추천만 이뤄진다면 국제 무대에서는 수월하다. KOC 위원장, 즉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의 추천이 필요한데, 지금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여성 사무총장 선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어서 문제다.
IOC 내에서는 1백15명의 IOC 위원 가운데 20%인 23명이 여성 몫이다. 지금 여성 IOC 위원이 16명뿐이라 아직 7명의 여성 몫이 남아 있다.

IOC 위원 선임은 언제 하는가?
2008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는 기간(8월)에 총회에서 결정된다. 현재 한국에서는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조정원씨가 WTF 총재에 배정되어 있는 IOC 위원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그 자리는 조정원씨가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자리에서 물러나면 자동적으로 내주어야 한다.

IOC로부터 특별한 상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2006년에 아시아권을 대표해서 IOC로부터 ‘여성과 스포츠’ 트로피를 받았다.

이제 베이징올림픽이 100일밖에 남지 않았다. 선수들은 지금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가?
100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매일 매일이 중요하다. 매일, 내일 중요한 경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 기간이 긴 선수가 결국은 이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천일 동안 긴장을 하고 준비를 한 선수와 5백일, 100일을 긴장하고 준비를 한 선수가 있다면 누가 더 유리하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다. 혹시 부상이나 감기라도 걸리면 그때까지 준비해온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평소의 건강 관리가 그래서 중요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은 사상 처음 종합 1위를 노리 는데, 중국이 노리는 전략 종목, 즉 탁구·배드민턴·역도·양궁·하키 중에는 우리와 겹치는 것이 많다.
지난 88 서울올림픽 때 솔직히 우리도 홈그라운드 이점을 많이 봤다. 중국의 홈 텃세를 누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욱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실력을 쌓는 것만이 원정팀의 불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체조의 양태영처럼 억울한 선수가 나올 가능 성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판정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교육도 하고, 현장에서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아마 이번 대회는 심판 판정 등에서 억울한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의 목표는?
우리나라는 금메달 10개를 따내 10위권 안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양궁·태권도·레슬링·핸드볼·수영·역도·유도·남자체조 등에서 금메달을 기대한다. 하지만 다른 올림픽 때와는 달리 가장 어려운 대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대회에 ‘올인’하는 만리장성의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관중의 광적인 응원이나, 경기장 곳곳마다 간단치 않은 텃세가 우리 선수들을 괴롭힐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메달을 노리는가?
현재로서는 양궁에서 2~3개, 태권도에서 2개 안팎 그리고 유도·여자 역도·남자수영·레슬링·남자 체조 등에서 각각 1개씩 등 8∼10개의 금메달을 예상하고 있다.
특히 세계 정상권에 올라 있는 남자 수영의 박태환, 여자 역도의 장미란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박태환은 호주의 그랜트 헤킷 등 라이벌들의 기록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장미란의 경우 유일한 라이벌 중국의 무솽솽이 4월22일 합계 3백28kg을 기록해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신기록(3백19kg)보다 무려 9kg이나 더 들었다.
다만 사격과 남자 마라톤, 펜싱 등 기대하지 않았던 종목에서 메달이 나오면 종합 순위를 올리는 데 큰 보탬이 될 것 같다.

이촌장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선수 생활을 했는데,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나는 경기 전날 운동화를 옆에 두고 자곤 했었다. 그리고 운동화 끈을 풀어놨다가 새로운 마음으로 끈을 맨다. 경기장에 가서는 절대로 상대 선수보다 먼저 탁구대 앞에 서지 않았다. 기다리는 초조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같은 정성과 노력 덕분에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종합 탁구선수권대회 7연패를 달성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내 방식이다. 다만 매일매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 생활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1973년 사라예보 세계대회 단체전에서 헝가리·일본·중국 등을 맞아 단·복식 19승(복식 한 경기 패배)을 하면서 한국 팀 우승에 기여했었다. 그런데 정작 개인전을 소홀히 했다.
나는 단체전 우승으로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 개인전은 보너스로 알고 출전했다. 그래서 첫 경기에서 스웨덴의 브리지타 라드베르그에게 패했다. 라드베르그는 내가 10번 싸우면 9번은 이길 수 있는 선수였다. 나중에 나에게 단체전에서 패했었던 중국의 호옥란이 우승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은 후회를 했었다.

일부 선수들은 이촌장을 ‘국민 촌장’이라고도 부른다.
과분한 평가다. 다만 선수촌에 있는 3백60여 명의 선수 모두 내 자식, 내 조카같이 대해 주었을 뿐이다.

가족 상황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54년 8월15일 공무원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의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가끔 내가 혼자 살고 있는 개포동 아파트에 들르신다.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끝내고 1980년부터 독일 FTG 프랑크푸르트 팀에서 코치 및 선수 생활을 하다가 1984년 귀국해서 여자탁구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다. 2002년부터 용인대 교수로 있다가 2005년에 태릉선수촌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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