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하고 적응도 잘하고…”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5.0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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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교수 인터뷰 / “장수 한국인들, 다섯 가지 생활 태도 공통으로 갖춰…노화는 계속 살기 위한 변화”

ⓒ시사저널 황문성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인 박상철 교수는 장수와 백세인 연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시작이 늦었음에도 한국의 백세인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박교수는 장수의 원인으로 유전적 요인보다는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규칙적인 생활 방식, 올바른 식습관 등 후천적인 요인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백세인의 생활 방식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실천하는 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누구나 오래도록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지난 5월4일 열린 ‘일반인을 위한 백세 건강 심포지엄-백세 장수는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에서 한국인의 장수 패턴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발표에서 건강한 노년 생활을 보내기 위한 다섯 가지 생활 태도를 제안했다. ‘움직여야 한다’ ‘적응해야 한다’ ‘틀림이 없어야 한다’ ‘느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다섯 가지 생활 태도가 추상적인 느낌이다.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계속해서 활동하라는 것이다. 일부 와상 노인을 제외한 대다수 백세인들은 고령인데도 한결같이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그렇다고 특정 운동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집안일이건 농사일이건 움직이지 못할 순간까지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다.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환경적 요인들을 잘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세인이 평안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전쟁을 겪기도 하고 남편·아내·자식들을 먼저 보내기도 했으며, 가난한 삶을 살아온 경우도 많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런 어려움들을 잘 극복해냈다는 점이다. ‘틀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건강에 좋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음식과 약물에 휩쓸리는 등의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건강 보조 식품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건강 보조 식품에 기대어 건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권장하고 싶지 않다. 이 식품 또는 약품이 일시적인 기능 회복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오래 사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 두 원칙도 설명해달라.
‘느껴야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백세인들의 집은 항상 열려 있다. 그들은 이웃과 어울리고 가족과 자주 왕래한다. 혼자 산다고 해서 외롭게 산다면 장수하기 어렵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치매를 예방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노화가 되면 기억 능력, 학습능력은 저하되지만 연상 능력, 종합적 판단력은 그렇지 않다. 실제 백세인을 만났을 때 또렷한 생각과 유창한 말씀, 사려 깊은 행동에 놀란 적이 많았다.

한국에서 백세인과 장수에 관해 연구가 시작된 것은 언제인가? 현재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
이전에 개별적인 연구가 있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것이 1999년부터이니 일본 등 장수 선진국에 비해서 25년 가까이 늦게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다른 선진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자신한다. 외국에서 한국형 모델을 배우러 올 정도다.

한국의 대표적인 장수촌은 어디인가? 환경적 특성은?
순창, 담양, 곡성, 구례 등이 한국의 장수촌으로 꼽힌다. 예전에는 남해안이나 제주도 등의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소백산맥, 노령산맥을 중심으로 한 중산간 지역으로 확대·이동되고 있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기후가 온난하고 곡물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백세인과 우리나라 백세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시사저널 황문성

생활 습관에서 공통점이 있다. 백세인은 모두 부지런하다. 고령임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소일하는 일이 없다. 거동이 불편해질 때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 생활이 규칙적이라는 점도 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외국의 백세인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백세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얹혀 살아 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미안해한다. 한국과 외국 백세인 간의 생물학적 요인 차는 크지 않다.

한국의 전통 식단 중에 장수와 노화 방지를 위해 특별히 권장할 만한 식품은 무엇인가?
특별히 어떤 음식이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곡물과 야채를 풍부하게 섭취하는 우리의 전통식단은 그 자체로 장수 비결이다. 몸에 좋은 특별한 것을 찾아다니기보다 먹던 대로 먹는 것이 좋다. 김치, 된장에 생선 반찬이 올라오는 우리 전통 식단이면 건강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단 짜지 않게 먹는 것은 중요하다.

육식이나 붉은 고기는 안 좋은가?
붉은 고기가 무조건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채식만 하다 보면 채소에는 없는 필수 영양소가 결핍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양의 붉은 고기도 먹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비타민 B12는 육류에만 있다. 완전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약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영양소는 음식을 통해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나쁜 물질이 노화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1주일에 반근 정도면 충분하다.

술·담배와 장수와의 관계는?
술 같은 경우 적극 권장하지는 않지만 막지도 않는다. 백세인 가운데는 음주를 즐기는 경우가 여성은 20~25%, 남성은 40% 정도다. 술을 즐기기는 하지만 폭음하는 경우는 없다. 적당히만 마신다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금주라는 표현보다 절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담배는 피지 않는 것이 좋다.

백세인들의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는 멀게 느껴질 수 있겠다.
의학의 발달 등으로 계속해서 수명이 연장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젊은이들은 앞으로 많게는 70~80년을 더 살아갈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도 결코 먼 일만은 아니다. 몇 십년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지속적으로 좋은 생활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적당한 양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먹는 것이 좋다. 폭식 등 무절제한 식습관과 불규칙적인 식사는 고쳐야 한다. 젊은이들을 만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항상 열심히 움직이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준비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가 들면 세포 증식이 잘 안 된다. 단백질 증식 인자가 증식 신호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실험을 통해 이 단백질 인자를 차단하니까 세포 증식이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회복 가능하고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replace)에서 고치기(restore)로 바꾸어야 한다. 노화는 생명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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