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수’ 흘러들어 물 전쟁 제방 터지는가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5.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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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오는 10월께에 시판할 ‘아리수’가 생수업계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박경호
그물이 온다. 아리수가 온다. 올 하반기 생수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서울 수돗물 ‘아리수’가 10월께에 본격 시판되기 때문이다. 아리수는 우선 민간 업체의 생수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 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아리수 시판에 대비해 판매 방법, 시기, 마케팅 전략 등을 짜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중 판매용 아리수는 3백50㎖와 5백㎖, 1천8백㎖로 시장에 나온다. 또 온·냉수기용 대형 물통도 출시한다. 3백50㎖의 가격은 2백원을 넘지 않을 전망이다. 페트병 제조 가격과 물값, 유통 비용 등을 고려해서 가격이 결정된다. 5백㎖는 생산 원가가 1백77원인 점을 감안해 3백원 이내에서 가격이 매겨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일반 생수 5백㎖ 한 병이 소비자 가격으로 5백원에 팔리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반값을 조금 웃돈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수돗물 자체 브랜드인 대구의 ‘달구벌 맑은 물’, 부산의 ‘순수’ 등도 아리수와 비슷한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아리수 홍보차원에서 3백50㎖를 공식 행사 현장에 홍보용(비매품)으로 제공해왔다. 물론 가격은 마케팅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중에 팔리고 있는 생수의 반값 웃돌 듯

아리수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지난 3년간 여덟 차례 실시한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를 종합하면 총 3천8백74명 중 아리수를 가장 맛있는 물로 꼽은 사람은 1천6백23명(41.9%)이었고, 그 다음으로 생수 1천8명(26.0%)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아리수는 가격 경쟁력과 품질까지 갖춘 셈이다. 만약 아리수의 가격과 품질이 소비자에게 먹힌다면 생수 시장 재편은 불 보듯 뻔하다. 민간 업체들의 가격 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전형준 주임은 “서울시는 수도관의 99%를 교체해 수돗물의 안전성을 강화했다. 아리수가 시판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질 것이다. 유통 비용을 대폭 줄이고 홍보 비용을 늘려 아리수의 대중화를 모색하고 시장 규모를 키워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아리수의 성공 여부는 아리수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민간 업체의 생수 대부분이 지하 2백m 이상의 깊이에서 끌어올리는 천연 암반수인 데 반해, 아리수는 정수장에서 나온 물이다. 아리수가 아무리 뛰어난 맛을 가지고 있어도 ‘수돗물’ 이미지를 벗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수돗물 ‘아리수’에 대해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비자의 반응은 냉랭했다. ‘구입하지 않겠다’(43,4%)와 ‘잘 모르겠다’(28.9%)가 다수로 나타나 아리수의 성공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소비자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수돗물’ 수질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인식도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공공재인 수돗물을 가격이 싸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점을 들어 민간 업체들은 아리수 시판이 기존 생수 시장을 크게 좌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찻잔 속의 태풍’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다. 어찌되었든 아리수 시판은 생수 시장 전체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생수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생수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도 아리수의 역할은 상당할 전망이다.


업계 “생수 시장 전체에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

지금까지 국내 생수 시장은 해마다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선견지명이 2백여 년 만에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생수 시장 규모도 토끼뜀을 뛰고 있다. 지난 1995년에 먹는 물 시판이 허용된 후 매년 10% 이상 성장했다. 2003년 2천5백15억원에서 2005년 3천2백21억원, 지난해에는 3천9백억원으로 시장이 커졌다. 올해는 4천억원대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웰빙 문화 정착도 생수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몸에 좋지 않은 탄산음료 대신 생수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음료 시장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생수 매출이 탄산음료 매출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현재 국내 생수 생산업체는 약 70여 곳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브랜드만 100여 개에 달한다. 맹주는 제주 삼다수다. 한국먹는샘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생수 시장 전체 점유율은 삼다수(11.9%)가 부동의 1위를 지켰다. 그 뒤를 진로 석수와 동원 샘물(10.2%)이 추격하는 형국이다. 가정이나 사무실에 배달되는 대형 생수의 경우 진로 석수와 퓨리스가 시장점유율 18%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소형 페트병의 경우 1위는 삼다수(31.5%)로 2위인 롯데 아이시스(15.3%)를 16.2%가량 앞섰다.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는 지난해 6백97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올해에는 취수량을 지난해의 2.5배인 하루 2천100t으로 늘릴 계획이다. 공사는 삼다수 녹차에 이어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수 시장은 크게 가정용·사무실용 등 대형 생수(18.9ℓ)와 소형 페트병 생수로 나뉜다. 소형 페트의 성장에 비해 대용량 판매는 정체 상태에 있다. 그만큼 소형 페트병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이 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형 생수는 진로 석수와 퓨리스가 점유율 20%로 1위이고, 페트병 생수 시장에서는 농심이 유통과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제주 삼다수가 선두다. 대형 생수와 페트병 생수를 모두 합하면 석수와 퓨리스, 농심, 동원, 풀무원, 롯데 등이 국내 생수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생수가 돈 되는 시장으로 알려지면서 대기업을 비롯한 중소업체들이 너도나도 생수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에는 롯데칠성, 진로, 농심, 동원 등이 시장을 분할하는 형국이었으나 한국공항, LG생활건강 등이 출사표를 내면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 시장에 진출한 한국공항은 기내 승객용으로 납품하던 ‘제주광천수’를 ‘한진 제주워터’로 바꿔 지난 2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한진 제주워터’는 제주도 단일 수원지인 한라산 백록담을 근원으로 만든 천연 암반수 제품이다. 제주도가 물의 외부 반출을 사실상 막으면서 일반 판매를 못해오다가 소송을 통해 판매가 가능해졌다. 롯데칠성은 탄산이 가미된 롯데칠성 탄산수 ‘트레비’를 비롯해 산소수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국내 생수업체들은 물론 음료 기업들이 프리미엄 생수 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기능성 음료인 ‘다사니 삼다수’를 들고 나온 LG생활건강도 일반 생수와는 차별되는 고급 제품으로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 롯데칠성은 탄산이 가미된 탄산수 ‘트레비’를 내놓았다. 해태음료, 한국산소수, 농심 등은 산소수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경호

생수업체 난립으로 지역 주민과 마찰 빚기도

올해는 해양심층수가 가세함으로써 시장 선점을 위한 생수업체들의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심층수 전문 개발업체인 워터비스가 포문을 열었다. 이 회사는 ‘몸愛좋은물’을 내놓고 시장을 선점해나가고 있다. 워터비스 추용식 대표는 “국내 해양심층수 시장 규모가 오는 2010년까지 1조원대로 커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양한 관련 사업을 통해 내년까지 5백억원, 2010년까지 1천억원의 매출을 올려 해양심층수 대표기업으로 성장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생수 시장의 성장과 생수업체들의 난립 이면에는 적지 않은 폐단이 내재되어 있다. 생수 공장이 들어선 지역 곳곳에서는 지역 주민들과 생수업체들 간의 마찰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4년간 생수업체의 입주를 반대해온 경남 밀양 감물리 마을은 후유증이 심각하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관정이 말라 버려 주민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지하수 고갈의 원인이 마을 인근에서 샘물을 뽑기 위해 생수업체가 뚫은 관정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경북 풍기군 봉현면 순흥리 주민들은 지난 2월부터 생수업체의 입주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을 관정 반경 20km에 생수업체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생수공장반대추진위원회 류종한 상임집행위원장은 “1일 6백t의 물을 퍼올릴 경우 1일 흙 60t이 물기가 없는 황무지가 되어 식물이 살 수 없게 되는 비극을 가져온다”라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먹는 샘물 품질 인증제도’를 도입했으나 제대로 지켜지는지도 미지수다. 이는 인증 마크를 발급받은 업체의 먹는 샘물, 생수의 품질을 보장하겠다는 것인데 대다수 업체가 인증을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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