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좋아하다 의원 외교 망칠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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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당선인 95명 중 70명이 미국 유학•근무…국회에 설치된 외교단체는 ‘유명무실’

 
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해외에서 유학하거나 근무한 경험이 있는 당선인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총 2백99명 가운데 95명이 해외파로 분류되었고, 이 중 70명이 미국에서 유학하거나 근무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네 명 중 세 명이 미국과 인연을 맺었던 셈이다. 이어 일본이 10명, 영국이 9명으로 그 뒤를 따랐고 중국은 4명, 러시아는 3명, 프랑스와 타이완은 2명, 독일은 1명에 그쳤다(그림 참조).

이는 최근의 유학 추세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의 경우 미국으로 건너간 유학생은 총 유학생의 30% 수준이다. 중국이 15%로 두 번째로 많았고 영국 10%, 오스트레일리아 9%, 일본 8% 순으로 조사되었다. 독일과 프랑스도 각각 3% 안팎으로 나타나 대륙 간 균형이 어느 정도 잡혀 있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한나라당 경우 54명의 당선인이 해외에서 유학하거나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44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영국 5명, 일본 4명, 러시아 2명, 프랑스·독일·중국·타이완 각 1명이다. 당선인 5명은 두 개 이상 국가에서 유학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통일분과 간사를 지냈고 차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으로 거론되는 박진 의원은 미국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 대학 정치학 박사, 뉴캐슬 대학 정치학과 조교수, 일본 도쿄 대학 외국인 연수생 등 3개국을 넘나드는 화려한 이력을 지녔다.

민주당 김근태 의원을 맞상대해 이긴 신지호 당선인은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경단련 21세기정책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시거센터에서 초빙 학자로도 있었다. 부산시 진구 을이 지역구인 이종혁 당선인은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과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통합민주당도 23명 해외파 중 미국이 13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일본 4명, 영국 3명, 중국 2명 순이었다. 러시아·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타이완·몽골은 각 1명이었다. 재선에 성공한 우제창 의원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 석사,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국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일본 도쿄 대학 동양문화연구소와 중국 상하이 사회과학원, 타이완 중앙연구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광주시 서구 을 김영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 국립농업대에서 명예농학박사, 미국 루이지애나 뱁티스트 대학에서 명예정치학 박사를 각각 받았다.

자유선진당 5명, 친박연대 3명은 모두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근무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대선 후보로 나섰던 권영길 의원이 서울신문 기자 시절 파리 특파원으로 프랑스와 인연을 맺었다. 창조한국당은 비례대표 이용경 당선인이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석사, 버클리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권력 실세인 이재오 의원을 누르고 당선된 문국현 대표는 중국 베이징 임업대학 경제경영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의원 외교 역량 한 곳으로 쏠릴 수 있어 문제

의원 외교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같은 미국 편중은 18대 국회에서 의원 외교 역량이 한 곳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의원 외교의 경우 유학이나 근무지 등으로 맺어진 상대국의 인맥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정부 외교보다 자유롭고 융통성이 있어 인적 유대를 통해 까다로운 외교 현안을 풀어갈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의원 외교는 공식적이지 않지만 그만큼 틀에 얽매이지 않아 다양한 협의가 가능하다.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의원 외교가 지난 1989년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민감한 현안을 풀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제 사회의 이해관계가 갈수록 복잡해져 의원 외교의 필요성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우리 국회도 그동안 의원 외교 강화를 강조해왔다. 17대 국회 들어 외국 주요 인사 초청 외교와 의원들의 해외 방문 외교 건수가 대폭 늘어났다. 국회에 설치된 의원 외교단체 수도 상당하다. 미국·유럽·중국·러시아 등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한 의원 외교협의회가 있고, 83개국과 맺어진 의원친선협회도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외유성’ 논란이 반복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아직까지 의원외교가 외형적인 확대에 비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관련 지원이 부실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의원들의 전문성과 영향력 부족이 의원 외교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일 의원연맹의 경우 소속 의원 수가 1백80명을 웃돌지만 이들 중 일본어 회화가 가능하고 일본 사정에 정통한 의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 국회 또는 정당이 배정하는 대로 이름을 올리다 보니 주요 국가가 아닌 경우 자신이 어느 의원 외교단체에 소속되어 있는지 모르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18대 국회에서는 의원 스스로 과감한 변화에 나서야 한다. 상대국에 대한 정보 확보에 노력하고 주요 인사들과의 관계 유지에 공을 들여 전문성과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또 개인이나 정파의 이익이 아닌 국가 이익을 위한 외교 활동을 펼쳐야 한다. 주요 국가뿐 아니라 중동·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 홀대받는 지역도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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