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외교안보 라인, ‘부품 결함’이 문제였다
  • 진병기 (내일신문 기자) ()
  • 승인 2008.05.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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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쇠고기 협상•독도 문제 등 연이어 파열음 …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무력화 등 실책 자인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선의(善意)’가 짓밟혔다. 미국은 쇠고기로, 일본은 독도로, 북한은 연락사무소 제안 거부로 이대통령을 무시했다. 외교안보 정책과 정책 라인이 문제다. 취임 100일도 안 되어 닥친 시련의 원인을 따져보면 이 두 가지에서 답이 나온다. 쇠고기 협상이 외교안보 정책 영역이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먼저 이명박 정부는 우리의 일방적 ‘선의’로 외교안보 정책을 펼치면 될 것으로 착각해왔다. 쇠고기 협상이 파동으로 번지자 미국은 의아해했다. “우리는 길게 철저히 협상하려 했다. 그런데 한국이 서둘렀고, 우리가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사안도 자신들이 먼저 양보해버렸다. 이제 와서 그 화살이 왜 우리에게 와야 하나.” 워싱턴에서 날아온 반응은 이랬다.

이대통령 “북한이 거부할 것도 모르고 방안 만들었나” 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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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교과서 문제는 일본 문부성의 예정된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은 교과서 기재 요령의 지침을 이때쯤 이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정부가 사전에 이를 모르고 있었고, 정상회담 전후로 정지 작업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북한과는 어떤 물밑 접촉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덜컥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다. 출국 때까지 통일부도 통일비서관도 이를 몰랐다. 이대통령은 현지에서 일부 참모들의 진언을 받고 결정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서울에서부터 장기간 검토해온 것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최소한 미국 현지에서 발표한다는 시점만큼은 조율되지 않았던 것이다. 통일부 양천식 정책국장은 4월30일 기자단이 이를 추궁하자 묵묵부답으로 버텼다.

이 제안은 이대통령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대북 제의를 한 사안이다. 부시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에게 힘들여 설명하고 지지까지 받아냈다. 그런데 북한은 열흘이 안 되어 거부해 버렸다. 외교관계에서 시쳇말로 스타일 구긴 것이다. 이대통령은 화가 났다. 귀국 후 외교안보 참모들이 혼났다. “거부할 것을 모르고 방안을 만든 것인가. 북한이 거부한 상황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두었을 것 아닌가!”

북한이 거부 의사를 밝힌 4월26일 이대통령은 안보 관계 장관들을 비공개 소집해서 이 문제를 따졌다. 이날을 계기로 ‘6·15, 10·4 정상선언 합의 사항을 남북 간에 협상하자’라는 기조가 잡혀 나왔지만, 북한은 이미 멀리 나가 있는 상태였다.

이처럼 외교안보 정책이 우리의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으로 흐르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은 ‘무정부적 질서’에 놓인 각 국가들끼리 오로지 첨예한 이해관계를 다투는 상대게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우리의 바람을 그대로 정책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주시해야 할 두 눈이 오로지 과거 10년과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만 집중해 있어서 정책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오해하고 있는 ‘진실’이 있다. 과거 외교안보 정책의 집행 결과는 정권의 성향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결과물인 측면이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 세력인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 정책은 냉전 해체 시대를 반영했다. 진보를 자임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 정책은 친미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반미면 어떠냐’는 개인적 성향은 “미국이 아니었으면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대체되었었다. 그리하여 정권이 끝날 즈음에는 미국 국무부 고위 인사들이 “수십 년 한·미 관계의 숙제를 다 해결한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정책’ 차원에서 보면 한·미 동맹은 노무현 정부에서 만큼 강화된 예가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조차도 미국이 1970년대 이래 줄곧 추구해온 전세계적 군사력 운용 개편 방침에 호응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연기하는 공약을 내놓았지만, 당선인 시절 미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읽고 사실상 철회한 바 있다. 누가 더 친미적인가.

다만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태도’에서 한·미 동맹의 ‘신뢰’를 훼손했다.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은 구두 합의를 번번이 뒤집었다. 일선 부처에서 미국측과 구두로 합의한 사항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번번이 재검토시켰기 때문이다. 결론은 미국 정부의 바람을 대부분 충족시켰다. 이전과의 차이라면 고분고분하지 않은 태도였을 따름이다. 미국이 슬쩍 흘리면 한국 정부가 알아서 다 맞춰주던 시절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이를 불편해했던 것이다.

박진 의원 “대외 정책 결정 시스템 재정비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자문역이던 김우상 호주 대사는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인수위 시절 당시 연세대 교수였던 그는 명확히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미 정책은 한·미 동맹의 강화에 필요한 과제를 대부분 해결하는 성과를 냈다. 다만, 우리측 외교안보 라인이 신뢰를 상실하게 만든 태도를 반복했기 때문에 한·미 관계에 이상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 국무부 인사들의 말과 일치한다. 김대사는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부에 진입하지 못하고 외유성 보직을 받았다.

다시 말해서 역대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은 정권의 성향보다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측면이 훨씬 크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것이라고 모조리 부인하면 국가의 낭비가 될 수 있다.

6·15 공동선언과 2007 정상선언의 합의 이행 문제를 놓고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한·미 간 쇠고기 수입 문제는 대통령이 협상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며 거부하고 있다.

반면, 남북 간 두 개의 합의는 남북 최고 지도자가 직접 협상했다. 우리 정권이 바뀐 사정을 들어 이행 의지를 밝히지 않자 북한이 이를 문제 삼고 있다. 정상 간 합의의 효력에 대한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정부의 태도가 당당할 수 없는 처지다.

취임 100일 이전 큰 시련을 부르고 있는 외교안보 정책의 조정력 부재는 바로 정책 결정 시스템이 정책 수요를 감당하기에 부적절한 방식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4월 중순 청와대는 류우익 대통령실장 주재로 정권 출범 후 1개월을 집중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무력화와 국정홍보처의 폐지가 뼈아픈 실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5월 들어 이대통령이 “국정홍보처가 아쉽다”라고 한 말은 이러한 종합 점검 결과를 표현한 것이다.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간사를 역임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5월21일 짧게 한마디 지적했다.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정부의) 대외 정책 결정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향군인회가 주최한 율곡포럼에서다.

쇠고기 협상이 일개 비서관의 지휘 아래 해당 부처 담당자와 밀어붙인 결정이라는 것은 공지된 사실이다. 반대 의견을 편 부처는 의견 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NSC가 주관해 외교안보 부처 및 유관 기관 전체 의견을 반복적으로 조정했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그 때문에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숱한 월권 시비와 야당의 공격 타깃이 되기도 했다.

혹시라도 이명박 정부가 ‘NSC는 노무현 정부의 유산’이라고 보고 서둘러 무력화시켰다면 그 무지에 혀를 내두를 일이다. NSC는 미국이 2차 대전을 치르면서, 대외 정책은 특정 부처에서 좌우할 수 없으며 국정 전반의 조정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절감해서 만든 제도다.

일본도 지난해 국가안전보장회의 체계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보통 국가’로 가는 기본 제도로 다듬고 있는 추세다. ‘이종석의 NSC’를 무력화시키고 싶어했던 야당 시절 한나라당의 주장을 이어받아, 이명박 대통령이 이 국가 안보의 핵심 조직을 대외전략비서관 산하로 집어넣어버렸다면 자승자박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진 의원이 ‘대외정책 조정 시스템 정비 필요’라고 딱 한마디만 짚고 넘어갔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최근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벌인 ‘국정 쇄신’ 마찰의 비밀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책임총리제 정무홍보 라인 교체’ 등의 쇄신안을 만들었다. 외교안보 정책 결정 라인의 정비 문제는 “쟁점을 분산시킬 것 같아 쇄신안에 담지 않았다”라는 것이 실무진의 설명이다.

                                                                                                                                   ⓒ연합뉴스

북한 쌀 지원 방침, 며칠 사이에 오락가락

강대표의 쇄신안이 언론에 사전 노출되자 청와대 회동이 연기되었다. 정작 회동 석상에서는 꺼내지도 않았다. 청와대의 강력한 견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당의 ‘국정 쇄신 요구’를 권력 투쟁·권력 분점 요구로 본다. 집권 초기 청와대 대통령실로 집중된 권력은 여당 의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책임총리제야 말로 집권 여당 의원들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가장 좋은 통로가 된다.

청와대의 정무와 홍보 라인에는 쇠고기 협상의 정책 입안과 협상, 집행의 책임선이 아니라 일이 터진 후 민심 수렴과 사태 수습의 책임이 있을 따름이다. 일이 터진 후 ‘대통령의 눈과 귀가 막혀 있다’는 식의 사후약방문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열불 나는 소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입장에서 ‘국정 쇄신’은 쇠고기 협상이 사전에 제대로 기획되지 못하고, 제대로 협상되지 못한 정책 집행 체계의 문제점을 짚고, 그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은 어려움에 빠진 틈을 타서 권력 요직 나눠먹기를 요구했다. 당의 국정 쇄신책이 청와대의 진압으로 사라져 버린 데는 이같은 쌍방 간의 시각 차가 자리 잡고 있고, 집권 초기 막강한 힘의 우위에 있는 청와대가 당의 쇄신안은 권력 분점 요구라고 일축해버린 데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1주일여 만에 박진 의원이 슬쩍 진실을 입에 담았다. 대외정책 조정 시스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NSC가 사실상 해체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면서 쇠고기 협상 문제에 어떤 틈이 보였는지 국방대학교 교수 출신인 한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질병에 대처하는 검역 안보는 현대 안보 문제의 핵심 사안이다. 부처 간에 안보·정치·경제 측면을 모두 고려한 심층적인 조정을 거쳐야 한다. 검역 주권을 미국에 내주어도 질병 대처에 문제가 없는지 인간 안보 차원에서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과연 이번에 관련 부처들의 조정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쌀 지원 문제를 놓고도 NSC의 조정력과 같은 기능은 부재했다. 미국이 북한에 50만t의 쌀 지원을 준비하자 우리 정부는 미국에 대표를 급파해 한국 지원 분 5만t을 얹어서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퇴짜를 맞았다. 이후 우리 정부는 직접 지원으로 입장을 바꾸었고, 다시 북한의 요청이 없어도 긴급 지원할 수 있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정부정책이 빙 한 바퀴 원을 그렸다.

쇠고기 파동은 1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원인이 이번 협상에 국한되지 않고 좀더 근본적인 데 있음은 누누이 지적했다. 대외 정책과 정책 추진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를 괴롭힐 외교안보적 맹점은 앞으로도 속출하게 되어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7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 무기 도입 압력이 또 한 번 국민의 반감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002년 반미 열풍의 소재가 ‘F15전투기 도입’에 대한 1년여의 찬반 논란에 따른 것임을 상기시킨다. 방위비 분담금과 평택 미군기지 조성 비용 문제도 화약고다. 복잡한 계산을 생략하고 대략만 보면 4조5천억원을 부담하기로 한 미국이 순수 미국 예산은 4천억원만 내고 나머지는 한국으로부터 받아내겠다는 것이 평택 기지 비용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한·미 간 줄다리기의 핵심이다. 모두 10조원이 들어가는데 미국은 4천억원만 미국 국민의 세금에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7월 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곳곳에 뇌관 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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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차세대전투기사업(KFX)은 우리가 10조원을 들여 전투기를 개발해보겠다는 계획이다. 새 정부는 과다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이 계획을 백지화시키는 문제를 검토 중이다. 전투기의 자체 개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보잉 사의 F15가 4월에 이미 21대 계약되었고, 추가로 20대 도입 계획이 추진 중이다.
양국 정상은 7월 정상회담 때 이러한 양국 동맹 사안들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를 하기로 한 바 있다. 그에 앞선 실무 협의를 갖기로 했다. 따라서 미사일 판매 레이더 설치 등 미국이 6월 이후 본격적으로 터뜨릴 대형 이슈는 산적해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민감한 문제가 7월 정상회담 앞에 놓여 있다. 미국이 4월8일 한·미안보정책구상(SPI) 서울 회의 직전에 한국 정부에게 이동식 미사일 요격용 조기경보인 ‘X밴드레이더’를 한반도에 배치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X밴드레이더를 한국에 설치하는 것은 한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정부는 현재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전전긍긍이다. 이 레이더를 한국에 설치하는 것은 한·중 관계에 치명타를 예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X밴드레이더는 미사일방어 체제의 ‘눈’에 해당한다. 2006년 7월4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미국이 격추시킨 것은 일본과 알래스카 등에 설치된 X밴드레이더의 능력이 뒷받침한 결과다.

미국은 MD 체제의 감시망을 완성하기 위해 전세계에 8곳의 레이더 거점을 갖추어 각각 반경 5천㎞를 상호 감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배치된 상태에서 추가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7월 정상회담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깔고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폭발물이 인화될지 모르는 힘겨운 회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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