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공학 팔아 ‘바가지’ 장사하나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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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백 의자, ‘배낭 이론’ 내세우며 두 배 값 받아 “허리에 좋다” 말 믿고 산 일부 소비자들 “더 아프다”

ⓒ시사저널 황문성
다리를 꼬고 앉거나 한쪽 팔걸이에 기대다시피 앉는 버릇 때문에 자주 허리 통증을 느끼는 박영애씨(39·여·가명)는 지난해 듀오백 의자를 구입했다. 그녀는 자세를 교정해주고 허리에 좋은 의자라는 영업 직원의 말을 믿고 구입했지만 오히려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박씨는 “병원에서 X레이를 찍어보니 척추가 약간 휘어 있어 척추측만증이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허리에 좋다는 듀오백 의자를 구입했다. 그런데 한 2~3주 사용하다가 지금은 폐품처럼 방치해놓고 있다. 처음에는 의자에 적응하느라 허리가 아픈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가도 통증이 가시기는커녕 예전보다 더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말에 보통 의자보다 두 배나 비싸게 샀는데 이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라며 억울해했다.

등받이가 좌우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는 의미의 듀오백 의자는 일반 사무실과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듀오백 의자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자세를 교정해주고 허리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이 의자를 생산하는 듀오백 코리아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체공학적 설계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 의자를 생산·판매하고 있는 듀오백 코리아는 그 근거로 ‘배낭 이론’을 내세운다. 이 이론은 배낭을 지고 걸으면 그냥 걸을 때보다 덜 피곤하다는 것이 골자다.

배낭의 허리 멜빵이 등을 마사지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에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 의대의 브루니그(Brunig) 교수가 주창한 이 이론에 근거를 두고 독일 그랄(Grahl) 사가 듀오백 의자를 만들어 특허를 냈다. 그리고 지난 2004년 듀오백 코리아(구 해정산업)가 그랄 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우리나라에서 듀오백 의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듀오백 코리아측은 “듀오백 의자에 앉으면 각각 움직이는 두 개의 좌우 등받이가 등 전체를 받쳐주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없다. 마치 배낭을 멜 때와 유사한 마사지 효과를 주기 때문에 피로가 덜하다. 이런 배낭 이론을 배경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인체공학적 의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한마디로 듀오백 의자와 일반 의자의 기능상 차이는 없다고 한다. 등받이가 두 개로 나누어진 특이한 디자인으로 소비자에게 시각적인 어필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업계 “일반 의자와 기능상 차이 없다”

의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의자 시장을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듀오백 코리아는 큰 역할을 했다. 또, 듀오백 의자가 독일에서 특허를 받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듀오백 의자는 등받이가 두 개이고, 이 등받이가 상하 좌우로 움직이도록 고무 부품을 댄 것이 전부다. 등받이를 두 개로 만들었다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마치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에다가 ‘인체공학’ 또는 ‘허리에 좋다’는 문구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사실 듀오백 의자는 단순한 아이디어 제품일 뿐이다. 듀오백 의자에 사용된 기술은 일반 의자에도 다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듀오백 의자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냥 ‘편하게 만들었다’는 정도로 바꾸는 것이 맞다. 세계가구전시회에 가보아도 듀오백 의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랜 전통으로 의자의 종갓집으로 불리는 독일의 비트라(Vitra)와 미국의 허만 밀러와 스틸 케이스 등 세계적인 의자 전문 업체들이 듀오백 스타일의 의자를 만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시사저널 황문성
듀오백 코리아는 좌우 두 개로 나누어진 등받이와 이 등받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댄 고무 부품이 듀오백 의자를 다른 의자들과 차별하는 특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듀오백 코리아측은 “어떠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허리를 받쳐주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인체공학적 의자다. 또 등받이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댄 고무 부품은 ‘3차원 특수 고무’다. 이 특수 고무는 ‘의자 등받이 결착구’로 실용신안을 받은 부품이다. 인하대학교에 의뢰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장치들 때문에 허리에 가해지는 하중이 20kg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듀오백 코리아의 주장대로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면 등을 항상 등받이에 대고 있어야 한다. 일반 의자에 앉을 때도 등을 등받이에 대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결국 다른 점이 없는 셈이다. 사실 등받이가 두 개로 나뉘어 있지 않을 뿐이지, 등받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일반 의자는 시중에 많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등받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특수 고무를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 고무부품은 일반 의자에도 사용하는 내구성이 좋은 일반 고무다”라고 덧붙였다.

많은 소비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듀오백 의자가 허리 건강에는 좋을까? 사실 듀오백 의자로 특허를 받은 독일 그랄 사는 척추가 옆으로 굽는 척추측만증 등 요통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재활치료에 사용할 목적으로 이 의자를 개발했다. 일반인들이 특별한 효과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래는 재활치료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인간공학 교수는 “공식적인 검증이 되지 않았다면 환자들에게도 좋은 제품이라고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듀오백 코리아측은 “좋은 제품이라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용자가 반듯하게 앉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듀오백 의자를 사용해본 일부 소비자들은 다른 브랜드의 일반 의자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제품을 사용하면서부터 오히려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소비자들도 있다. 회사원 김민우씨(32)는 “앉는 자세가 나빠 고민하던 차에 듀오백 의자를 샀다. 그런데 그릇된 자세로 앉아도 등받이가 등을 잘 받쳐주기 때문에 불량한 자세를 오랜 시간 유지하게 된다. 의자에서 일어나면 허리가 더욱 아프다. 듀오백 의자의 인체공학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듀오백 의자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많이 팔린 제품이라는 것이 의자업계의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독일 그랄 사는 매출액의 90% 이상을 우리나라에서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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