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라이프, 라이프는 없고 비즈니스만 있었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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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륙한 가상 세계, 본질 잃으면서 회원 수 정체

20 06년 5월1일자 <비즈니스위크>는 커버스토리에 사이버 세상의 한 아바타를 등장시켰다. 독일에 거주하는 중국계 여성의 아바타인 ‘안시 청(Anshe Chung)’이 온라인 가상 세계인 ‘세컨드라이프’에서 부동산업을 하면서 상당한 부를 쌓아올렸다는 내용이었다. 외신에 종종 등장하는 ‘세컨드라이프’는 회원들이 아바타를 만들어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과 유사한 사회·경제 활동을 벌이는 온라인 가상 세계를 말한다.

세컨드라이프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유저들은 “하나의 세상과 같다”라고 말한다. 유저들은 린든달러(세컨드라이프 내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들여 외모를 꾸미고 의상을 바꾸어준다. 가상 세계에서 굳이 아바타를 그렇게 꾸밀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 덕분에 패션 아이템은 세컨드라이프에서 가장 유망한 사업 중의 하나로 부상했다.

세컨드라이프가 미디어에 등장하면서 관심을 표명한 곳은 경제계였다. 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세컨드라이프를 주목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붐이 일어난 세컨드라이프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따른다.

화폐를 이용하고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미국에서는 회원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IBM, 도요타, 소니, GM 등 글로벌 기업들을 비롯해 SK텔레콤, LG CNS 등 우리 대기업들도 이곳을 홍보의 장으로 생각하며 진출했다. 세컨드라이프의 국내 공식 파트너인 티엔터테인먼트의 원성연 팀장은 “글로벌 서버이기 때문에 글로벌 홍보가 가능하다. 외국인 유저가 우리나라 유저의 땅으로도 올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홍보의 장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10일부터는 ‘2008 경기국제보트쇼’의 코리아 매치컵 세계요트대회가 세컨드라이프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기국제보트쇼측의 요청을 받아 요트대회를 가상 현실로 구축한 곳은 국내 최초의 세컨드라이프 디벨로퍼(가상 현실을 구현해주는 곳)인 ‘애시드 크레비즈’다. 애시드 크레비즈 전략기획팀의 강지용 대리는 “세컨드라이프 내의 홍보 효과도 있지만 이슈가 되면서 미디어에 보도되는 2차 홍보 효과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어느 곳에서 세컨드라이프에 무엇을 설치했다’라고 하면 미디어 노출이 많은 편이다. 한 홍보대행사의 관계자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세컨드라이프와 같은 가상 현실은 이미 새로운 영역을 찾기 힘든 온라인 광고 중에서 먼저 뛰어들 수 있는 곳이다. 광고 효과와 관계없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획서를 올리기에도 좋은 소재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때 선거사무소 차리기도

이처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세컨드라이프에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기업뿐만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진영은 일찌감치 예비경선 기간 중에 세컨드라이프에 사이버 선거 캠프를 차렸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대선 기간 동안 사이버 캠프를 차린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나라당의 후보였던 지난해 9월21일 ‘버추얼캠프’라는 이름의 선거사무소를 애시드 크레비즈에 의뢰해 세컨드라이프 내에 설치한 바 있다.

물론 효율성에 의문을 가지는 의견도 있었다. 차라리 미디어에 얼굴을 한 번 더 드러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버추얼캠프가 설치될 무렵에는 세컨드라이프가 정식으로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인 회원 수는 많아야 1만명도 안 되는 시점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표를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홍보를 하기 위한 행위였다. 사이버 캠프 자체가 뉴스거리였지 않나. 게다가 한나라당이 인터넷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을 알릴 수 있었다”라고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던 세컨드라이프는 올해 1월25일 한국에 정식으로 상륙했다. 티엔터테인먼트가 공식 파트너가 되어 ‘세라코리아’를 오픈했고, 이제 4개월이 지났다. 티엔터테인먼트측은 “아직 준비 단계라고 본다. 커뮤니티는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지만 기존의 다른 게임과는 다르기 때문에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라고 평가했다. 티엔터테인먼트는 기업들이 세컨드라이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세컨드라이프 내의 토지를 분양하면서 이익을 얻는다. B2B(기업 대 기업의 비즈니스)를 하며 디벨로퍼의 역할도 맡고 있다. ‘세라코리아’는 한국인 회원들을 모아 세컨드라이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관문이다.

회원 간의 3D 커뮤니티 서비스 퇴색

이처럼 세컨드라이프와 관련된 대부분의 이야기는 비즈니스와 관련된다.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는 하지만 미디어가 주목하고 기업이 주목하는 것은 거기에서 창출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어떤 사람이 얼마를 벌었다’라는 이야기나 ‘어떤 기업이 세컨드라이프에 진출했다’라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회원 간의 3D 커뮤니티 서비스’라는 세컨드라이프의 본질은 일그러지고 있다. 이는 세컨드라이프의 회원 수가 왜 정체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보다 세컨드라이프가 먼저 정착된 일본을 보자. 지난해 일본의 금융 그룹인 미즈호 코퍼레이트 은행은 ‘2007년 4월 기준으로 전세계적으로 6백만명인 세컨드라이프의 회원 수가 2008년 말에는 2억4천만명을 돌파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8년 5월22일 현재 세컨드라이프의 전세계 회원 수는 1천3백70여 만명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미즈호 은행의 예상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티엔터테인먼트측의 최대 고민은 회원 수를 늘리는 것이지만 쉽지 않다. 티엔터테인먼트측은 “1월 정식 오픈 이후로 한국인 회원은 8만명 정도 늘었다”라고 말하지만 ‘세컨드라이프’가 받은 주목에 비해서는 미미한 숫자라는 평가다.

한 세컨드라이프 회원은 자신이 느낀 바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업적인 이익을 노리고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반수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처음 들어온 회원들의 많은 수가 게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첫 번째로 강조되어야 할 것은 ‘회원들이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두 번째 인생과 재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곁가지로 이야기할 부분이다”라는 한 IT 칼럼니스트의 지적은 그래서 새겨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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