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웨이’로 갈아타면 여론 ‘물길’ 바뀔까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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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4대강 정비 후 연결 구간 잇기 추진…건설사들은 제안서 작업 중
이명박 대통령이 한 모임에서 운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러 강의 물길을) 잇고 하는 것은 국민이 불안해하니 뒤로 미루자. 강을 하수구인 양 쓰는 곳은 우리나라 말고는 없다. 이런 것을 개선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5월21일 경북도청에서 열린 대구·경북 업무보고)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 이후 ‘대운하 2단계 추진론’이 힘을 얻고 있다. 우선 4대강을 정비한 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구간은 여론 흐름을 봐가면서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당장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내놓은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은 날이 갈수록 강해져 지금은 찬성 여론이 10%대 후반에 불과하다. 최근 ‘쇠고기 수입 파동’이 겹쳐지면서 여권의 정국 추동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운하를 추진할 동력 또한 상당 부분 상실되었다.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운하를 추진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형태와 내용의 변화를 불러온 것으로 분석된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장석효 회장은 “우선순위는 정해진 바 없다”라고 말했지만 운하 공사는 낙동강과 영산강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 지역은 주민들이 운하를 원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5월27일 부산·대구·울산·경북·경남 등 다섯 곳 자치단체장들을 대표해 김범일 대구시장이 청와대에 공식 건의문을 전달했다. ‘낙동강 운하는 낙동강의 하상 경사가 완만해 건설이 쉽고 경제적·문화적으로 타당성이 높다고 판단되므로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위해 조기에 운하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내용이었다.

비상 급수ᆞ홍수 예방까지 해주는 ‘수로’ 개념 강조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위)은 대운하 사업 TF팀을 만들었다.
요즘 여권에서는 운하와 관련해 ‘홍보 부족’을 거론하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 장석효 회장이 5월27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온 국민에게 내용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해야 한다’라고들 할 것이다. (대운하 지지율이 낮은 것은) 홍보 부족 때문이다”라고 말한 점이나, 이만의 환경부장관이 5월29일 환경재단이 주최한 강연에서 대운하 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국민이 운하를 잘 몰라서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라고 밝힌 점이 대표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은 ‘운하’라는 이름 자체를 바꾸는 흐름도 펼쳐지고 있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장석효 회장이나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꼭 운하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친환경, 비상 급수, 홍수 예방 등을 포괄하는 이름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 상징적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도 “대운하가 아닌 수로다”라고 말했다. 이만의 장관이 “운하에는 기존 강에 별다른 공사 없이 배가 다니게 하는 워터웨이(waterway)와 강 양쪽에 콘크리트벽을 쌓아 만든 커낼(canal) 두 종류가 있다”라고 말한 것도 ‘운하’보다는 ‘워터웨이’를 강조하기 위한 수사로 보인다. 물류와 관광에 방점을 찍어 추진되던 방식도 친환경 치수와 관광 개념으로 바뀌었다.
대운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홍보 부족’으로 보는 인식은 ‘홍보를 통한 추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대운하 자체에 대한 냉정한 토론은 이론상에서나 가능한 일로 보인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믿는다’라는 이대통령의 지론, 한반도 대운하가 현 정권의 핵심 공약이라는 점,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성격, 이미 물밑에서 국책 연구기관들이 심도 있는 검토를 하고 있는 점 등에 착안해보면 대운하는 이미 추진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형태와 수순이 문제일 뿐이다.
최근 드러난 몇 가지 사례가 그것을 반증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연구원은 “한반도 물길 잇기와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운하 계획이다”라고 폭로했다. 한겨레가 국토해양부가 작성한 ‘물 관리 종합대책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과업 지시서’가 사실상 대운하 사업이라고 보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운하사업지원준비단을 운영 중인 국토해양부는 다섯 개 국책 연구기관에 30억원을 들여 ‘대운하 용역’을 맡긴 상태다.
건설사들과 금융사들도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 금융 기관 관계자는 “관심 있는 금융 기관들이 건설사들과 접촉하고 있다. 사업을 주관할 만한 능력이 있는 메이저 금융사들이다”라고 전했다. 건설회사의 한 관계자는 “올해 안에 법적인 부분을 정비하고 내년에는 공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망했다.

손문영 현대건설 대운하TF 팀장(전무)은 “한강과 낙동강 구간이 연결되건 안 되건 초기에 물류를 갖고 수입을 얻기는 어렵다. 도로를 내도 차가 많이 다니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냐. 부대 사업을 갖고 수익성을 맞출 수밖에 없다. (2단계로 추진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손전무는 “아직 사업비가 얼마나 들지도 나오지 않았다. 따져보는 중이다. 올해 안에는 정부측에 어떤 법을 고칠 필요가 있는지 등 법적인 부분까지 포함해 사업을 제안할 것이다. 금융사들과 아직 구체적으로 접촉한 바는 없다”라고 말했다.

 “내수 경기 진작 위해 밀어붙일 것이 뻔하다”
현대건설이 주관하는 ‘빅 5’ 건설사 및 시공 능력 상위 12∼20위권 업체로 구성된 한반도 대운하 제1 컨소시엄은 현재 제안서를 만드는 중이다. 법적인 정비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7~8월에는 사업 제안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건설사들이 사업 제안을 해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업 제안서가 제출되면 다시 한 번 대운하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질 것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와 한반도 대운하를 통해 내수 경기를 진작하려고 하고 있다. 핵심적인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경제를 살릴 만한 다른 정책 수단을 확보하지 않는 한 대운하 정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말로는 소통을 얘기하면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일단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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