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직지심경>을 찾아라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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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국내에서 불법 유통된 정황 잡고 수사 중…삼성도 대상에 포함돼 눈길

검찰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 행방 찾기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5월28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파리 국립 박물관에 보관된 것과는 별개의 <직지심경>이 국내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현재 유통 루트와 함께 소유자 등을 추적 중이다”라고 밝혔다.

<직지심경>은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보다 73년이나 앞서 제작된 금속활자본이다. 구한말 유출되어 현재는 하권이 파리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하권과 달리 상권은 그동안 국내에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왔다. 문화재 전문 절도범인 서상복씨가 <직지심경>의 존재를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파리 국립 박물관에 보관된 하권만이 유일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서씨가 지난 2001년 검찰 조사에서 <직지심경>의 존재 사실을 밝히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경북 안동의 광흥사와 청주의 한 사찰에 보관되어 있는 <직지심경> 상권 두 권을 내가 도굴했다”라고 진술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직지심경>은 분명히 존재한다. 직지보다 앞서 제작된 고려 시대 금속활자본까지도 목격했다”라고 밝혔다.

서씨의 진술이 사실로 드러나면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 문화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절도범 서상복씨 “상권 두 권 내가 도굴했다” 주장

그러나 <직지심경>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서씨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직지심경>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종적이 사라진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도굴이나 불법 유통과 관련해서는 공소 시효가 이미 만료되었다. 처벌보다는 <직지심경>과 고려 금속활자본의 행방을 찾아내는 데 수사의 목적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검찰은 현재 <직지심경>을 도굴했다고 주장하는 서상복씨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방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월27일과 5월7일 두 차례에 걸쳐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서씨를 검찰로 불러 조사까지 마쳤다.

검찰은 현재 구체적인 조사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씨에 따르면 현재 검찰 조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직지심경>과 고려 금속활자본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도 모두 파악해 머지않아 <직지심경>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05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서 한 관람객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直指)를 신기한듯 쳐다보고 있다.

서씨는 지난 5월27일 대구교도소에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검찰이 이미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 지난 2001년 문화재 도굴범 일제 단속 당시 서류를 비롯해 관련 인물의 계좌 추적도 일부 마친 상태였다”라고 귀띔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도 검찰의 수사 선상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서씨가 훔친 두 권의 <직지심경> 중 한 권이 삼성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문화계 인사들에 따르면 사라진 <직지심경> 상권 중 한 권은 현재 고서 수집가인 ㅈ씨를 통해, 나머지 한 권은 서씨와 친분이 있는 ㄱ씨를 통해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한 차례 세탁된 후 국내에 들어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뿐 아니라 개인 소장자 등에 갔는지 등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검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확히 드러난 것은 없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관련 인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직지가 삼성에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조사를 벌이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미 지난 2001년 문화재 도굴범 일제 단속 당시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 소유 고미술품에 관해 조사를 벌였다. 삼성으로 건너간 국보급 고미술품 중에 매입 루트가 석연치 않은 것이 많아 별도로 조사를 벌인 것이다. 당시 확보한 파일 또한 상당하다. 안영삼 P&P 법률사무소 사무과장은 “당시 검찰은 도굴범과는 별도로 삼성이 보유한 문화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한 자료만 사과 상자로 여러 박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서상복씨도 현재 <직지심경> 상권 한 권이 삼성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직지심경>이 현재 삼성에 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루트를 밝힐 수는 없다”라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계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미술 평론가인 김호년씨는 “직지가 국내에 유통되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다. 서씨가 <직지심경>을 도굴했다는 말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삼성문화재단 관계자는 “<직지심경> 상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입증된 것이 아니다. 어떤 근거로 검찰이 조사를 벌이는지도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문화계 안팎에서는 파리 국립 박물관과는 별도로 <직지심경>이 현존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심증은 있는데 아직까지 확인을 하지 못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20년째 문화재 절도 사건을 다루어온 강신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1권만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에 가 있는 <직지심경> 외에도 다른 인쇄본이 존재할 것으로 본다. 그동안 국정원에서도 여러 차례 조사를 했고, 필요한 것은 지원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국정원-문화재청 공조로 행방 찾는 중

그는 이어 “당시 100권 정도는 인쇄되었을 것으로 본다. 소유자들이 직지심경을 보유하고도 관련 사실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서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나름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3곳 정도에서 <직지심경>을 보유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직지심경> 상권의 존재 가능성이 단 1%만 있어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인 혜문 스님은 “<직지심경>은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문화 유산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다. 서상복씨가 비록 범법자이지만 그의 진술에 1%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한다면 찾는 노력을 해야 옳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파리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직지심경>에 대한 환수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직지심경>이 발간된 청주시의 경우 말 그대로 ‘<직지심경> 붐’이 일고 있다. 시내 상가의 이름에 ‘직지’가 빠지면 장사가 안 될 정도다. 최근에는 직지 축제 등을 열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공관에 직지관을 세우는 등 직지 환수의 당위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원웅 전 의원(통외통위 위원장)도 “늦었지만 검찰이나 국정원 등이 <직지심경>이나 고려 금속활자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사에 착수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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