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나이 상관없이 백신으로 예방 가능”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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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실’ 개발자 이안 프레이저 호주 퀸스랜드 대학 암연구센터장 인터뷰/“40대 여성 임상실험 결과로 확인…접종 연령 45세까지 확대해야”

자궁경부암은 대부분 성관계에서 감염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에 의해 걸린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 중반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어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백신은 초경을 시작한 후 성경험이 없는 9~26세 여성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성경험이 있어도 HPV에 감염되지 않은 여성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이 백신으로 예방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르면 내년 초부터 27세 이상의 여성에게 접종이 허가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100여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다실(Gardasil)이라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개발한 호주 퀸스랜드 대학 이안 프레이저 암연구센터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더 오랜 기간 지켜볼 일이지만 현재까지의 임상실험 결과에 따르면 HPV에 감염되지 않은 40대 여성도 백신 접종으로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레이저 센터장은 2000년대 초 자궁경부암 백신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공로로 2006년 호주 정부가 선정하는 ‘올해의 호주인’으로 뽑힌 바 있다. 그의 연구 결과는 거의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프레이저 센터장으로부터 앞으로 HPV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세포도말검사(Pap smear test)를 하지 않고도 여성들이 자궁경부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년 여성, 즉 성경험이 있는 여성도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HPV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백신으로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다. 지난 수년 동안의 연구와 임상실험을 통해 40대 여성도 백신을 접종한 후 자궁경부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임상실험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겠지만 현재의 결과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9~26세 성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이 백신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27세 이상 여성도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호주에서는 매년 백신을 접종받은 2만2천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HPV는 형태에 따라 약 100여 종이 있다. 이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몸속에서 자연 소멸된다. 그러나 16형(type)과 18형 등 일부 바이러스는 사멸되지 않고 자궁경부암을 유발시킨다. 이런 바이러스는 몸속에 면역 기능을 저하시켜 암세포의 증식을 조장하게 된다. 백신은 자궁경부암의 70%를 예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적으로 한 해 22만명 이상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백신을 접종하면 세포도말검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가?
HPV로 발생하는 자궁경부암 환자는 10명 중 7명이다. 나머지 3명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암이 생기므로 정기적인 세포도말검사를 통해 HPV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백신은 암을 예방하는 것이지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백신과 세포도말검사는 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 관계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항간에는 백신 접종으로 오히려 자궁경부암에 걸린다는 말도 있다.
1990년대 초 자궁경부암이 HPV 감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을 때 이야기를 하겠다. 바이러스를 이용해 백신을 개발한 것인데, 이 바이러스는 연구실에서 인위적으로 배양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바이러스를 배양해서 백신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바탕으로 HPV 유사입자(Virus like particle)를 만들었고, 이것이 백신 개발의 열쇠가 되었다. HPV 유사입자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와 유사한 물질이다.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접종했다고 해서 자궁경부암에 걸린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HPV 유사입자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L1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이 단백질을 효모나 곤충을 이용해 발현시킨다. 단백질이 바이러스와 유사한 유형으로 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 단백질 72개가 모이면 ‘속이 비어 있는 바이러스 세포(empty virus cell)’ 즉 HPV 유사입자가 만들어진다. 이를 개발하기 위해 2천명의 연구원이 15년간 6만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 연구에 10억 달러(우리 돈 약 1조원)가 투입되었다.


최근 미국과 호주에서 백신의 부작용이 나타난 바 있다.
백신의 부작용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다른 질환에 사용되는 백신과 비슷한데, 예를 들면 주사를 맞아 팔에 통증이 생기는 정도다. 백신의 부작용은 드물게 보고되고 있는데, 사실 부작용이 백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그런 보고 내용을 계속 기록해두고 관찰하고는 있다.

현재까지 백신의 부작용으로 확인된 것은 알레르기 반응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 부작용도 2천만명 중 10명에서 생기는 매우 드문 경우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부작용이 크다면 세계 여러 나라가 국가적 백신 사업에 자궁경부암 백신을 포함시켜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접종받게 했겠는가.


호주에서는 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도 이를 검토 중인데, 백신의 비용 대비 효과가 관건인 것 같다.
백신의 비용 대비 효과는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가 고민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백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
호주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국가 필수 예방접종에 포함시켰고, 미국도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무료 접종을 해주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보전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필리핀은 최근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접종 연령을 기존 9~26세에서 27~45세 여성에게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승인함으로써 전세계 중 45세의 중년 여성까지 접종할 수 있는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이런 나라들은 백신의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경우다. 사실 자궁경부암 수술비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자궁경부암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다. 이를 고려하면 백신의 비용 대비 효과는 크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방한한 목적은 무엇인가?
서울에서 열리는 AOGIN(아시아-오세아니아 생식기 감염·종양학회) 3차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전세계에서 자궁경부암에 걸린 여성의 절반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만큼 이 지역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 결과와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유럽에 있는 EUROGIN(유럽 생식기 감염·종양학회)과도 교류하면서 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안 프레이저 박사는?
현재 호주 퀸스랜드 대학 암연구센터장인 이안 프레이저(Ian Frazer) 박사는 호주암협회 회장과 WHO(세계보건기구)의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자문을 맡고 있다. 1990년 장 조우(Jian Zhou) 박사와 함께 HPV 유사입자(Virus like particle)를 개발했다. 2000년대 초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 가다실(Gardasil)을 개발한 공로로 2006년 호주 정부로부터 ‘올해의 호주인’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HPV 치료백신을 개발 중이며, 호주생명공학회사인 CSL, 뉴욕암연구소, 웰컴재단의 지원으로 중국과 호주 브리즈번에서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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