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양초 사온 시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 김지혜 기자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8: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시사저널 임영무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가 있던 5월31일 12시 무렵, 기자는 효자동과 안국동 부근에 있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아고라 예비군 부대’였다. 이들이 청와대 진입로에 도착하자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들은 환호했다. 예비군이라고 해봤자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인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운동권에게 순수한 시민들이 선동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시청에서는 전경버스에 인간띠를 둘러 완충 역할을 했고, 청와대 앞에서도 온몸으로 살수차의 물을 맞으면서 격렬해지는 경찰과 시위대 간 감정 대립을 막았다. 하지만 새벽 5시부터 시작된 경찰의 강경진압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수백명의 부상자가 나오고 2백20명이 연행되었다.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촛불집회는 새벽 1시40분경 살수차가 버스 위의 시민에게 물을 쏘아 떨어뜨리면서 격화되기 시작했다. ‘살인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선두그룹의 구호가 ‘쥐새끼는 퇴진하라’로 바뀌었다. 이전에도 격한 대립의 전조는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아무개(35)씨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분위기가 있다. 정부가 사람들이 지치기만 기다리는데 버스를 뒤집고라도 청와대에 가야하는 것 아닌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송파구에서 산다는 유세명(57)씨도 “4·19, 5·18보다 더 억압적이다. 일어날 때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끝까지 운동권이 주도하는 시위를 거부했다. 새벽 3시에 안국동에 합류한 아고라 팀은 ‘(선동하는)다함께는 뒤로 가라. 시민으로 참여하라’는 플랭카드를 들었고, 시민들의 손에는 ‘배후는 너야’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화여대 깃발 아래 학생들도 “총학생회와도 별개이다. 게시판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아 시청에서 만났다”라며 자발적인 집회임을 강조했다. 자비로 삼각 김밥과 음료를 돌리는 시민과 의료봉사팀도 ‘집에 있을 수 없어 나왔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라면 왜 촛불을 들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 하는 것 아닌가.”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촛불을 누가 샀는지를 물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윤아랑(22)학생이 일침을 가했다. 같이 온 친구 김민경(22)학생도 ’본질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은 건지‘라고 비꼬았다. “운동권이나 집회에 아예 관심 없던 우리가 미팅을 취소하고 나올 정도면 심각한 거다. 이게 현실이다”라던 두 여대생은 폭력이 있으면 돕겠다며 벌벌 떨면서도 집회가 해산될 때까지 현장에 남았다.

대전에서 올라온 성아무개(45)씨는 쇠고기 재협상 목소리가 없어졌다는 질문에 ”쇠고기보다 배후세력이나 찾는 대통령의 오만이 더 문제이다. 집회는 오래전에 쇠고기에서 탄핵으로 이슈를 옮겼다. 극소수의 운동권에 돋보기를 들이대지 말고 집 앞에서 양초를 사온 대다수의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라고 말했다. 상암동에서 온 최귀현(42)씨는 새벽 4시 경 부인과 집회를 떠나며 “오늘 촛불집회에도 진전이 없어서 아쉽지만 시민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이명박만 최악이다”라고 분노를 쏟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