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좌충우돌, 그래도 강한 촛불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6.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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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방향도 헷갈리는 시위대지만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강하다 ⓒ시사저널 박은숙

비가 불고 바람이 불어도 사람은 모여든다. 비 때문에 봉 잡은 이는 따로 있다. 비옷을 파는 어르신들이다. 우산을 들고 촛불집회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집회에는 집회복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2천원짜리 비옷을 너도 나도 입는다.

6월3일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외롭게 싸워오던 민주노총이 참가자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홍명옥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단상에 올라 “그동안 많은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여러분에게 누가 될까봐 참았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님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를 따라 부르는 청소년들을 흔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집회에 참가하는 연령층도 많이 올라갔다. 청소년들이 중심을 이루던 집회는 20대를 넘어 중장년층의 참가를 이끌어냈다. 참가자들의 평균연령은 높아졌다. 그만큼 다양한 의견을 아우르고 있었다.

거리 행진을 시작하기 전 사회자가 말했다. “오늘은 한군데 먼저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그 한 군데는 바로 경찰청이었다. 행렬이 광화문을 지나쳐 서대문 쪽으로 향하자 경찰들이 다급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움직이었던 걸까. 한 무리의 전경들이 시위대를 앞질러 경찰청 쪽으로 급히 움직인다. 경찰청 앞에서는 연행자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구호가 줄을 이었다. 경찰청 앞을 가로막은 전경차에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불법주차 딱지가 붙었다. ‘쉬이익~’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떤 사람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기도 했다.

갑자기 여러 참가자가 우산으로 전경차의 창문을 가리면서 소리쳤다. “우산 든 여러분들은 이쪽으로 와서 가려주세요. 경찰들이 버스 안에서 사진 채증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기자들과 블로거들은 우산을 든 사람들과 전경버스를 촬영했다. 버스 안에서는 밖을 찍고 밖에서는 안을 찍는 기묘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선두는 다시 광화문으로 방향을 꺾었다. 문화일보를 지나면서 “문화일보 폐간하라”를 외치던 시위대는 곧이어 나타난 경향신문 빌딩을 보면서 환호했다. 그렇게 도달한 광화문에는 이미 전경차가 빼곡히 주차되어 행진의 진로를 막아섰다. 집회 참가자들은 장기전에 돌입했다. 전경차에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 경찰쪽을 향해 호통을 치는 사람도 있다. 함께 나온 동료들과 둥글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도 있고 이미 술판을 벌인 일행도 있다. 거리 공연도 이어진다. 참가자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노래판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런저런 파편과 같은 풍경들이 이어지는 동안 자연스레 사람들의 수는 줄어갔다. 한 시민은 ‘날씨 탓’, ‘평일 탓’을 했다. 다른 시민은 “다음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이만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의견을 비쳤다. 아무도 안 다치고 평화롭게 끝낸 집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갈래다. 어떤 이는 자연스런 해산에 뭔가 허전해하기도 하고, 반면 다른 이는 아무런 불상사 없이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차이는 촛불집회가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하는 광장이기 때문에 생긴다. 오죽하면 대열의 선두가 거리 행진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자 뒷줄에 서있던 사람들이 “오른쪽!”이라고 외칠 정도로 집회참가자들은 좌충우돌(?)이다.

새벽 1시가 넘어 집회가 정리될 때 쯤 지나가던 한 아저씨와 촛불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시비가 붙었다. 이런 촛불의 불꽃이 불만이었나 보다. 주위 시민들이 뜯어 말리는 와중에서도 아저씨는 “너희들이 뭔데 이 난리야!”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말리던 한 시민이 답했다. “난리를 정리하려고 하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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