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7일의 광화문 모꼬지는 이랬다
  • 김회권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6.0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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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무대에서 20만명이 모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6월7일 서울 시청 앞 광장의 촛불의 행렬은 대단했다. 무대 뒤의 한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노동절 집회에 참가한 사람을 다 모아도 이것만큼 안 될 것 같다”라며 감탄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한 달여간 진행된 촛불집회는 축제의 장이지만 그래도 집회다. 집회가 주는 긴장감 때문에 간혹 돌발 상황이 날 수 있다. 이날도 그랬다. 자유발언이 한창 진행 중이던 7시30분쯤, 한 남성이 자신의 팔을 커터 칼로 두 세 차례 그어 119 구급대에 실려 갔다. 주위의 사람들이 말릴 틈도 없이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주위 참가자들은 “저렇게 해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좀 참지”라며 안타까워했다. “비폭력으로 시작했으면 비폭력으로 끝나야지. 저렇게 과한 것도 어찌 보면 폭력이야” 한 시민의 말에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다.

국민대책회의가 평소 때와는 다르게 가두행진을 한다. 광화문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남대문 쪽으로 내려가 명동을 지나 종로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간단다. 지도를 놓고 보면 반 시계 방향으로 둘러가는 셈이다. 선두에는 청소년들이 섰다. 10대 연합 카페인 “청소년 여기로 모여라”와 “미친소닷넷” 깃발이 앞장 서고 그 뒤를 국민대책회의 방송차가 따라 간다.

명동을 가로 질러 가는 것은 또 하나의 선전전이다. 연휴를 맞아 명동으로 나온 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바라본다. 일부는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길가에서는 중년의 일본인 여성 관광객 두 명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무슨 일이냐?”라고 서툰 영어로 물어와 서툰 영어로 촛불집회에 관한 설명을 했더니 “스고이~”라며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문화라고 말하며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종로를 지나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에 도착했다. 대학생 깃발들은 서대문 쪽으로 직진하더니 독립문에서 우회전해 광화문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미 독립문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방향 역시 전경버스로 막혀 있다. “평화행진 보장하라”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기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전경들은 “악! 악!”거리며 구호를 외친다.

경찰들 중 일부는 고가 다리 위에서 사진 채증을 했다. 대학생들은 “찍지마!”를 외친다. 오히려 전경들을 지휘하는 경찰 간부가 마스크를 쓰고 나와 사진 채증을 지시하자 “마스크를 벗어라”고 구호를 외쳤다. 얼굴이 밝혀지면 인터넷에 신상정보라도 떠돌까봐 그랬던 걸까? 한 참가자는 전경 버스 위로 올라가 “다 해야 1백50명 정도 밖에 안 된다. 얼마 없다”라며 버스 뒤 상황을 알려줬지만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뒤편의 대학생들이 “내려와! 내려와!”를 연발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9시 뉴스가 할 시간이었다. 집회 참가자 중 일부가 DMB로 뉴스를 보고 흥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참여정부 때 쇠고기 협상이 마무리되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다”라고 발언했다는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 참가자가 큰 소리로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에게 책임을 떠넘겼대”라고 말하자 즉석 비판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진다.

독립문에서 있었던 대치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아고라’ 깃발과 함께 나타난 참가자들이 개별적으로(?) 청운동 방향으로 진출하려고 직진을 시도했지만 “돌아오세요”라는 확성기의 외침에 따라 곧 뒤돌아 광화문으로 다시 나아갔다. 아고라가 광화문 쪽으로 합류하면서 대학생들도 함께 뒤로 ‘빽’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사직터널 위로 돌아 청와대로 갈 수 있는 산길을 택했다. 집회를 구경하던 한 시민은 “저기로 가면 청와대까지 20~30분 정도 걸리는데 보통 때도 막아 놓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역시 전경들이 막고 있었다. 청와대로 통하는 모든 길에는 여지없이 검은색 헬멧이 반짝거리고 있다.

음악공연과 술판이 어우러진 세종로 사거리. 그러나 그 짧은 평온은 곧 끝났다. 자정이 넘자 시민들 중 일부는 버스로 올라가려했고 전경들은 방패로 위협하거나 소화기를 뿌려대며 시민들의 진입을 막았다. 일부는 전경버스 위에 세워진 플라스틱 차단막을 걷어내다가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고 일부 시민은 버스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뒤에서는 일부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고 앞에서는 “올라가! 올라가!”를 외치는 등 집회의 모습은 둘로 나눠졌다. 들려오는 주변의 외침도 그랬다. “대치만 하다 끝내고 그러니 정부가 우리를 우습게 본다. 따끔하게 정말 뚫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라는 이야기도, “이렇게 힘을 쓰다가는 집회에 나오는 사람이 더 줄지도 모른다”라는 이야기도 동시에 공중에 울려 퍼졌다. 중앙이 없는 자율적인 집회였지만 그랬기에 앞줄과 뒷줄의 생각이 달랐다. 앞줄의 사람들이 강하게 나가면 뒷줄의 사람들은 그것을 말렸다. 그런 광경이 되풀이되면서 집회에는 점점 앞줄의 사람들만 남았다. 뒷줄의 사람들은 친구를 이끌고, 가족을 이끌고 하나 둘 시청 쪽으로 흩어지는 모습이었다.

새벽 5시경, 경찰이 광화문 쪽에서 시청 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선두는 방패를 휘둘렀고 시민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인도로 빠졌다. 그러다가 경찰과 거리가 생기면 다시 아스팔트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어느 샌가 대치선이 새로 생기곤 했다. 그렇게 광화문의 토요일은 지났고 일요일은 새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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