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와신상담’이 물거품 되었다
  •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
  • 승인 2008.06.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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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단체 대표가 본 이명박 정부/뜻있는 보수주의자들도 화 못 삭인 채 등 돌려

보수 진영은 촛불 집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련의 집회 양상을 우려와 함께 바라보고 있지만 근본 원인을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서 찾고 있다. <시사저널>은 ‘촛불 정국’에 대한 보수 진영의 입장을 박효종 서울대 교수를 통해 들어보았다. 박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 경찰청 앞에서 열린 보수 단체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촛불 가두 시위 엄단을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었는데, 100일 잔치는커녕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6·4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는가 하면, 그동안의 국정 실패로 대폭적인 인적 쇄신을 요구받고 있다. 100일 전 MB에게 투표한 사람들에게는 기대와 흥분이 있었는데, 지금 그들은 100일 잔치를 할 기분이 아니다. 오히려 심각한 마음으로 “지금 이대로 좋은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는 조금 특별한 데가 있었다. 박빙의 승부가 아니라 압도적인 승리였다는 점도 그랬지만, 10년 만의 ‘정권 교체’가 아니라 10년 만의 ‘시대정신 교체’라는 의미가 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의 말처럼 자신의 손으로 가꾼 장미에 애착을 갖는 심정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마음일까.


불복종주의자들의 발목 잡기는 예상된 일

대선에서 참패해 권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불복종주의자들이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 민주당이 18대 국회 개원을 할 수 없다고 버티며 횡포를 부리는 것도 예견된 일이다. 반미주의자나 친북 좌파 세력이 이명박 대통령(이하 MB)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냉소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근본적으로 불복하는 마음이 강하니, 그들의 문제 제기나 구사하는 레토릭에서 한이 느껴질지언정 무슨 커다란 진정성을 갖겠는가.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MB를 지탱해왔던 보수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 이후에 신문이나 TV를 즐겨보던 보수가 이제는 촛불 시위만 나오는 뉴스에 피로감과 답답함을 느끼는 나머지 그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실망감과 배신감조차 교차하는 분위기다. 과거에 뉴스를 잘 보지 않는 것은 패자의 특징이었는데, 승자가 된 보수가 왜 그럴까.

MB가 대선 승리 후 개구일성(開口一聲)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라고 했을 때, 국민은 쌍수를 들고 반겼다. 그래서 그 힘으로 전봇대를 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봇대는커녕 촛불하나 끄지 못하고 있다. 그는 대선에서 좋은 비전, 올바른 국정 방향, 올곧은 시대정신을 내세웠다. 보수주의자들이 꿈에도 그리던 화두였다. 그러나 MB는 인사에서 자기 사람과 자기 편 사람만 썼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고소영 내각’이 되었고, 그것은 곧 ‘강부자’의 성격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잘못 낀 첫 단추는 기대가 컸던 국민으로부터 원성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그러면 그렇지, 어디 깨끗한 보수가 있을라고” 하는 좌파로부터의 비아냥을 보수 전체가 고스란히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과연 ‘라이트’에는 모두 ‘리치라이트(rich right)’만 있고, ‘클린라이트(clean right)’는 없는 것인가. 인사 풀을 샅샅이 찾아보았는데, ‘클린라이트’가 없었다는 청와대의 궁색한 변명은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리듯’ 보수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졌다. ‘클린라이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는데 ‘클린라이트’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눈을 뜨고 찾아보면 왜 ‘깨끗한 보수’가 없단 말인가. 새 시대가 왔으니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심정으로 인재를 찾겠다는 마음보다 우선 편한 대로 ‘제 눈의 안경’이라는 말처럼 평소에 가깝게 자기를 도운 측근들만 찾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고소영이면 어때, 일만 잘하면 되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된 인사 문제가 다른 실책들과 어우러지면서 쇠고기 파동으로 이어졌다. 앞만 바라보고 가는 MB에게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펴보는 지혜가 부족했던 것이다.

이제 보수로부터 버림을 받은 MB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용을 제대로 할까. ‘747’을 띄워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선진화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규제 개혁을 할 수 있을까.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어느덧 MB는 대선 승리 초기에 가졌던 그 많은 기대와 신뢰 등, ‘정치적 자본’을 거의 다 소진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허허벌판에 섰다. 이렇게 힘이 빠지다 보니, 상식과 순리가 통하지 않는 주장과 구호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출범한 지 100일밖에 되지 않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라고 낙인찍고,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는 주장도 나온 것은 물론, 인터넷에는 탄핵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움직임에는 허무맹랑한 데가 있다. 그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고, 산에 가서 고기를 구하는 상황처럼, 부조리하고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대의민주주의와 입헌민주주의 정신에 반하는 저급한 포풀리즘에 다름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좌파의 공격과 장기간에 걸친 촛불 집회로 인해 촉발된 정권 누란의 위기에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우려와 탄식으로만 일관할 뿐 MB를 구하러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 뜨거운 태양 아래 아스팔트 시위까지 마다하지 않던 노병들이 미동도 하지 않는 까닭이 궁금하다.

▲ 뉴라이트가 신문에 낸 촛불 시위 반대 광고. ⓒ시사저널 황문성
대통령직 혼자 하다 자살골 먹는다

지금 뜻있는 보수주의자들은 마음이 많이 상해 있고 심지어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10년 동안 쓰디쓴 쓸개를 먹으며 공동으로 ‘실패학’을 썼고 그 결과 정권 교체를 이루었는데, 막상 MB는 ‘실용 정부’라며 ‘독불장군’처럼 행동한 것이다. 대선 승리 후 정권 교체를 자신의 힘만으로 이룬 듯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MB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호랑이등’에 올라탄 상황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MB는 국정을 ‘나 홀로 하는 통치’로 이해했고 동반자들과 더불어 하는 ‘협력의 통치’ 개념을 소홀히 했다. 대통령직은 홀로 마라톤을 뛰거나 100m 단거리를 뛰는 육상 선수와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축구팀이나 야구팀에서 활약하는 선수와 같다.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으려면 다른 선수로부터 도움을 받는 팀플레이가 필수적이다.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 수비수까지 공격수로 나서 종횡무진하게 되면, 결국 힘이 부쳐 자살골을 먹기에 십상이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위기의 근원이 아닌가.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가슴앓이를 해왔다. 왜 박근혜 전 대표나 이회창 총재를 끌어안지 못하는가. 작은 정치 영역에서 파트너십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보다 훨씬 큰 국민 통합을 말할 수 있겠는가. 국정 운영은 대통령 한 사람이 크고 작은 것을 모두 챙기기보다 역할을 분담하는 ‘협치(協治)’의 개념이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MB에게 그런 충고와 고언을 했건만, 문전박대만 받았을 뿐이다.

이 시점에서 MB는 나라를 경영하는 것에 대한 엄숙함을 되새겨야 한다. 특히 국정 운영과 기업 운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찌기 로마인들은 나라를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라고 했다. 로마인들은 이 레스 푸블리카에서 공공선과 나라의 일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MB는 국정이 기업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레스 푸블리카’를 돌보는 막중한 일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레스 푸블리카’를 운영하는 것이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인적 쇄신을 소폭으로 할지, 아니면 대폭으로 할지에 대한 답도 자명하게 나올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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