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에도 일장기 휘날리나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8.06.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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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원ᆞ시장 노리고 TICAD에 40억 달러 지원 약속…국민은 “민생이나 해결하라”

일본이 아프리카를 무대로 정치·경제·환경·외교 등에서 전방위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5월30일 요코하마에서는 제4차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가 막을 내렸다. 아프리카 53개국 중 40개국 수뇌부가 참가한 대규모 회의였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이들 수뇌들과 15분 간격으로 마라톤 회담을 치렀다. 아프리카는 석유·천연가스·코발트 등 자원의 보고이며 성장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2007년 실질경제성장률은 5.7%였다.

일본은 타고야키(일본 음식의 하나인 문어빵) 원료의 60%,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50%를 아프리카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제품이나 한국의 가전제품들에 비해 아프리카에서는 일본 제품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일찍이 유럽, 중국, 인도 등은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개발에 참여했다. 일본으로서는 기회의 땅을 더 이상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에 다다른 것이 이런 매머드급 회의를 열게 된 이유다.

 
후쿠다 총리, 아프리카 40개국 수뇌부와 마라톤 회담

이번 아프리카개발회의에서 일본은 아프리카의 사회 인프라 구축을 위해 4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국제개발협력사업(ODA) 예산이 최근 11년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음에도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5년간 배로 증가시키고 25억 달러를 들여 ‘아프리카 투자 확대 기금’을 창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프리카를 공략하기 위해 일본 정부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인구 9억인 신대륙 시장을 뚫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NEC는 2008년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한다. 통신 수요가 급증할 것에 대비해 자사의 보수 기술을 서비스할 계획이다. 도요타자동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장에 22만대 규모의 생산기지를 만들고, 샤프는 아프리카의 전기가 없는 지역을 대상으로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진출했거나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일본이 아프리카 각국 정상들에게 강조한 또 하나의 사항이 있다. 성장의 질을 전수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월30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4차 아프리카개발회의에서 후쿠다 총리가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당면 문제는 개발과 성장이지만 양적 중심의 개발과 성장보다는 질이 전제되는 개발과 성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온난화 문제 등 환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이며 아프리카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친환경 에너지 등에 대한 투자와 연구로 이 방면에서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에 진출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질을 보장하며 개방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에게 강조했다.

오일 및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시점에서 열린 이번 아프리카개발회의는 자원 확보라는 모습이 먼저 눈에 띄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외교·환경 등 복합적인 전략과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

먼저 경제 전략이다. 일본 경제는 점차 탄력성을 잃어가고 있다. 1천80조 엔 정도 되는 재정 적자와 함께 고령화·소자녀 인구 구조는 의료비 등 사회 보험비를 증가시켜 재정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잠재 성장은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고령 사회가 되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것이다. 내수 시장에서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중국, 인도, 동유럽 등 신흥 국가들의 인건비가 상승해 일본 업체들은 생산 시설을 더 싼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아프리카다. 스미토모전공과 전자부품업체인 TDK는 동유럽과 중국의 생산기지를 튀니지, 이집트 등 아프리카로 옮기고 있다.

일본은 또 세계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는 첨단 제품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첨단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희소 금속인 레아메탈 등 광물질의 매장량이 풍부한 지역이 아프리카다.

 중국, 인도 등은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에 추파를 던지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아주 적극적이다. 아프리카의 대형 스타디움의 입구는 한자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인프라 시설에서는 ‘Made in China’라고 쓰여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으로서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관계를 증진해야 한다는 시급함이 이번 회담을 갖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입에도 중요한 열쇠

다음은 환경 전략이다. 1974년 제1차 석유 위기를 겪은 일본은 오래전부터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오고 있다. 태양광 에너지 개발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주태양광 발전은 지구 상공에서 태양 빛을 받아 전기를 생산하고 무선으로 지구에 전송하는 기술이다. 기업들도 대형 태양광 발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토추 상사는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의 스카텍 사와 함께 유럽연합에 1천억 엔이 넘는 돈을 투자해 태양전지 판넬을 바닥에 까는 솔라 공원을 건설한다. 샤프와 스미토모 상사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발전 시설은 일정의 이익을 창출한 후 투자은행에서 운영하는 환경 펀드 등에 판매한다.
유럽에서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투자 이윤이 높은 투자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또한, 발전소의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액체 상태로 만들어 땅속에 묻는 탄소 격리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기술과 노하우를 세계화하고 표준화하려는 계획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것이다. 즉, 전략적 목표의 연장선상에서 아프리카도 공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외교 전략 문제다. 목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가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등 국제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해 실패한 경험이 있다. 특히 아프리카 53개국은 유엔가맹국의 4분의 1을 차지해 상임이사국 가입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이번 아프리카개발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극진한 환영 잔치를 벌이고 화끈한 지원을 약속하며 아프리카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기대했음에도 기대했던 만큼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가나와 중앙아프리카 등 몇 개국 정도가 지지를 표명했을 정도다.

이처럼 일본은 복합적이며 장기적인 전략 아래 아프리카 국가들을 원조하고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지난 5월30일 후쿠다 총리는 요코하마 선언에서 “아프리카개발회의는 일본과 아프리카의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진행시켰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은 먼 나라의 지원보다는 사회보장비, 고령자 의료보험 문제, 경제 활성화 대책 등 산적한 국내 문제와 민생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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